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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100년만에 우리 땅이 됐다."
"삥 돌아서 서면까지 걸어가면 30여분 정도 걸렸는데, 이제는 직선으로 가니까 절반 정도면 될 것 같네요."
"쑥 캐 오려고 칼하고 가방도 갖고 가요."

2010년 4월 24일 오전 10시. 부산 서면 한 복판에 있는 옛 미군기지인 하야리아(하얄리야) 정문이 활짝 열렸다. 100여명의 시민들은 동시에 "와! 100년"이라고 외쳤다. 철조망이 아직 조금 남아 있기는 했지만, 정문을 지키고 있던 미군 병력은 보이지 않았다.

"와! 100년만에 우리 땅이 됐다"

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사진은 국기게양대에 태극기와 부산시기가 매달려 있는 모습.
 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사진은 국기게양대에 태극기와 부산시기가 매달려 있는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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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권을 이양받은 부산광역시는 이날부터 9월 30일까지 하야리아 터를 시민에 개방(오전 10시~오후 5시)한다. 이 터가 시민한테 돌아오기는 100년이 걸렸다. 일제가 경마장으로 쓴 뒤 곧바로 미군이 주둔했기 때문이다.

부산경마구락부(1920~1941년), 육군 부산서면 임시군속훈련소(1942~1945년), 주한 미군 부산기지사령부(1945~1954년), 하야리아 부대(~2006년), 한-미간연합토기관리계획 협정으로 부대 이전 추진(2002년 3월), 하야리아 부지 반환 및 시민공원 추진 시민운동 시작(2004년 9월), 하야리아 부대 폐쇄(2006년 8월 15일), 부산광역시 관리권 인수(2010년 1월 13일).

하야리아 부대는 부산진구 연지,범전,양정동 일원에 약 53만4000㎡에 걸쳐 있다. 338개의 건물이 현재 남아 있다. 향나무와 벚나무, 프라다나스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밑둥이 굵은 게 오랫동안 자랐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부산시는 2개 코스를 개방했는데, 걸어서 60~90분 가량 걸린다. 주로 옛 경마트랙에 난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건물은 모두 개방하지 않고, 옛 마권판매소(사병클럽)와 사령부, 학교(체육관), 극장 건물만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건물이 오래되어 위험하기 때문에 모두 개방하지 않은 것이다.

미군기지 폐쇄 3년이 지났지만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었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경주로는 미군 훈련 때 야영장으로 활용되었고, 처음에는 대령이 근무했다가 뒤에 중령이 근무했던 사령관실도 개방되었다.

사병클럽도 들어갈 수 있었는데, 무대만 중앙에 위치해 있어 이곳에서 사병들이 노래와 춤을 추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미군들이 영화를 보았던 극장은 지금 '하야리아 부대의 과거,현재, 미래'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성조기가 걸려있던 국기게양대에는 현재 태극기와 부산광역시기가 달려 있었다. 나무로 된 전봇대가 군데군데 세워져 있었고, 새가 지어 놓은 집도 보여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소방서와 시설공방대, 헬기장, 독신자 숙소, 종교시설 등 다양한 건물들도 보였다. 부산시는 곳곳에 간이 화장실과 음수대를 설치하고, 자원봉사자를 배치해 방문객의 편의를 도왔다.

미군은 하야리아 부대를 폐쇄하면서 쓸 수 있는 기물은 모두 가져갔다. 부산시청 공무원은 "미군은 맨홀 뚜껑이나 전선 등 재활용할 수 있는 기물이면 모두 가져갔다"고 말했다.

방문객 다양한 반응 ... "처음 들어와 본다"

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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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시민들이 안내판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시민들이 안내판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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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들은 정문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며 위치를 파악하기도 했다. 80대 할머니는 "처음 들어가 본다. 쑥이 많을 것 같아 캐러 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할머니는 "안 죽고 있으니 여기도 들어가 본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김세출(83)씨는 "평소 연지동에서 부암동으로 걸어다녔는데, 이전에는 부대를 옆으로 삥 둘러서 다녔다. 30분 정도 걸렸다"면서 "오늘부터는 부대를 지나서 직선으로 가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희로 우리물산장려운동본부 이사장은 "여기는 외세가 1세기 동안 장악했다. 우리 땅이면서도 일본과 미군이 들어와 있어 마음대로 볼 수도 없었다"면서 "우리 땅이 된 것은 시민운동의 결과다. 잊어버린 부분을 되찾았는데 잘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직 부산대 교수(조경학)는 학생 50여명과 함께 찾았다. 이 교수는 "모든 시민이 힘을 모아 되찾은 땅은데, 그동안 애써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면서 "'하야리아'라는 말은 '아름다운 초원'이란 뜻이다. 진정한 시민의 공간이 되고, 아름다운 초원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임일(부산대 3년)씨는 "하야리아 부대가 폐쇄되고 우리가 되찾은 땅이다. 시민들이 바라고, 시민이 참여하는 속에 공원으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녀(72․당감동)씨는 걸어가면서 큰소리로 "이제 우리 땅이다. 부산 땅이 됐다"고 외치기도 했다.

민주당 김정길 부산시장 예비후보도 개방 시간에 맞춰 찾아왔다. 김 예비후보는 "이곳은 시민휴식공간이 되어야 한다. 개발업자의 이익이 가는 형태로 되어서는 안된다"면서 "옛 미군기지 오염 문제가 있는데, 오염 치유 비용 문제는 미국측과 합의를 마쳤다고 하더라도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딸과 함께 온 이정훈(44)씨는 "들어와 보니 신기하다. 며칠 전 개방된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 감격적이기도 하지만 씁쓸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관사 지붕이 높은 것을 본 한 방문객은 "미국 사람들이 키가 커서 그런지 지붕이 높은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전에 하야리아 부대에서 일했던 사람들도 찾아왔다. 50년간 이곳에서 청소를 했다고 한 할머니는 동네사람들과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안내하기도 했다. 그 할머니는 올해 80살이라고 했으며 77살까지 일했다고 소개했다. 같이 온 사람들은 "이 할머니가 평생 이곳에서 일했지요"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하야리아 식민지 해방의 날, 부산 시민 만세"

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사진은 옛 마권판매소 건물 입구 모습.
 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사진은 옛 마권판매소 건물 입구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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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구한 할머니는 "27살부터 77살까지 일했다. 미국 사람들은 일할 수 있으면 일하라고 했다. 아침마다 사령관실에 와서 청소했던 기억이 선명하다"고 말했다. 인상깊게 남아 있는 일화를 묻자 그 할머니는 "미국 사람들은 청소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없이 여기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다르다"면서 "사령관도 우리를 아침마다 반갑게 맞아 주었다"고 소개했다.

친구 네명과 함께 온 한 할아버지도 하야리아 부대에서 일했다고 했다. 같이 온 할아버지들은 "저 할아버지가 이곳에서 오래 일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는 신분을 밝히지 않으려 했고, 친구들에게 여러 건물에 대해 소개하기도 했다.

안내하러 나와 있었던 부산시청 임성완씨는 "건물이 오래되어 낡은 데가 많다. 위험하기도 해서 전부 개방하지 않고 있다"면서 "경마장이 들어서기 전 이곳은 계곡과 구릉지였고, 못이 있었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극장(전시장) 앞에는 사람들이 바닥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 놓기도 했다. 또 다른 방문객들은 화선지에 갖가지 바람을 적어 정문에 매달아 놓기도 했으며, 전시장 벽면 벽보판에 적어놓기도 했다.

"이권이 개입하지 말고 진정한 공원이 되길 바란다." "하야리아를 부탁해. 부산 속의 하야리아." "빨리 공원이 되었으면 한다." "100년을 기다렸다. 고마워!" "하야리아 터는 부산의 꿈이다." "하야리아 식민지 해방의 날, 부산시민 만세."

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헬기장.
 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헬기장.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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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사진은 사령부 입구 모습.
 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사진은 사령부 입구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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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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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사진은 독신자 숙소 모습.
 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사진은 독신자 숙소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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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사진은 나무로 된 전봇대에 새집을지어놓은 모습.
 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사진은 나무로 된 전봇대에 새집을지어놓은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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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사진은 사진전시회 모습.
 부산시는 24일부터 서면 옛 하야리아 부대 터를 개방했다. 사진은 사진전시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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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하야리아, #미군 기지, #부산광역시, #하얄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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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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