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아는 분(아들)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의 심정이 되어 글을 썼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어버이가 있고, 이 글 속의 아버지는 그런 한 분이기도 하셨지만, 또한 한 분밖에 계시지 않는 어버이였던 것 같습니다. - 기자 주
아들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멀쩡한 사람들도, 아니 멧돼지도 때려잡을 항우장사들도 한번 들어가면 죽음이 되어 나온다던 대공분실. 서울대학을 나온 그 잘난 아들이 공장에 들어갔을 때부터 이미 예고된 일인지도 모른다.
아들을 만나야 한다. 빨리 만나야 한다. 내 새끼도 죽게 놔둘 수야 없잖은가.
일본놈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겨우 소학교를 마쳤지만 한학을 했고, 우리 집안 누구도 경찰서에 잡혀갈 일은 하지 않았고, 누구도 그 놈처럼 살지는 않았다. 이놈을, 내 이놈을.
그래도 빨리 만나야한다. 컴컴한 조사실에서 내 새끼가 두들겨 맞고 있는 건 아닌지. 일곱 자식의 막내, 다정하게 곁을 내준 적은 없어도 마음 속으로 공부 잘하고 심지 굳은 녀석이 늘 대견했는데, 막내가 지금 없다.
합천에서 서울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아직 어디 있는지 모르는 새끼를 찾기 위해 학교부터 가니, 그 놈도 그런 놈인지 다정한 서울놈이라 그런지 남영동까지 어떤 학생이 안내해준다.
어떻게 하지. 이 음험한 기운이 감도는 곳, 어떻게 내 새끼를 만나지. 소리를 지른다고 내 귀한 새끼를 내놓을 것 같지도 않고, 하릴없이 문 앞을 지키고 서서 울 수도 없고. 어떡하지. 저 철문 속에서 공포에 떨고 있을 내 새끼를 어떡하지.
돗자리를 폈다. 태양이 뜨겁다. 정수리에 내리꽂히는 태양. 그러나 저 태양만큼이나 내 마음도 탄다. 갈증이 난다. 입술이 마른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가슴에 품었던 회초리와 상장을 옆에 내려놓았다. 빛나는 상장도 며칠째 내리쬐는 햇살 아래 무색하다. 바람을 가르는 회초리도 시들하다.
철문너머 드디어 사람이 나왔다. 며칠 대공분실 앞에서 내 새끼 면회시켜 달라고 돗자리 펴고 꼿꼿이 앉아 있었다. 내 무릎도 기력을 다해 자꾸 흐트러지던 어느 날, 새끼 잡던 그 놈들이 차마 아비인 나까지 잡을 수 없었는지 철문을 열고 나왔다.
지금은 기다리고 있다. 책상너머 빈 의자를 사이에 두고 삼십촉 백열등이 어른거리는 이 곳에서 며칠을 태양 아래 기다릴 때보다 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무사할까, 무사해야 할텐데.
멀리 자박자박 복도를 걷는 소리가 난다. 그래 내 새끼다. 저 놈 발자국 소리는 원래 크지 않았어. 생물을 조심조심 비켜 다니던 놈이었지. 그런데 발자국 소리에 기운이 없다. 혹시 너무 맞아서 그런 걸까. 아닐 거야. 면회를 허용하지 않았는가.
문이 열린다. 순간 왜 일리야 레핀이 생각났을까. 녀석이 대학에 들어가고 녀석 방에 걸려있는 그 그림. 아무도 반기지 않는 혁명가 아들의 방문, 퀭한 눈, 깡마른 몸, 잿빛 코트. 그림 속에서 아들을 돌아본 어머니도, 아내도, 아이들도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혁명가 아들이었는데. 이 좁은 면회실에 심장이 타들어갈 듯 앉아 있으면서도 내 새끼가 올 것 같지 않았는데. 레핀의 그림처럼 문을 열고 들어선 아들은 어둠 속에서도 파리하다. 걸어 들어오는 아들을, 혁명가가 돼버린 내 새끼를 올려다본다.
생각해 보면 면회실 문에서 두세 걸음이었을 건데, 그 땐 왜 그리 아득한 곳에서 내 아들이 오는 것 같았는지. 그저 멍하니 올려보다 내 앞에 멈춰선, 고운 입술이 툭툭 갈라지고 작은 얼굴에 뺨은 움푹 꺼지고 광대뼈만 불룩 솟은 몰골을 보니, 아차, 내 새끼가 왔구나 정신이 번뜩 든다.
"아버지", 새끼가 나를 부른다. 살아서 부른다. 입술엔 다 괜찮다는 듯 엷은 미소를 띈다. 그래, 내 새끼야, 몸은 성하냐 물을 새도 없이 마음은 급하다. 몸이 성하냐, 몸이 성하냐 속내로 골백번 혼자 물으며, 나도 모르게 녀석이 까마득히 어린 시절에 그랬듯이 새끼 엉덩이부터 까뒤집어 본다. 그 새 많이 자랐구나. 어린 때 토실토실했던 살들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뼛가죽만 남았구나. 너도 이 세상을 살아내느라 힘들었구나.
경찰, 네 이놈들, 내 새끼를 건드리진 않았겠지. 그랬다면 내 너희를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천천히 새끼의 엉덩이를 본다. 그래, 괜찮다. 그래, 괜찮구나. 다행이다. 아들아, 아들아. 갑작스레 아비의 손에 바지가 벗겨진 아들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바지를 추어올린다.
다시 의자에 앉았다. 초라한 몰골의 녀석. 내 저 놈에게 남을 짓밟고 남을 이겨라, 남보다 더 잘 살아라, 너만 잘 살아라 가르친 적은 없다. 초등학교 들기 전, 천자문을 가르치고 소학을 함께 읽으면서 내 너의 총명함을 알아보았지만, 니가 국가에 반대하는 노동자가 될 줄은 몰랐다. 아무리 험한 국가라 해도, 니가 빨갱이 좌익이 될 줄은 몰랐다. 똑똑한 좌익들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묻혀버렸는지 넌 모르느냐. 세상 애비들은 똑똑한 빨갱이 아들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단다, 아들아.
가슴에 품고 있던 상장을 꺼냈다. 그리고 녀석에게 말한다. 우리 집안에는 국가로부터 상은 받을지언정 너처럼 국가를 해하는 이는 없었다. "바짓단을 올리거라."
어리둥절해 하는 녀석의 눈을 봤다. 주변을 지키고 선 경찰들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그럴수록 나는 더 강한 눈빛으로 주변을 제압했다. 웅성거림이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회초리를 꺼내들었다. 그래 이 회초리는 너를 잘못 가르친 아비의 절규다. 녀석의 쓰러질 듯 깡마른 두 다리에 회초리를 친다. 내 새끼야, 너를 키우는 동안에도 내내 다락에 두고 쓸 일 없었던 회초리를 경찰에 붙잡혀 갔다는 네 소식을 듣고 꺼내 챙길 때, 내가 어땠는지 너는 아느냐. 스물이 넘어버린 네게 회초리를 쳐야겠다 마음먹을 때 내 심정을 너는 알겠느냐. 서울 따라 올라오겠다며 우는 네 어미를 떼놓고 대신 회초리를 품고 기차를 탈 때, 내내 모든 게 잘못 되었구나, 내가 너를 너무 고이 길렀구나, 막내라 어디에도 내놓지 않고 내 품에 두고 싶었는데, 넌 내 품을 떠나자 너무 멀리 길을 떠나버렸구나 깨달았다.
작은 면회실에 회초리가 바람을 가르는 날선 소리만 들리는구나. 내 아들아, 내 새끼야. 왜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느냐, 네가 고스란히 매를 맞으면 내 마음이 더 아프다는 걸 넌 모르느냐. 집이라면, 지렁이처럼 붉은 자국이 올라붙은 네 장딴지에 된장이라도 발라주겠지만, 난 네게 회초리만 치고 이 방을 나가야 한다. 이 어두컴컴하고 을씨년스러운 곳에 너를 남겨두고 나는 나가야 한다. 그런데도 난 회초리를 멈출 수 없구나. 저 놈들이 네게 다시는 손대지 못하겠다 생각할 때까지.
네, 이놈들. 내 자식을 끌고 온 이놈들. 봤지. 내 새끼가 잘못하면 내가 때릴 것이야, 너희놈들이 끼어들 일이 아니야. 내 아들 털끝 하나 손대지 마라. 이놈들. 내 귀한 새끼다.
회초리를 멈추었다. 두 다리에 올라붙은 상처를 본다. "바짓단 내리거라." 녀석은 아무 말 없이 바짓단을 내린다. 그래도 아들아, 이 시커먼 골방에 저 우글거리는 놈들에게 너를 던져놓고 갈 수밖에 없지만, 아들아, 난 너를 믿는다. 너의 살아온 날들을 믿고 살아갈 날들을 믿는다. 아무리 멀리 떠났어도 아무리 세게 뛰쳐나갔어도 네가 돌아오리라 믿는다. 아들아, 난 이제 이 문을 나선다. 너를 두고. 몸 성하거라. 부디 몸 성하거라. 니 에미가 며칠째 밥 한 숟가락 뜨지 못하고 너만 기다리고 있다. 잘 알고 있으리라. 넌 니 에미를 유독 잘 따랐으니. 하고픈 모든 말을 가슴에 묻고, 네 차가운 체온에 가슴이 시릴까봐 내 새끼 얼굴 한 번 쓰다듬지 못하고 나는 돌아서간다. 잘 있거라. 몸 성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