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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날씨를 보였던 이번 주말 모처럼 온 가족이 말끔하게 차려입고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모인 장소는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의 한 공원묘지. 이곳은 경주 김씨 종중의 공원묘지로 이곳의 양지바른 곳에 어머니께서 잠들어 있습니다.

 

사실 어머니의 보금자리는 고향마을인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의 선산이었지만,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들어선다며 조상묘까지 강제 이주시키는 바람에 지난 2008년 7월 고향을 떠나 이곳 공원묘지로 보금자리를 옮기게 되었지요.

 

최근 일련의 상황들을 지켜보자면 강제로 조상묘소까지 이장하라며 부추겼던 정부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실향민들의 아픔을 정부가 헤아려 줄 것으로 믿고 싶기도 합니다만 어려울 듯 보입니다.

 

산과 들에는 진달래며 개나리며 벚꽃이 만발하고 가족들끼리 손에 손잡고 얼굴에는 모두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교외로 나들이를 떠나고 있지만, 오랜만에 모인 우리 가족들의 얼굴은 그리 밝지만은 않습니다.

 

고향을 빼앗긴 가족들은 각자의 생계현장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느라 자주 모일 기회가 없었는데 이날 어머니의 환갑을 맞아 조카들까지 모든 가족들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살아생전에 환갑을 맞으셨다면 야외로 나들이라도 나가서 손자들의 재롱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함께 나누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을텐데 주인공이 빠진 환갑은 왠지 쓸쓸하기만 합니다.

 

'오늘 같이 기쁜 날 살아계셨다면 손주들 재롱도 보고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만 흐릅니다.

 

평생 고생만 하시다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기에 이날따라 어머니가 사무치게 보고 싶고 그리워졌습니다. 바람이 몹시 불어대 산소 앞에 깔아 둔 돗자리가 바람에 날려 정신없었지만 가족들은 숙연했습니다.

 

아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린 조카들만이 오랜만의 만남이 반가웠는지 쉬지 않고 조잘댈 뿐 어른들은 밀려드는 서운함과 그리움에 눈물을 삼킵니다.

 

막내 동생이 조심스럽게 준비해 온 제수용품을 꺼냅니다. 과일이며, 술이며, 포까지 명절 차례나 평소 제사보다 초라해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었지만 정성스럽게 제사상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둔 한복 보따리도 가지런히 풀어 어머니의 비석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 놓았습니다. 참 한복이 그 옛날 어머니의 모습을 연상시킬 만큼 고운 빛깔을 품고 있어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이윽고 모든 준비가 끝나고 '어머니! 생신 축하드립니다'라는 말과 함께 일제히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또 각자가 마음속으로 어머니를 떠 올리며 감사와 축하의 잔을 올렸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어떤 모습인지도 모르는 조카들도 할머니께 술을 올린다며 절을 하고는 어른들이 하는 것처럼 산소에 조심스럽게 술을 붓습니다. 꼭 세 번 나누어서 부어야 한다며 큰 조카가 나섭니다. '조카들의 이런 모습을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또 한 번 가슴속으로 눈물을 삼킵니다.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잔치분위기여야 할 어머니의 환갑은 그렇게 숙연한 분위기속에서 조촐하게 치러졌고, 절을 마친 가족들은 한 자리에 모여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어머니 살아생전에 함께 했던 추억을 회상하며 천국에서나마 기뻐하시리라 굳게 믿는 모습이었습니다.

 

가족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공원묘지 한 켠에서는 막내 동생이 한복 보따리를 풀어놓고 어머니께 보내드린다며 불을 피웁니다.

 

이내 이야기를 나누던 가족들도 다시 한 자리에 모여 한복이며, 버선을 나누어들고는 모닥불 속에 하나씩 태웁니다. 자식들이 정성껏 마련한 한복 선물이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도착되기를 간절히 빌면서 말입니다.

 

돌아가신 분의 환갑을 위해 태우는 의미로 지어진 한복이라서 그런지 약간의 검은 연기를 내며 금세 한복은 한 줌의 재로 변해갔습니다. 너무도 순식간에 타버린 한복을 보고 가족들은 한 마디씩 합니다.

 

"무슨 옷이 이렇게 금방 타지? 잘 타는 옷감으로 만들어서 그런가?"

 

서운한 마음 금할 길 없었지만 한복이 재로 변하는 순간 어머니의 조촐했던 환갑잔치(?)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살아만 계셨다면 이 날 하루 평생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어드렸을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공원묘지를 떠나면서 가족들은 다시 어머니께서 잠들어계신 묘소를 보고 또 보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깁니다.

 

오늘 따라 문득 한시외전(韓詩外傳)의 글귀가 더욱 간절해집니다.

 

'樹欲靜而 風不止, 子欲養而 親不待'(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이 부모에게 봉양하고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태그:#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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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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