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견전의 에서 4배를 올리고 있는 종친들
 견전의 에서 4배를 올리고 있는 종친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과거 충주에서 제천이나 영월을 가려면 똬리를 틀 듯 구불구불하게 천등산을 휘감아 오르고 있는 고갯길을 오르고, 박달도령과 금봉이의 애틋한 사랑이 전설로 되어 서리고 있는 박달재를 넘어야 했지만 지금은 일부러 마음 먹지 않으면 도리어 가보기 힘든 곳이 되었습니다.

엔진소리 붕붕 거리며 힘들게 넘어야 했던 천등산이지만 뻥 뚫린 터널로 들어서니 금방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천등산을 지나 조금 더 달리다 박달재로 가는 옛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과거를 보러가던 박달도령과 아랫마을에 살던 금봉이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지고 있는 박달재는 비교적 조용합니다. 터널이 뚫리기 전에야 오가는 차들에서 내리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을지 모르지만 지금이야 일부러 찾는 사람들만 들르니 한적한 분위기입니다. 

박달선비와 금봉이의 애틋한 사랑이 전설로 남아있는 박달재
 박달선비와 금봉이의 애틋한 사랑이 전설로 남아있는 박달재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한때는 볼거리가 있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많았던 박달재의 나무 조각들이지만 너무 야하다는 민원에 대부분이 밀려나고 몇몇 나무 조각만 남아 있는 휴게소 광장에 잠시 차를 멈추고 내렸습니다. 어찌 보면 삼류 외설잡지를 보는 듯하고, 어찌 보면 대개의 성인들이 가장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을 아주 리얼하면서도 우스꽝스럽게 과장해 조각한 나무 조각들입니다.  

우스꽝스런 나무 조각 앞에서는 키득거리는 웃음이 저절로 나고, 몸뚱이보다 더 굵은 남근을 끌어안고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인상 앞에서니 얼굴은 붉어지지만 마음의 성감대는 촉촉해집니다. 한 아름이 넘는 굵기에 키보다도 훨씬 큰 남근 조각 앞에서는 괜히 아랫도리가 왜소해지는 느낌에 눈길마저 움츠러드는 기분입니다. 조금은 쑥스러울 수도 있는 모양새지만 보는 사람들의 민망함쯤은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남근 여근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표현한 조각들입니다.

발달재 휴게소에 남아있는 나무 조각 중 일부
 발달재 휴게소에 남아있는 나무 조각 중 일부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저고리 사이로 흘러내린 아낙의 젖가슴에 매달린 아이들의 모습은 순진하기만하고, 선비의 품에 안긴 여인네의 표정은 아련하고도 애틋하기만 합니다. 대부분의 조각품들이 철거되었다고는 하지만 한량의 발걸음으로 넘는 박달재라면 마음의 풍류를 즐기기엔 아직도 충분합니다.

어서 떠나라고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지만 갈 길이 있으니 박달재를 넘어섭니다. 박달재를 넘고 봉양을 지나 영월을 향해 달리다보니 한반도 지형으로 볼 수 있는 진입로가 나옵니다.

몇 시까지는 꼭 가야한다는 게 없으니 한반도지형을 보러 못 갈 일도 없었습니다. 동강을 경계로 하여 건너 쪽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한반도 마을은 영락없는 한반도입니다.

봄바람 같은 마음으로 영월읍내로 들어서니 영월 단종문화제가 열리는 동강둔치까지 길 양옆으로 내걸린 청사초롱이 안내합니다. 빨갛고 파란색으로 내걸린 청사초롱의 안내를 받으며 찾아간 축제 행사장에서는 전국노래자랑이 녹화되고 있었습니다.

여느 축제와 마찬가지로 먹을 것들과 볼 것들이 넘쳐나고, 직접 해 볼 수 있는 체험장들도 즐비합니다. 한쪽에서는 홍두깨로 민 국수를 조리해 팔고, 한쪽에서는 벌겋게 달군 쇠를 망치로 두드리며 호미나 낮과 같은 연장을 만듭니다. 가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가훈을 써주고, 지푸라기 공예가 궁금한 사람은 새끼를 꽈서 멍석이나 둥구미를 만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영월 관풍헌에서 재현된 '조선시대국장 견전의'

동강둔치에 마련된 행사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오후 5시부터 재현될 조선시대국장 견전의를 보러 1km쯤은 떨어져 있는 관풍헌을 찾았습니다. 관풍헌은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청령포에서 유배 중에 홍수를 피해와 생활하다가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한 곳입니다.

한반도 지형을 닮은 산세
 한반도 지형을 닮은 산세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영월읍 번화가에 있는 관풍헌은 맞배지붕 형식의 건물을 가운데로 하여 양쪽으로 각각 1채씩을 이어지은 3채의 건물로 양쪽 건물들은 안쪽은 맞배지붕, 바깥쪽만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조금은 독특한 구조입니다.

정면 3칸 규모의 가운데 건물에는 약사전이라는 편액이 달려있고 안에 불상이 모셔진 것으로 봐 사찰로 사용 중인가 봅니다. 정면 4칸의 왼쪽 건물에는 제례에 소용되는 기구나 의복 등을 보관하고 있었고, 조선시대 국장 중 한 부분인 견전의는 정면 5칸 규모에 관풍헌(關風軒)이라는 편액을 달고 있는 오른쪽 건물에서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관풍헌 내부는 이미 걸레질까지 하여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습니다. 행사가 시작되기 2시간 전인 오후 3시, 제일 젊어 보이는 이도 나이 60은 훨씬 넘었을 것 같은 남자어른들이 제상에 올린 제수들을 진설합니다. 광택이 반짝거리며 나도록 잘 닦아진 유기제기에 과자며 견과류의 과실들을 돌탑이라도 쌓듯 정성스레 차곡차곡 채워갑니다.

동강 둔치에서 펼쳐지고 있는 영월 단종 문화제
 동강 둔치에서 펼쳐지고 있는 영월 단종 문화제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전국노래자랑 녹화 현장
 전국노래자랑 녹화 현장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축제장 내부에 마련된 사진 전시장
 축제장 내부에 마련된 사진 전시장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제기가 제수가 가득 채워지면 제수의 이름이 적힌 한지로 도포자락을 여미듯이 씌우고, 한지를 꼬아 만든 끈으로 묶고 매듭을 하여 차례대로 제상에 올렸습니다. 떡과 나물은 물론 밥과 국도 진설되었습니다. 종묘제례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독특한 모양의 술잔과 시접(숟가락 젓가락을 담든 그릇)도 준비되었고 향불을 피울 향로와 향을 담아 놓는 향합도 갖춰졌습니다.

영정이 먼저 눈에 띄는 요즘의 상가들 모습과는 달리 조선시대국장 견전의를 재현하기 위해 마련된 제상에는 한지로 정성껏 접은 혼백을 담은 혼백상자만이 제상 안쪽에 마련된 교의에 조금 높여 모셔져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단종을 기리는 재현이라서 그런지 진설된 제수 중에는 유달리 과자가 많습니다. 제상 맨 앞 한 줄이 한 뼘이 넘게 괴어 놓은 과자들로 가득 채웠습니다. 여느 종묘제례의 진설과는 제수가 조금 다른 것 같다고 하니 장례식의 일부인 견전의이고, 약식으로 차린 것이니 조금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축제장에 마련된 등 터널
 축제장에 마련된 등 터널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동강둔치에 마련된 축제장
 동강둔치에 마련된 축제장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영월 시가지에서 펼쳐진 가장행렬
 영월 시가지에서 펼쳐진 가장행렬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지방자치단체인 영월군에서 주최하는 축제지만 단종과 관계된 제의례는 단종의 후손으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전주 이씨 종친들과 영월 엄씨 종친들이 공동으로 주관하고 있었습니다. 제수를 진설하던 사람들도 종친들이었고, 행사를 진행하거나 상주 역할을 할 사람들 모두가 종친들이었습니다.  

영월군 축제지만 전국에서 참가해 진행하는 전국축제라 더욱 뜻 깊어

영월군에서는 견전의를 재현하는데 필요한 행∙재정적인 지원만을 하고 제의례는 종친회에서 주관하고 있으니 지역 행사로 치러지는 축제지만 전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전주 이씨와 영월 엄씨 종친들이 조상을 기리는 마음으로 동참하게 되니 전국에서 참가하는 뜻있는 행사로 추진되고 있었습니다.

행사시작 1시간 전인 4시부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종친들이 분장을 하고 상제복장을 갖춥니다. 수염붙이는 분장은 껄끄러워서 싫다며 거부하는 사람도 있고, 그만한 불편함 쯤은 감수하겠다며 기꺼이 수염까지 붙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포장을 해 진설을 한 제수들
 포장을 해 진설을 한 제수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관풍헌 앞마당에 모인 종친들
 관풍헌 앞마당에 모인 종친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견전의에 앞서 예행연습을 하고 있는 종친들
 견전의에 앞서 예행연습을 하고 있는 종친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성글게 짜진 누런 빛깔의 삼베로 지은 상복을 입고 굴건제복을 합니다. 지푸라기를 꼬아 만든 새끼를 머리와 허리에 두르고,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짚신까지 신으니 사극에서나 봤던 조선시대의 상주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관풍헌 앞마당에는 혼백을 모시고 갈 요여도 준비되어 있고, 상주 한  사람씩 절을 올리거나 설 수 있는 크기의 돗자리도 24개가 깔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이 지긋한 어른들 사이에 20대쯤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도 몇몇 보입니다. 어른들의 성화에 끌려서 왔는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참가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젊은 모습이 한둘 보이니 자칫 고리타분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견전의 재현이 세대를 뛰어넘고, 세대를 이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될 것이라 기대됩니다.  

견전의에 참가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전주 이씨, 영월 엄씨 종친들
 견전의에 참가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전주 이씨, 영월 엄씨 종친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견전의 중 밥그릇 뚜껑을 여는 장면
 견전의 중 밥그릇 뚜껑을 여는 장면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견전의 에서 제수를 진설한 모습
 견전의 에서 제수를 진설한 모습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상제의 복장을 다 갖춘 사람들이 돗자리마다 들어서니 짧은 시간에 걸쳐 예행연습을 합니다. 상장(대나무 지팡이)을 짚고, 양손을 놓을 때는 이렇게 하고, 절을 할 때와 걸음을 걸을 때는 저렇게 해야 한다며 통일되고 단정한 예를 주문하며 강조합니다.

상제복장으로 격식을 갖추고, 단정한 예로 통일을 하니 분위기가 저절로 엄숙해집니다. 엄숙해진 분위기 속에서 집례자(사회자)가 읽어주는 홀기(제사지내는 차례를 적은 기록문)에 따라 견전의가 재현됩니다.

노란 광택이 반짝거리며 나도록 잘 닦은 세숫대야에 담긴 물에 손을 씻고, 향을 피우고, 차례대로 잔을 올립니다. 집례자의 창(소리)에 맞춰 4배를 올리고, 애달픔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구성진 목소리로 독축도 합니다. 계속되는 집례자의 홀창에 따라 나머지 순서가 진행되는 것으로 조선시대국장의 일부인 견전의(발인제) 재현은 계속되었습니다.  

집례자의 안내에 따라 견전의 재현을 마친 사람들은 제수로 진설하였던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을 합니다. 정성껏 마련하고 정갈하게 진설한 제수는 제사를 지낸 종친회 사람들끼리만 나누어 먹는 게 아니고, 재현되는 견전의를 구경하기 위해 관풍헌을 둘러섰던 사람들에게까지 골고루 남김없이 나누어지는 것으로 일련의 행사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견전의 재현을 마치고 촬영한 단체사진
 견전의 재현을 마치고 촬영한 단체사진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우리나라의 수많은 지방자치단체 중 한곳인 영월군에서 주최하는 제44회 단종문화제 중 일부인 조선시대국장 견전의(발인제) 재현은 비록 전주 이씨와 영월 엄씨로 한정되었지만 행사를 주관하고 참가하는 사람을 전국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축제의 뜻과 의미에서 지방단위를 넘어선 듯합니다. 

희미해져가는 전통문화를 발굴하고, 전 국민을 행사의 주체로 포용하며 계승해가는 행사였기에 영월에서 치러지는 단종문화제는 의미와 형식을 세세연년 더해가며 강원도 제일의 문화축제로 발전할 거라 기대됩니다.     


태그:#단종문화제, #영월, #견전의, #관풍헌, #박달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