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김규정 화가로부터 이제 막 완성했다며 그림이 도착했습니다. 그림을 보는 순간 가슴이 울컥하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4대강사업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굴착기 바퀴 아래 무참히 죽어가는 생명들을 표현한 '4대강은 용산을 따라 흐르고'라는 제목의 그림이었습니다.
망루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간 용산참사에 빗대어 단양쑥부쟁이, 흰수마자, 꼬마물떼새, 두루미, 어름치, 자라 등 4대강에 기대어 살아가던 생명들이 고립무원의 망루에서 죽음의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죽음 그림자가 휩쓰는 4대강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저들의 눈망울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 그림은 4대강사업을 과장하거나 단순한 상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림이 도착하고 바로 이틀 뒤인 지난 4월22일, 한강 살리기 공사 구간에서 물고기들의 떼죽음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물막이를 하고 강바닥을 준설하는 현장에서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동물을 오도 가도 못하게 하는 토끼몰이처럼, 가물막이 준설공사가 물고기들의 떼죽음을 가져옴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물고기들이 떼죽음 된 현장을 감추기 위해 공사 관계자들이 흙으로 덮어버린 것처럼, 지금까지 4대강공사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물고기 떼들이 죽었을까요?
4대강사업은 단양쑥부쟁이 멸종 작전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은 물고기만이 아닙니다. 한강 살리기 공사 구간에는 단양쑥부쟁이의 세계 유일의 서식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멸종위기의 세계 유일 서식지라고 해서 이명박식 강 살리기 삽질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굴착기가 단양 쑥부쟁이 서식지를 뒤집어 버렸습니다. 세계 유일의 식물이 살아가는 생태 자원의 보물창고마저 대책 없이 파헤치는 무모한 정권 앞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뿐입니다.
정부는 국민의 비난을 받고서 뒤늦게 다른 곳으로 이식을 한다고 난리입니다. 그러나 이식 현장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4월 13일 SBS 8시 뉴스를 보니 호미나 도구로 조심스럽게 캐는 것이 아니라, 파랗게 올라온 단양쑥부쟁이 새싹을 잡초 뽑듯 그냥 맨손으로 잡아당기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다리를 자르듯, 잔뿌리가 잘려나간 식물이 살 수 있을까요? 이명박 정부의 강 살리기가 무엇인지 그대로 보여주는 현장입니다.
생명의 신음 소리만이 흐르는 4대강봄소식을 따라 한강을 걸었습니다. 밝은 봄 햇살이 여울에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커다란 입을 뻐끔뻐끔 벌리며 숨을 가쁘게 헐떡이고 죽어가는 커다란 누치 한 마리였습니다.
누치가 왜 여기 죽어가고 있을까? 답을 바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200여m 위에 수십 대의 굴착기와 덤프트럭들이 강물 속을 파헤집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강을 왜 파헤쳐야하는 것일까요? 이곳의 아름다운 여울도 앞으로 며칠 지나면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사라질 것입니다.
죽어가는 누치를 발견한 1주일 뒤, 30여명의 블로거들과 함께 다시 이곳 여울을 찾았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덕에 조만간 사라질 한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는 여울에 함께 발을 담가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모두가 신을 벗고 마지막 한강에 발을 담가보았습니다.
여울에 사는 물고기들을 블로거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족대를 들고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직 이른 봄이라 차가운 수온 덕에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어왔습니다. 이곳저곳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족대를 들이밀었지만,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이곳 여울은 한국 토종 어류인 돌상어와 꾸구리들의 서식처였습니다. 특히 4월엔 천연기념물 어름치가 여울 바로 시작점에 알을 낳고 그 위에 돌을 물어다 탑을 쌓습니다. 이것을 어름치의 산랍탑이라고 부릅니다. 이곳에 당연히 있어야 할 어름치 산란탑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름치 산란탑은 고사하고 돌상어나 꾸구리, 돌고기나 쉬리 등의 물고기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울 물 속을 걸어 다니면 바위틈에 있다 놀라 도망가는 물고기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고기가 전혀 없었습니다.
발이 시릴 정도로 물이 차갑기 때문에 물고기가 없는 것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돌상어, 꾸구리, 쉬리 등 여울에 사는 물고기들은 얼음이 꽁꽁 어는 추운 겨울에도 여울 자갈 아래 숨어 한 겨울을 보냅니다. 여울에 사는 물고기들은 여울을 떠나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4대강사업은 생명에 대한 테러여울에 물고기들이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던 것은 바로 위의 준설공사 굉음 소리에 물고기들이 놀라 도망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속에서는 소리가 공기 중보다 4배나 빠르게 전달됩니다. 거대한 굴착기들이 강바닥을 파헤치고 있으니 물고기들에게는 집을 흔드는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상황 변화에 민감한 물고기들이 겁을 먹고 도망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은 공사 중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4대강사업이 완공되면 물고기들이 더 살기 좋은 환경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또 공사로 인해 사라진 물고기들은 복원 및 증식 사업을 통해 되돌리겠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4대강사업의 핵심은 강을 준설하여 수심을 깊게 하는 사업입니다. 돌상어, 꾸구리, 쉬리 등 한국 고유의 물고기들은 대부분 여울에 살아갑니다. 그리고 많은 물고기들이 여울 자갈과 모래에 알을 낳습니다. 천연기념물 어름치는 여울이 없으면 산란하지 못합니다. 4대강 준설로 인해 여울이 사라지고, 깊은 수로가 되어 물고기들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는데 어떻게 물고기들을 복원하고 증식할까요? 이명박 정부의 국민을 속이는 거짓말은 끝이 없습니다.
또 물고기들의 복원·증식 비용은 얼마나 될까요? 지난 4월22일 조선일보도 '최소 5~10년 걸려야 종 복원...예산도 엄청나'라는 기사에서 물고기들의 복원 증식이 어려운 일이며, 시간과 비용 또한 엄청난 것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강을 파괴한 후에 사라진 물고기를 돈을 들여 증식한다?" 세상에 어떤 바보도 이런 미친 짓은 안 할 것입니다. 잘 살고 있는 물고기들을 멸종시킨 후 왜 현실성도 없는 일에 혈세를 투입하는 것일까요. 자기 돈 아니고 국민 주머니 터는 것이니까? 4대강 공사현장에 나가면 손담비가 부른 '미쳤어!'라는 노래가 자꾸 제 입술에 맴돕니다. 이 노래를 4대강사업을 추진하는 모든 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100억 원짜리 4대강사업 환경영향평가서를 보니4대강사업 환경영향평가서를 살펴보니 강바닥 준설로 흙탕물이 일어나면 물고기 아가미에 염증 유발과 점막 파괴 등이 일어나 물고기를 치사시키고, 산란된 물고기 알을 매몰시키거나 질식시킨다는 등 물고기들의 끔찍한 피해에 대해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환경영향평가서에 나오는 준설의 피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하상 준설로 인한 탁도 증가, 하상 구조의 단순화, 어류 및 수중동물의 서식지·은신처 및 산란장 상실, 정상적인 먹이 연쇄에 영향, 탁도 증가로 부화율 감소.- 준설로 인한 어류의 서식처 및 산란장의 훼손이 발생하며 여울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어 하천의 다양성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됨- 저서무척추동물과 어류의 현존량과 종 구성에 영향을 미침. 고농도의 현탁 입자는 어류 아가미에 염증을 유발하거나 점막의 파괴와 감염을 유발하여 치사시킬 수 있음. 부유입자는 산란된 물고기 알을 매몰시키거나 질식시키는 등 산란장 교란으로 종수 및 개체수 감소를 유발 - 하상 준설 지역 조사 결과, 생물 종수가 줄어들고 대부분 오염 내성이 강한 종들이 차지 위의 4대강 환경영향평가서가 지적하고 있듯이, 강바닥을 파헤치는 4대강사업은 물고기들에겐 대재앙입니다. 그리고 이번 물고기 1000마리 떼죽음은 재앙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공사 중에 죽어가는 물고기들뿐만 아니라, 4대강사업으로 여울이 사라지고 죽음의 수로가 됨으로써 아예 살 수 없는 환경이 되기 때문입니다.
환경부, 아직도 정신 멀쩡합니까?1000여 마리의 물고기가 떼죽음 당한 것에 대해 환경부는 30여 마리에 불과하며 누치 종류만 있을 뿐, 희귀종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을 환경단체가 조사한 결과 멸종위기종인 꾸구리가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꾸구리는 물고기 중에 유일하게 눈꺼풀이 있는 녀석입니다. 빛의 밝기에 따라 눈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어두우면 눈을 크게 뜨고, 밝으면 눈꺼풀이 줄어드는 특이한 물고기입니다. 꾸구리는 맑은 여울에 살아가는 물고기입니다. 4대강준설로 여울이 사라지니 굴착기를 피해 어딘가로 도망갔다가 준설하는 가물막이에 갇혀 죽어간 것이겠지요.
지난해 가을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정신차리세요. 장관님'라며 질타하자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정신 멀쩡합니다'라고 강변하였습니다.
이렇게 정신 멀쩡한 환경부 장관님 휘하에 있는 정신 멀쩡한 환경부 직원들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멸종위기종 꾸구리가 없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특히 지난 가을 국정감사에서 환경부 장관은 건강한 하천을 위해 4대강을 수로로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환경부가 정신이 멀쩡하다면 하천의 건강성은 '많은 물'이 아니라, 하천의 '다양한 환경'임을 왜 모르는 것일까요?
환경부가 정말 정신이 멀쩡하다면, 2004년과 2005년 홍수 예방을 위한 한강 준설 계획에 대해 생태계 파괴와 수질 악화가 예상된다며 사업을 취소시켰던 것을 왜 기억하지 못할까요? 5년 전 수질악화와 환경파괴를 이유로 준설 사업을 취소시킨 바로 그 장소에 이명박 정부가 4대강 공사를 하고 있고, 바로 그 자리에 꾸구리를 비롯하여 1000여마리의 물고기가 떼죽음 당했습니다. 5년이 기억하기에 너무 긴 시간일까요? 5년 전 일을 기억조차 못하면서 정신이 멀쩡하다고 할 수 있는지 환경부 장관과 관계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신 멀쩡한 환경부 덕에 지금 4대강에 사는 생명들이 망루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 용산참사처럼 죽음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생명들이 죽어야 저 광란의 삽질이 멈추게 될지... 지금 4대강엔 무자비한 굴착기의 굉음 사이로 무수한 생명들의 죽음의 신음 소리만이 흐르고 있습니다. 봄이 왔으나 생명이 피울 수 없는 안타까운 죽음의 4대강입니다.
덧붙이는 글 | 오늘 기사에 사용된 김규정 화가의 삽화는 4대강을 지키기위해 모든 사람에게 제공됩니다. 무한 펌질, 무한 복사 가능합니다. 김 화가는 더 널리 퍼가주기를 간곡히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림이 완성되는대로 계속 제공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4대강 죽이기의 진실을 밝힌 책 <강은 살아있다>를 널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책 하나가 열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책을 선물하는 것으로도 강을 지키는데 동참하는 것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