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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에 수놓아져 있는 꽃구름들
 농장에 수놓아져 있는 꽃구름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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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모처럼의 나들이길이다. 오랜만에 맛보는 토요일(24일)의 오후 시간. 늘 주어진 시간이라서 그리 소중한 줄 몰랐는데 몇 달 만에 그 시간이 주어지자 정말 꿀맛 같다고나 할까. 그 시간을 우리집 꼬맹이들과 즐기려 하는데 무슨 일들이 그리 겹치는지. 짬을 내어 친구 만나고, 이번에 시의원에 출마한다는 친구 사무실 개소식에 들렀다가 간다고 하니 아이들은 입이 삐죽 나왔다.

"피~, 이게 뭐야. 놀러가는 거 맞아?"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전주에서 익산 왕궁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도로변 벚꽃들은 어느새 화려함을 뒤로 하고 푸른 잎들을 내밀고 있었다. 작은 녀석은 지루한지 엄마 무릎을 베개 삼아 잠이 들었다. 딸아이는 심심한지 혼자 노랫말을 중얼거린다.

우리의 목적지는 늘푸른 수목원이다. 수목원 이름도 그곳에 가서 알았지만 익산 보석박물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꽃잔디 농원이 있다는 소릴 듣고 무작정 차를 몬 것이다.

수목원은 꽃잔디 농원이다. 어쩌다 마주친 수선화가 '저 좀 봐주세요'하지만 수만 평의 잔디밭 속 꽃잔디가 춘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골목길 따라 올라가면 꽃잔디의 향이 마음을 흔든다.
 골목길 따라 올라가면 꽃잔디의 향이 마음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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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진디 사이에 서있는 조경수들이 운치를 더하게 한다.
 꽃진디 사이에 서있는 조경수들이 운치를 더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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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은 동네 입구부터 시작된다. 아니 농장 주인장의 앞마당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해야겠다. 20여 가구 남짓한 동네 마당에 들어서면 연분홍의 꽃에서 풍겨오는 향기가 코와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꽃잔디는 골목길을 오르는 길부터 심어져 있다. 골목길을 따라 3분 정도 올라서면 들넓은 잔디광장 사이로 흰색, 보라색, 분홍생, 흰색, 빨간색 꽃잔디가 정원수 사이로 방긋방긋 웃고 있다.

꽃잔디 구경하느라 한 바퀴 돌다보면 1시간이 넘게 흐른다. 꽃구경하다 심심하다 싶으면 잔디밭에서 달리기를 한다. 그곳에서 뛰논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이곳 주인장 송호윤씨는 넉넉한 마음만큼 웃으며 바라본다. 그의 작은 소망은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편히 쉬었다가 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꽃도 구경하고 잔디밭에 앉아 김밥도 먹으면서 쉬게 하고 싶은 거지."

송호윤씨가 이곳에 꽃잔디 정원을 만들기 시작한 지 20년이 되었다 한다. 20여 년 전, 전북 장계에 갔다가 꽃잔디를 보고 얻어 와서 심고 가꾸고 하다 보니 지금의 꽃잔디 농원이 되었다. 그동안 야산과 밭이었던 이곳을 개간하고 가꾼 농장을 주인장은 자신의 생명만큼 소중하다 한다.

"고생도 많이 혔지. 그래서 이곳은 내 생명만큼 소중허지. 근데 이곳 농장 한쪽을 떼어 '국가식품클러스터' 공장을 짓는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여. 그래서 그랬지. 고것만은 안 된다고. 얘기를 하고 있는디 잘 될지 모르겄어."

꽃구름 타고 한 번 걸어보면 주인장이 뭐라 할까?
 꽃구름 타고 한 번 걸어보면 주인장이 뭐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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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넘는 시간을 담아 놓은 그림이란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담아 놓은 그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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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미 조성된 농장에 공장을 짓는 것보다 이곳을 관광단지로 활용하자고 시를 설득하고 있다고 한다.

한 부부의 20년 이상의 인생이 고스란히 바쳐진 농장을 국가 산업이라 해서 무조건 수용하려는 발상은 언제부턴가 행정의 일상사가 된 느낌이다.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4대강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댐건설이라는 명목으로 평생을 살아온 터전을 보상금 던져주고 내놓으라는 발상은 이제 좀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

꽃 구경도 하고 신나게 웃어보기도 하고....
 꽃 구경도 하고 신나게 웃어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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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에서 신나게 달리기 시합도 하며....
 잔디밭에서 신나게 달리기 시합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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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을 한 바퀴 돌며 사진을 찍고 오면 찬 한 잔이 기다린다. 오래 전부터 이곳에 자리 잡고 있던 한옥은, 지금은 그윽한 찻집으로 사용하고 있다. 작은 마당이 있고 마당 한 쪽엔 100년이 넘었다는 우물이 있다.

"100년이 넘었지요. 지금도 물이 마르지 않아요."

집과 함께 100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우물
 집과 함께 100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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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안주인의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물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 본 우물을 보며 아이들이 신기해한다.

"옛날엔 두레박으로 물을 떠서 먹었는데…, 이거 본 게 옛날 우물 길어 물지게에 지고 갔던 거 생각나네."
"맞아. 어른들은 물 한 방울 흘리지도 않고 잘도 가더만 우리들은 왜 그리 흘리는지. 반벌은 땅바닥에 흘렸지."

딸아이가 찍은 분홍빛 꽃길....
 딸아이가 찍은 분홍빛 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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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구경을 하고 한옥을 구경하거나 차를 마시다 우물을 구경하는 이들의 말엔 추억들이 듬뿍 묻어 있다.

도시에서 태어나서 자라거나 지금 사람들은 물지게를 모를 것이다. 그런데 집구경을 하다 화장실 벽에 걸려 있는 물지게를 발견했다. 그 물지게를 보자 지게를 지고 낑낑대며 물을 길렀던 일이 새롭게 떠오른다.

대체로 다른 수목원은 입장료를 받지만 이곳은 무료다. 오고가다 꽃구경 실컷 하고 세상살이에 지친 몸과 마음 던져놓고 가면 된다. 그리고 사람의 향취가 묻어나는 한옥에서 꽃을 감상하며 차 한 잔 마시다 가면 족하다. 주인장 내외의 넉넉한 마음도 함께 담아가면 더욱 좋고 말이다.

구경 실컷 하고 골목길을 내려오는데 자기 집 대문 앞에서 앞니가 빠진 할머니가 쑥과 텃밭에서 캔 시금치와 상추, 부추를 내놓고 팔고 있다 한 마디 한다.

"귀경 잘 했능가. 우리 동네가 꽃동네여 꽃동네."

그 말이 무척이나 정겹게 들린다. 내놓은 물건을 팔려는 마음보다 꽃구경 온 사람들의 구경이 흡족한지가 더 관심이 많은 듯 말이다.

한옥은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옛날에 사용한 가마솥이나 툇마루가 그대로 남아있다. 마루 뒤쪽의 문을 열면 꽃진디가 한 눈에 들어온다. 차향과 꽃향을 동시에 맡을 수 있다.
 한옥은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옛날에 사용한 가마솥이나 툇마루가 그대로 남아있다. 마루 뒤쪽의 문을 열면 꽃진디가 한 눈에 들어온다. 차향과 꽃향을 동시에 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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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늘푸른 수목원'은 익산 왕궁면에 있다. 이곳의 꽃은 대부분 꽃잔디이다. 그저 왔다가 자유롭게 구경하고 차를 마시고 집 마당 한 켠에 꽃을 심고 싶으면 사가도 된다.



태그:#꽃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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