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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제주 서귀포 중문해수욕장 들머리에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왼쪽)과 국내 최고령 해녀인 고인호 할머니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26일 오후 제주 서귀포 중문해수욕장 들머리에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왼쪽)과 국내 최고령 해녀인 고인호 할머니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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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옵써(이리 오세요)! 만 원! 만 원!"

26일 오후 제주도 중문해수욕장 들머리가 떠들썩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는 가운데, 해녀들은 직접 잡은 해산물을 벌려놓고는 올레꾼들을 자신들의 파라솔로 이끌었다. 이날 오전에 잡았다는 성게와 소라를 입에 넣는 순간, 싱싱함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이곳의 유명인사는 고인호(86) 할머니다. 국내 최고령 해녀인 고 할머니는 "함께 사진찍자"는 올레꾼들의 요청에 "백 번은 더 찍었다"며 손사레를 치면서도 카메라 앞에 섰다.

글자를 모르는 고 할머니가 삐뚤삐뚤 적은 한글 자모가 최근 제주올레 공식 서체로 재탄생되면서 고 할머니의 유명세는 더욱 커졌다. 올레길 곳곳에서 고 할머니의 글씨를 만날 수 있다.

고 할머니는 '화살표의 기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주올레는 단순히 인기 있는 도보여행코스를 넘어서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면서 지역경제에 큰 도움을 주는 사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제주올레 덕에 중문관광단지뿐 아니라 송이슈퍼도 돈 번다

26일 저녁이 가까워지자, 서귀포 월평마을과 대평포구를 잇는 제주올레길 8코스에는 새 찬 비바람이 모자를 푹 눌러쓴 얼굴을 때렸다. 신발은 젖은 지 이미 오래다. 우비로 몸을 꽁꽁 싸매도 옷이 젖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비바람은 또한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올레길은 비가 와도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며 "제주올레 초창기 수백 명의 사람들과 비오는 올레길을 걸은 적이 있다, 그날 '평생 맞은 비보다 더 많은 비를 맞았다'는 올레꾼들과의 추억은 잊지 못한다"고 밝혔다.

비바람 속 걷는 길이 크게 힘들지 않은 것은 길 위에서 만나는 '점빵(구멍가게)' 덕분이다. 특히, 올레길에서만 맛볼 수 있는 '올레꿀빵' 한 개면 주린 배를 달래기에 충분하다. 아이들 주먹만 한 크기의 팥빵에 유채꿀과 견과류를 입힌 올레꿀빵은 고소한 맛에 올레꾼들에게 큰 인기다.

점빵뿐 아니라 신선한 해산물로 제주 음식을 만들어 파는 '할망집'이나 도시사람들 눈높이에 맞춰 주민들이 만든 분위기 있는 카페·식당에도 올레꾼들이 많이 찾는다. 최근 올레길 주변에 점빵이나 카페가 많이 늘었다. 쇠락했던 마을경제가 올레길로 인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는 것이다.

27일 오후 올레꾼들이 서귀포 시흥초등학교와 광치기 해변을 잇는 제주올레길 1코스를 걷고 있다.
 27일 오후 올레꾼들이 서귀포 시흥초등학교와 광치기 해변을 잇는 제주올레길 1코스를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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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중문관광단지만 돈을 벌었지만, 이제는 마을의 점빵인 '송이슈퍼'가 돈을 벌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2007년 올레길 1코스가 만들어진 이후, 2008년에는 3만 명, 2009년에는 25만 명 이상이 올레길을 다녀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됐다. 2010년에는 40만 명 이상이 제주올레를 찾아 더 큰 기적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서명숙 이사장은 "올레길에 자판기 등의 편의시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올레꾼들이 있다"면서 "하지만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가게를 만들 수 있도록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으려 한다, 이미 오래된 코스에는 지역주민들의 가게가 많아져 올레꾼들의 불편함이 많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올레길에서 판매되고 있는 '간세(게으름을 나타내는 제주 사투리) 인형'도 지역사회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간세 인형은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헌옷이나 자투리 옷감을 이용해 만든 조랑말 인형이다. 인형 한 개 당 1만5천 원인데 판매 수익금은 모두 지역 사회와 제주올레를 위해 사용된다.

올레길은 진화 중... "5월 중 아이폰 어플 나온다"

길위의 안내 도우미 '간세'의 등장으로 제주올레길이 편해졌다. 사진은 제주올레길 1코스 시작점에 세워진 간세 이정표(왼쪽)와 시작점 표지석이다.
 길위의 안내 도우미 '간세'의 등장으로 제주올레길이 편해졌다. 사진은 제주올레길 1코스 시작점에 세워진 간세 이정표(왼쪽)와 시작점 표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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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은 진화하고 있다. 길 위의 안내 도우미 '간세'의 등장으로 걷는 길이 편해졌기 때문이다. 간세는 제주올레의 상징물로 제주 조랑말을 형상화한 이정표다. 제주올레 사무국이 현대카드의 도움을 받아 올레길 평균 1km 당 한 곳에 세웠다. 또한 코스 시·종점 표지석도 마련됐다.

실제 올레길을 걷다가 오름 정상이나 해변가에 세워진 파란색의 간세 이정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때론 지역 정보가 담긴 안장을 걸친 간세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올레꾼 사이에서 "인공적인 간세 이정표는 제주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볼멘소리도 적지 않다.

이에 서명숙 이사장은 "올레 길이 좁은 길에서 넓은 길로 이어질 때, 올레꾼들이 (기존 이정표인) 화살표와 리본을 발견하지 못하게 되는 때가 많다"며 "간세는 올레꾼들이 길을 잃지 않게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올레 사무국의 한 관계자는 "작년에 길을 잃었다는 한 여성 올레꾼을 찾는 데 4시간이 걸렸다, 올레꾼이 자신이 있는 위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간세 이정표에 번호를 매겨놓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구조 시간이 많이 절약될 것"이라고 전했다.

올레길은 최첨단 기술과도 이어진다. 26일 새 옷을 갈아입은 제주올레 홈페이지는 올레길의 날씨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등 누리꾼들에게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또한 아이폰 어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이 5월 중 마련된다. 위치기반 서비스 등을 이용해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제공된다. 

1년 전부터 제주올레에 디자인 등을 후원하고 있는 현대카드의 오준식 디자인실장은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이용객의 편의와 안전이 담보되는 제주올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놀라운 벤처이자 문화적 브랜드"라고 밝혔다.

한편, 제주올레 사무국은 올해 11월 9일부터 4박 5일 또는 5박 6일간 제주올레 축제를 열 예정이다. 서명숙 이사장은 "비수기인 11월 축제를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제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태그:#제주올레길, #올레길, #서명숙, #간세, #현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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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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