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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숨그네
책표지숨그네 ⓒ 이명화
신문에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숨그네>(헤르타 뮐러/문학동네)가 소개되었다. 노벨문학상이라는 타이틀보다도 '인간의 숨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네처럼 가쁘게 흔들리는 것을 상징한다는 '숨그네'라는 단어가 마음에 닿아 서점에서 이 소설을 만났다.

2차대전 후 루마니아에서 소련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열일곱 살 독인 소년의 삶을 충격적이고 강렬한 시적 언어로 그려냈다는 평가는 받는 작품.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상황을 응축된 시적 산문으로 그려내어 오래오래 남는 소설이다.

1953년 루마니아 니츠키도르프에서 태어난 헤르타 뮐러는 독일계 소수민족 가정에서 성장했다. 나치의 몰락과 루마니아 독재정권의 횡포를 침묵으로 지켜보았던 시골 마을의 강압적인 분위기는 어린 뮐러에게 정체 모를 공포와 불안을 심어주었고 그런 환경 속에서 언어를 향한 갈망이 싹텄다.

1982년, 루마니아 정부의 강도 높은 검열을 거친 작품 <저지대>로 문단에 데뷔. 남편과 함께 1987년 독일로 망명한 뮐러는 우연히 그녀처럼 독일로 망명해 베를린에 살고 있던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시인)'를 만나 그가 열일곱 살에 우크라이나의 수용소로 끌려가 오년간 강제노동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침내 두 사람은 함께 소설을 쓰자고 합의하지만 오스카 파스티오르는 2006년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그의 죽음 이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뮐러는 일년 후 소설을 써야한다고 결심. 그렇게 나온 것이 소설 <숨그네>다.

예언처럼 따라다녔던 말, "너는 돌아올 거야"

<숨그네>의 주인공 레오는 '오리나무 공원에서 밀회를 즐'기는 열일곱 살의 동성애자. 소년은 돌에도 눈이 달린, 골무 같은 소도시를 벗어나 '나를 모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고 싶어 한다. 수용소로 떠나야 할 시각, 할머니는 '너는 돌아올 거야'라고 말한다. 이 말은 2006년 작고한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가 수용소로 떠나던 날 들었던 마지막 말이기도 하다.

그는 가축운반용 열차에 몸을 싣고 우크라이나로 떠난다. 우연으로 보이는 작은 계기, 그 시간은 인간을 함정으로, 혹은 또 다른 낯선 세계로 이끈다. "너는 돌아올 거야." 할머니의 말은 잠언처럼 예언처럼 그를 따라다닌다. 소설은 수용소생활 시작부터 끝까지, 소년의 '배고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년에겐 죽음의 공포보다도, 강제된 노역보다도 가장 큰 공포가 배고픔이었음을 말한다.

이 소설은 배고픔의 연대기, 배고픔의 자서전이다. 배고픔이 인간을 이성에서 멀어지게 한다. 또 어떤 일도 저지를 수 있는 인간한계를 시험하는 곳에 배고픔은 언제나 등자안다. 사람들은 선잠을 자면서, 선잠을 먹고, 저녁이면 남의 것이 더 커 보이는 빵 바꾸기의 함정에 걸려들고 주식인 양배추수프 앞에서 이성을 빼앗긴다. 살아남아 고향에 돌아가지만 일평생 수용소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소년. 소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수용소의 확장판임을 알려준다.

내 안에 얼어붙은 바다...

책을 열면, 첫 장에 저자의 사인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나는 죽음의 공포에 삶의 욕구로 반응했습니다. 삶의 욕구는 낱말의 욕구였습니다. 오직 낱말의 소용돌이만이 내 상태를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낱말의 소용돌이는 입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을 글로 표현해냈습니다."

소설 속 곳곳에 '죽음의 공포'에 '삶의 욕구'로 반응한 '오스카 파스티오르'가, 주인공 레오의 생각과 말을 통해 반영되고 있다. 공포와 두려움, 강제노역으로 인한 육체의 한계, 숨그네… 그의 생각이나 말은 상황과 반대인 반어적 표현들로 반응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이기를 거부하도록 만드는 실존의 절대영도에서도 그를, 인간으로 남을 수 있게 지탱해준 것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빼앗긴 시간, 배고픔... 학습된 기억의 횡포 등 많은 것을 생각했다. 시대와 방법만 다를 뿐,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숨그네'와 같은 상황, 수용소와 다름없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한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 생명과 직결된 먹는 행위가 결코 일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군가에겐 '숨그네'일 수 있다.

5년 동안 그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너는 돌아올 거야', 할머니의 그 한마디 때문이었다.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수용소에서의 삶, 강제된 시간과 노동과 굴욕의 시간을 경험한 자는 자유로운 몸이 됐음에도 그 자유로움을 즐기거나 누리지 못했다. 주인공인 소년에게 세상은 확장된 수용소였던 것이다. 소년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고향을 한 번도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과 자신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전혀 다른 세계 사람이 돼버린, 아웃사이더.

책을 다 읽고 덮고 난 뒤에도 긴 여운이 남는다.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상황은 처참했다. 문자는 아름다웠다. 나는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처참함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 문학의 명예였다."(헤르타 뮐러)

한때,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적 에세이, 에세이적 소설'을 나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 간결한 문체와 낮은 자들의 비참한 삶을 통해 시대를 읽는 시선,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또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기독교냄새를 풍기지 않으면서도 기독교의 정신이 반영된 소설을 쓰고 싶었다. 박완서의 소설들을 읽으면서는 유년의 기억을 되살려서, 또한 나만의 경험이 깃든 소설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 뜨겁게 피어올랐고 장수 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고 카프카가 말했던가. 오랜만에 소설을 쓰고 싶다는 숨은 욕구가 뜨겁게 피어올랐으니 내 안에 얼어붙은 바다가 얼마쯤 부수어졌을까.

덧붙이는 글 | 책: <숨그네>
저자: 헤르타 뮐러
출판:문학동네
가격:12,000원



숨그네 (반양장)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문학동네(2010)


#숨그네#헤르타 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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