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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딸 사람이 없어 농익은 딸기가 썩어가고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며칠 전에 들었습니다. 산책길에 만난 딸기 하우스 주인으로부터 들은 말입니다. 사연인즉슨 쌓아놓은 쌀가마가 무너지는 바람에 허리를 다친 주인의 아내가 한 달째 병원에 누워있다는 것입니다.

 

병치레에 골골대느라 한동안 바깥출입을 못했으니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알 리가 있나요. 병문안도 병문안이지만 얼마 전에 돌아가신 마을 끝 집 할아버지 문상도 못 갔습니다. 하필 정기검진을 받느라 서울 있을 때 돌아가신 터라 알았을 땐 이미 삼일 탈상이 끝난 때였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이 겹쳤다지만 이웃의 도리를 제대로 못했구나 싶어 미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다시 한 번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했더니 하우스 주인이 별 말씀을 다 한다고 펄쩍 뛰더군요. 내가 허구한 날 병을 달고 산다는 것을 아는 주인장, 넉넉한 마음으로 오히려 내 걱정을 더 해 줍니다. 그러면서 딸기가 아주 맛있으니 심심풀이로 얼마든지 따다 먹으라고 합디다.

 

 

 

그 아까운 딸기를 '놉'이라도 얻어 따다 팔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럴 가치가 없다고 합니다. 딸기 양도 많지 않는데다 올 해는 냉해가 유난히 심해 품질도 시원치 않아 품삯에 운송비에 이것저것 따지면 오히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판이니 그냥 갈아엎는 게 상수라는 것입니다.

 

참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봤자 손에 쥐는 게 없으니 이게 뭔 꼴인가 싶습니다. 이러니 젊은이들이 농촌에 남으려고 하겠습니까. 우리 아들 생각에 남의 일 같지 않은 게 요즘 농촌 실정입니다. 원예가 전공인 아들 놈. 기말시험 끝나면 곧장 토마토와 파프리카를 재배하는 유리온실로 갈 판입니다. 교수님 추천으로 취업이 결정되었거든요.

 

생고생을 해서 키운 딸기가 속절없이 썩어 간다는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어떻게든 하우스 주인장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어 안 돌아가는 머리를 굴리느라 애를 썼지요. 농촌체험이란 것도 있지 않습니까. 도시에 사는 지인들에게 자기가 먹을 딸기를 제 손으로 따게 하는 재미도 맛보게 하면서 더불어 딸기 밭 주인장에게는 약간의 소득도 쥐여주게 한다. 이거야말로 일거양득 아니겠습니까.

 

쉴 새 없이 전화기 버튼을 누른 결과 겨우 두 명 건졌습니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고 뭔 주부들 일정이 그리 빵빵하답니까. 시간 있다는 '아줌씨'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딸기 고랑에 엎드린 지 한 시간도 채 못 돼 두 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계속 쪼그린 상태에서 딸기를 따는 작업이니만큼 우선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고 무릎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한 철 농사라지만 하우스 농사가 사람을 얼마나 골병들게 하는지 깨닫는데 필요한 시간은 고작 40여 분 남짓이더군요.

 

안타까운 마음에 내 돈만 없어지고 있습니다. 딸기체험인단을 못 구했으면 체념이라는 것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냥 앉아있으면 새빨간 딸기가 눈앞에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러면 그냥 못 참고 딸기밭으로 직행해 기어코 따야 직성이 풀리는 지병을 낸들 어찌합니까.

 

아무리 주인장이 그냥 따다 먹으라고 했지만 양심상 남의 딸기를 그냥 먹을 수는 없고, 따는 족족 가까운 지인들에게 돌립니다. 울 남편은 "그냥 썩히기 아까우니 당신이 따다 팔라"고 합디다만 손만 스쳐도 무른 자국이 생기는 '짜잔한' 딸기를 '우찌' 팔겠습니까. 그냥 퍼다 주고 내 지갑 털어 딸기 주인장 손에 억지로 쥐여주는 짓을 벌써 몇 번째 하고 있습니다.

 

물론 딸기밭 주인장과 우리 남편에게는 친구들에게 판 것이라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참말로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능력 없으면 못 본 척 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 들어오듯이' 마이너스 통장만 겁나게 올리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인터넷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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