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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승부사', '정치 10단', '한판 뒤집기의 달인' 노무현 대통령을 지칭하는 표현 가운데 가장 우스운 표현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바보스럽게, 단순하게 가고자하는 뜻을 편 건데 그것을 마치 고도의 판단을 가지고 하는 것처럼 보는 게 우습다." 

 

"참여정부 통틀어 단일 보직에 제일 오래 있었던, '명이 질긴 사람'"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한 양정철 노무현재단 사무처장(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말이다. 양 사무처장은 참여정부에서 4년간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특강'의 다섯 번째 강연자로 나선 양 처장은 '참모의 눈에 비친 바보 노무현'이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을 직접 모시면서 봤던, 대통령을 같이 모셨던 분들을 가슴 아프게 했던 대통령의 바보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국의 대통령에게 '바보'라는 표현 붙인 것, 참 역설적"

 

지난 11일 오후 7시 30분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강연은 노 전 대통령의 생전 인터뷰 영상과 함께 시작되었다. 영상 속 노 전 대통령이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바보, 그동안에 사람들이 나한테 붙여줬던 별명 중에서 제일 맘에 드는 별명입니다. 저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보 정신'으로 살면 잘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눈앞의 이해관계로 판단을 하니까 자꾸만 이기적인 행동만 나오고 영악한 행동만 나오는 거죠. 바보, 하는 그게 그냥 좋아요."  

 

양 처장의 이날 강연은 노 전 대통령의 '바보스러움'을 보여주는 일화들로 꾸려졌다. 양 처장은 자신이 "지금까지 '노무현 특강'의 강사로 나섰던 분들보다 낮은 직위에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과는 격의 없이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며 "옆에서 지켜본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자 한다"고 전했다. 이날 강연은 2002년 대선후보 시절부터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까지의 일화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양 처장은 먼저 '바보'의 사전적 정의에 대해 말했다.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 어리석고 멍청하거나 못난 사람을 욕하거나 비난하여 이르는 말'이란다. 양 처장은 "이런 표현을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정치인,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에게 붙였다는 게 참 역설적"이라면서 "이런 모욕적인 표현을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즐겨 부르고, 당사자가 이런 표현을 가장 좋아한다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라고 질문했다.

 

양 처장은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있을 당시 가장 바보스러웠던 것으로,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이후 첫 회동을 꼽았다. 양 처장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이후 정 후보가 엄청난 권력분점을 요구했다"고 회고했다. "국무총리· 비서실장· 국정원장을 포함한 내각의 절반을 요구하는가 하면 공기업과 그 산하 단체장의 인사를 문서로 요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자,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이기도 했던 김원기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이 '꾀'를 냈다. "정몽준 후보 쪽에 '노무현 후보로부터 구두로 약속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나중에 깨자는 것"이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김원기 고문에게 화를 냈다. "신의 성실의 원칙에 의해서 정권을 공동운영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물건 거래하듯이 권력을 거래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양 전 비서관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균열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양 처장은 대통령 재직시절의 노 전 대통령을 '권력 수단을 스스로 다 놓아버리고 참 말만 많았던 바보'로 기억했다. 양 처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답지 않은 언행을 한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는 조작된 이미지"라며 "꼭 절박하게 해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은 수다쟁이나 다변가가 결코 아니었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서 이해를 구하고 싶다"고 운을 뗐다.

 

양 처장은 "과거 제왕적 대통령들은 수많은 권력기관, 공안기관, 언론을 장악하고, 당에 대해서는 결정적인 공청권을 가지고 여의도 정치를 쥐락펴락할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그 모든 수단을 놓아버린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국민들에게 여러 가지 이해를 구하고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국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언론에 대통령의 말실수가 많이 보도된 것에 대해 양 처장은 "참여정부 청와대에서는 언론통제를 하지 않고 빗장을 다 풀어서 수십군데의 매체가 들어와 있었고 대통령의 사소한 말 실수들이 필터링 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노 전 대통령은) 고치게 하거나 기자들에게 압력을 넣는 일을 철저하게 금지시켰다"고 전했다.

 

이어서 양 처장은 자신을 포함한 청와대 홍보 참모들이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이미지 연출을 못하게 했던 대통령의 고집"이었다고 회고했다. 양 처장은  "나를 쇼하고 연출하고 이벤트 하는 대통령으로 만들지 말라"는 대통령의 '고집'으로 인해 청와대 안에서는 '연출', '이벤트'와 같은 말이 일종의 금기어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 처장은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50%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90% 정도의 언론을 장악하고 온갖 이벤트와 쇼를 다하고 있는데도 50%의 지지율은 기적"이라고 꼬집었다. 또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걸 이용했다면 상당한 지지율을 받았을 것"이라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바보스러운 선택은 자결하신 것"

 

이야기는 대통령 퇴임 후 봉하마을에 머물렀던 때로 넘어갔다. 양 처장은 "국민들의 의식을 바꾸는 데 크게 보탬이 될 만한 책을 만들어보자"는 대통령의 제안을 받고 봉하마을에 함께 내려가 있었다. 양 처장은 당시를 "대통령님 생애에서 가장 홀가분하고 평안했던 시기"로 회상했다.

 

양 처장은 당시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을 찾은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도움이 될까 3~4개월 정도 고민하시는데 옆에서 보기에 답답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부모들에게도 공감이 가고 아이들에게도 감동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노 전 대통령은 아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줄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양 처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바보스러운 선택은 자결을 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은 법률적으로 책임질 일이 하나도 없었지만 주변에 있는 분들이 대통령 모르게 대통령이 부끄러워할 만한 일을 하셨던 게 사실이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분들을 대신해 모든 멍에와 책임을 안고 가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노무현 대통령은 인간의 법정보다는 역사의 법정에 서기를 원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양 처장은 "오는 23일 노무현 대통령의 1주기가 다가온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추모하는 것은 고맙지만 '감성적인 추모'는 1주기로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주기 이후에는 인간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이 왜 그토록 치열하게, 바보스럽게 한 길을 걸으려 했고 결코 굴하지 않고 그 길을 가려고 했는지 생각하면서, 시민들 각자의 영역에서 그분을 회고하고 연구하는 분위기로 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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