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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짐하게 썰어놓은 우럭회. 지금은 양식한 우럭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재수가 좋은 날은 근해 유자망이 잡아온 자연산을 즐길 수 있어 항구도시에 사는 보람을 느낀다.
푸짐하게 썰어놓은 우럭회. 지금은 양식한 우럭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재수가 좋은 날은 근해 유자망이 잡아온 자연산을 즐길 수 있어 항구도시에 사는 보람을 느낀다. ⓒ 조종안

요즘 횟집에 가면 싱싱한 우럭회 1kg이나 광어회 1kg이나 도미회 1kg이나 이름만 다를 뿐 값은 거기에서 거기다. 여기에서 느끼는 것은 우럭의 놀라운 신분(?)상승이다. 생선회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도미, 광어 등과 같은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매운탕도 그렇다. 홍어나 조기, 광어 매운탕 이상으로 우럭 매운탕을 좋아하는 손님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는데, 그동안 몰라서 그렇지 '쌈빡한' 국물만으로도 고급생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생선이라 하겠다.

'우럭 지리탕'도 빼놓을 수 없다. 예전에는 '복지리탕'을 으뜸으로 쳤는데 언제부터인지 우럭 지리탕 애호가들이 나타났다. 파, 마늘 등 간단한 양념만 넣고 끓이다가 굵은 천일염으로 간을 맞추면 맑은 '우럭 지리탕'이 되는데, 국물이 깔끔하고 개운하기 이를 데 없어 애주가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는다. 

국물이 끓을 때 청주나 소주를 조금 넣어주면 잡냄새를 제거해준다고 하는데 필자는 조금 달리 생각한다. 식당 주방장에게 사정해서라도 미나리를 듬뿍 넣을 것을 권한다. 상큼한 미나리향과 깔끔한 국물이 입안에서 하모니를 이루면서 맛이 극에 달하기 때문이다. 뱃속의 청소부로 칭하고 싶을 정도다. 그만큼 입맛을 당기면서 속풀이에도 좋다는 얘기다.

70년대만 해도 잘 모르던 생선  

  ‘복 지리탕’을 뺨치는 ‘우럭 지리탕’. 담백하고 구수한 국물 맛이 일품인데, 누렇게 떠있는 기름이 침샘을 자극한다.
‘복 지리탕’을 뺨치는 ‘우럭 지리탕’. 담백하고 구수한 국물 맛이 일품인데, 누렇게 떠있는 기름이 침샘을 자극한다. ⓒ 조종안

지금이야 미디어의 발달로 두메산골 초가 안방에서도 TV를 통해 우럭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비린내가 진동하는 선창가에 살면서도 우럭을 모르는 아주머니들이 많았다. 집에서 자식들 키우면서 살림만 했으니 모를 수밖에.

60-70년대만 해도 우럭은 알려지지 않은 생선이라서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우럭회도 80년대 중반쯤부터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필자도 광어나 도미 등 고급 어종의 수요가 늘면서 양식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값이 저렴하고 맛이 고소한 자연산 우럭을 주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군산 해망동에도 70년대 중반부터 해변에 가정집을 개조한 횟집이 하나씩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횟집단지가 조성되었는데, 당시 손님들도 우럭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도미, 광어, 농어 등을 생선회의 지존으로 여기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래도 어부들과 애주가들은 소주 안주로 그만이라며 우럭을 좋아했고, 미식가들은 '우럭회'와 '대가리탕'을 즐겨 먹었다. 필자도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우럭 대가리탕'의 진미를 알게 되었는데, 처음엔 맛있는 생선 다 놔두고 우럭 머리만 찾는 선배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두일미(魚頭一味)라는 말이 있다. 생선은 살보다 머리가 맛이 좋다는 뜻이겠는데, 도미 머리 부분이 가장 맛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필자는 도미보다 '조피볼락'으로 불리는 우럭 머리를 추천하고 싶다. 대신 크기가 최소한 어른 주먹 정도는 돼야겠지.

우럭 머리 크기에 단서를 붙이는 이유는 채소든 생선이든 성숙했을 때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과일도 익어야 달고, 닭도 육계가 맛있는 것처럼 생선도 큰놈이 제 맛을 낸다는 것이다. 쪽쪽 빨면서 발라먹는 재미도 쏠쏠하고. 아무튼, 어종으로 치면 우럭보다 도미가 고급생선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우럭 큰놈 대가리는 참조기하고도 바꾸지 않는다!"는 옛날 어른들 말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시골에 사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군산으로 생선장을 보러 나와 우럭을 조기로 알고 사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못된 장사꾼에게 속아서 사가기도 했지만, 값이 싼데다 모양이 조기 큰놈과 비슷하니까 물어보고 자실 것도 없이 사갔던 것이다. 세상이 그만큼 어두웠다는 얘기도 되겠다.

미식가들이 즐겨먹던 '우럭 대가리탕'

 뼈와 머리가 들어간 우럭 매운탕. 얼큰하고 개운한 우럭 매운탕은 육수와 미나리를 교대로 넣어주면서 우려낼수록 맛이 더한다.
뼈와 머리가 들어간 우럭 매운탕. 얼큰하고 개운한 우럭 매운탕은 육수와 미나리를 교대로 넣어주면서 우려낼수록 맛이 더한다. ⓒ 조종안

생긴 모양이 조기와 비슷해서 많은 사연과 곡절을 담고 있는 우럭은 살결이 회백색이며 부드러운 육질과 고소한 맛을 함께 지니고 있어 미식가들이 즐겨 찾았다.

우럭 마니아들은 70년대 중반에도 점심때면 택시비를 들여가며 '우럭 대가리탕'을 먹으러 다녔다. 특히 애주가들에게 속풀이 용으로 인기가 좋았는데, 점심 때는 자리가 없어 30분 넘게 기다리거나 그냥 나오는 경우도 흔했다.  

군산시 죽성동 옛 청과시장 부근에 '우럭 대가리탕' 전문식당이 있었는데, 주방장 출신 주인아저씨 손맛은 남달랐다. 당시만 해도 30대 후반이었던 주인이 푸짐하게 끓여내는 '우럭 대가리탕'은 개운하고 시원한 국물만으로도 '우럭 대가리는 참조기하고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헛소리가 아님을 증명해주었다.

어른 주먹보다 큰 머리만 넣고 끓여낸 '우럭 대가리탕'은 아가미 부위 가시에 붙은 살이 연하고 고소했고, 발라먹는 재미까지 더해져 입맛을 돋워주었다. 지금도 회를 뜨고 남은 뼈와 머리에 미나리를 넣고 푹 고아낸 우럭 매운탕은 애주가들에게 한우갈비 이상으로 대우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육질이 부드럽고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우럭은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생선이었다고 하는데, 간 기능 향상 및 피로회복 등에 좋은 메티오닌, 함황아미노산 함량이 다른 어류에 비해 월등히 높게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우럭 대가리탕'도 이제는 옛말  

엊그제는 시내에 나가 볼일을 보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허기를 느끼면서 뭔가 먹고 싶어졌다. 그러나 사먹을 만한 음식이 생각나지 않았다. 마침 서 있는 곳이 선배들과 단골로 다니던 식당과 가까워 '우럭 대가리탕'이 떠올랐다.

식당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으나, 누구에게 묻지 않고 찾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도 오래되어 기억력을 탓할 수도 없었는데,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니까 이마에 주름꽃이 피기 시작한 주인아저씨가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누구시더라, 어디서 많이 보든 양반인디 기억이 안 나네. 이놈의 머리도 나이를 먹응게 생선 대가리가 됐는가벼!"

"아저씨 입담은 여전하시네요.(웃음) 전에 선배들이랑 자주 다녔지요. 그런데 지나가다 옛날에 먹던 '우럭 대가리탕'이 생각나서 한 그릇 먹으려고 들어왔습니다."
"하이고! 옛날 허고 같간듀. 지금은 우럭도 높은 양반 돼가꼬 구경허기도 힘들어유. 회고 머시고 어판장 허고 횟집들이 이러고저러고 허니께 시장에도 안 나오잖유. 만약 지금 대가리탕을 헌다믄 인심 잃기 딱 좋죠. 대가리고 머시고 다 옛날 얘기입니다!"

돈보다 인심을 걱정하는 아저씨, 손사래를 치면서 한탄이 섞인 아저씨 설명을 듣고서야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것은 모르고 내 입맛만 앞세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아저씨의 아픈 가슴을 찌른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 그릇에 1만 원쯤 할 것으로 알고, 큰 맘 먹고 들어갔는데, 어찌나 미안했는지 다른 음식을 주문할 겨를도 없이 뒤돌아서 나왔다. 허탈했다. 고개를 쳐드니까 이마에 주름꽃이 피기 시작한 식당 주인아저씨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에 반사되더니 이내 사라졌다.

"아~ '우럭 대가리탕'이여!"


#우럭대가리탕#생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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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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