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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체를 찾아 함께 지상으로 올라가고 있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과연 이들은 함께 지상으로 올라 다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체를 찾아 함께 지상으로 올라가고 있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과연 이들은 함께 지상으로 올라 다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 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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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쉬 서사시에 사랑이 더해져 오르페우스 신화가 되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 정거장엔 햇빛이 쏟아지네
 행복 찾는 나그네의 눈동자는 불타오르고 엄마 잃은 소년의 가슴엔 그리움이 솟아오르네"

어릴적 즐겨 부르던 TV만화 <은하철도999> 주제가 중 일부분이다. 이 어린이 만화가 실은 2천년도 더 전의 고대 오리엔트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시기 점토판에 새겨진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쉬Gilgamesh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혹시 알고 있는가?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쉬 신화는 주인공 길가메쉬가 죽지 않는 영원불멸의 생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지만 결국 영생은 없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는 줄거리인데, 이는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그리스·로마신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어제인 5월 16일 일요일 개막하여 오는 20일 목요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상연될 예정인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역시 길가메쉬 신화에서 영향을 받고 거기에 사랑이란 테마가 더해진 오르페우스 신화를 그 줄거리로 하고 있다.

오르페우스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아폴론과 뮤즈(또는 칼리오페)의 아들이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갖고 있어 아폴론에게 선물받은 리라(수금 또는 비파, 하프를 연상하면 된다)를 워낙 잘 연주해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들까지 감동시켰다고 한다.

오르페우스는 장성하여 사랑하는 아내, 님프인 에우리디체(혹은 '유리디케'라고도 함)을 만나 결혼하게 되지만 그녀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한 나뭇꾼을 피해 도망치다 그만 독사를 밟아 물려 죽게 된다.

상복을 입은 오르페오
 상복을 입은 오르페오
ⓒ 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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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의 이야기는 바로 이 부분부터 시작된다. 아내 에우리디체Euridice를 잃고 몹시 슬퍼하던 오르페오(Orfeo, 오르페우스)는 사이프러스의 숲 속 장례식장에서 홀로 슬픔과 탄식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아모레(Amore, 또는 Cupid ; 연애를 관장하는 신, 비너스의 아들)이 그에게 말한다.

"제우신이 허락하였으니 아내를 찾아 지하세계로 내려가도 된다. 그대의 아름다운 노래와 리라 연주로 지옥의 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를 감동시키면 다시 에우리디체를 지상으로 되돌려 올 수 있다."

"그러나, 절대 이 일을 말해서는 안 된다. 또한 지하에서 지상으로 완전히 올라올 때까지는 절대 아내를 쳐다 봐서는 안 된다. 원래 산자와 죽은자는 눈길을 마주칠 수 없는 법이기에 결코 뒤돌아 보지 마라. 만일 이것을 어길 경우 다시는 아내를 볼 수 없게 되리라."

오르페오가 대체 누구이던가? 뮤즈의 아들이자 자연도 감동시키는 연주자 아니던가? 아내를 찾아 지하세계로 내려온 오르페오는 그의 막강한 리라 연주 실력으로 지하 세계를 감동시켜 마침내 '지옥의 문'을 여는데 성공하고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체도 찾게 된다.

하지만 그리스·로마신화의 '판도라 상자'가 그랬듯, 성경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서 롯의 아내와 강아지가 그랬듯이 "쳐다 보지 마라" 또는 "절대 뒤돌아 보지 마라"라는 금기는 거의 반드시 깨어지고 마는 법.

연인의 고통에 금기를 깬 오르페우스의 사랑, 결국 어떻게 되나?

아내 에우리디체는 자신을 찾아 지하세계로까지 내려왔지만 기껏 찾아낸 그녀를 절대 쳐다도 보려하지 않는 오르페오에 대해 크게 실망한다. "이렇게 기쁜 순간에 저를 안아주지도 않고 쳐다보려도 하지 않다니! 이것이 저를 반기는 방법인가요?"라 말하지만 오르페오는 계속 갈길만 재촉한다.

하지만 끈질기게 그녀를 바라봐 달라는 그녀의 애원에 결국 오르페오는 어느 순간 뒤돌아 그녀를 보게 되고 그 순간 그녀는 다시 죽음의 지하세계로 돌아가게 된다. 그녀의 상심과 고통을 참지 못한 오르페오의 한순간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만들어낸 것이다.

배를 타고 요단강을 건너가고 있는 오르페오와 유리디체
 배를 타고 요단강을 건너가고 있는 오르페오와 유리디체
ⓒ 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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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시 한번 더 아내를 잃게된 오르페오. 그 슬픔으로 인해 다른 여자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아내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노래만 연주하며 지내게 되지만 그를 흠모하던 주변 여성들은 틈만 나면 유혹을 하며 결코 그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떤 유혹에도 끄떡하지 않는 그에게 실망한 처녀들은 결국 그를 해치고 만다. 디오니소스 축제에 다녀온 한 처녀가 "저기 우리를 모욕한 사내가 있다"며 오르페오를 향해 창을 던지자 다른 처녀들도 따라서 돌을 던지고, 끝내 그의 몸을 갈기 갈기 찢어 그의 머리와 리라를 헤브론 강에 던져버린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는 늘 이렇듯 슬픈 일이 생기고 나면 별자리가 하나 생기게 되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 오르페오의 사연을 보고 슬퍼한 제우스는 그의 리라를 수거해 하늘에 올려 별자리 하나를 만들어 주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거문고 자리라고 한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라 일컫는 길가메쉬 신화가 말해 주듯,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거나 사람이 늙지 않고 영원히 살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는 이렇듯 애절한 사랑의 에피소드가 덧붙여진 오르페우스 신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펜바흐의 오페라 '지옥의 오르페우스' 중 천국과 지옥 서곡은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 중 거북이 테마로도 쓰였고 특히 파리 물랭루즈 쇼의 '캉캉'곡 속에 삽입되어 한층 더 인기를 끌었다.
▲ '캉캉' 춤으로 유명해진 파리 물랭루즈 오펜바흐의 오페라 '지옥의 오르페우스' 중 천국과 지옥 서곡은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 중 거북이 테마로도 쓰였고 특히 파리 물랭루즈 쇼의 '캉캉'곡 속에 삽입되어 한층 더 인기를 끌었다.
ⓒ 문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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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우스 신화는 원래 아주 다양한 버전의 오페라가 만들어져 있다. 실제 잘 상연되고 있지는 않지만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의 지옥의 오르페우스 중 천국과 지옥 서곡 (Orphée aux enfers Overture)이 가장 유명한 편이다. 게다가 이 곡은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중 '거북이' 테마에 삽입된 후 또 한 번의 변형을 거쳐 그 유명한 파리 물랭루즈의 캉캉춤으로까지 선보여 더 유명해졌다.

고전주의 오페라 그대로를 위하여, 원전 악기 연주 & 카운터테너

(좌)영국 레트로스펙트 앙상블 Retrospect Ensemble (우)콜레기움 무지쿰 한양 Collegium Musicum Hanyang
▲ 원전악기 오케스트라 (좌)영국 레트로스펙트 앙상블 Retrospect Ensemble (우)콜레기움 무지쿰 한양 Collegium Musicum Han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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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국립오페라단이 상연하고 있는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Christoph Willibald Gluck(1714.7.2~1787.11.15)의 오페라<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Orfeo ed Euridice>는 오펜바흐의 오페라 <지옥의 오르페우스>의 원조격으로 원래의 그리스·로마신화와는 반대로 행복하고 희망에 가득찬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 한참 후에 만들어진 오펜바흐의 오페라 <지옥의 오르페우스>는 이를 좀 더 삐딱하게 비틀어 패러디한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주인공들의 남녀관계를 좀 더 복잡하게 꼬아놓았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쉬 신화가 만화 <은하철도999>에서 "기계인간이 되어 영생을 사는 것 보다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으로 주어진 유한한 삶을 살겠다"는 철이의 결론으로 변형된 데 반해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서는 죽기보다 오히려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죽은 사람을 두 번씩이나 살릴 만큼의 행운도 생겨난다는 '희망의 믿음'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이번 국립오페라단 공연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글룩이 실제 이 작품을 작곡한 고전주의 시대 원전 그대로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려 했다는 점이다.

영국 레트로스펙트 앙상블 Retrospect Ensemble, 일본 고음악 古音樂 앙상블 그리고 한국의 콜레기움 무지쿰 한양Collegium Musicum Hanyang 이렇게 다국적의 연주자들이 함께 모여 하프시코드와 함께 원전악기로 연주한 것을 비롯, 카운터테너 이동규와 스티븐 월리스를 투입, 카스트라토를 쓰던 당시 분위기 재현에 노력한 것.

카운터테너는 남성 가수가 훈련된 가성을 써서 알토 대역을 노래한다. 이들은 이번 오페라<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서 고전주의 음악시대에 카스트라토가 담당했던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 카운터테너, 스티븐 월리스(좌)와 이동규(우) 카운터테너는 남성 가수가 훈련된 가성을 써서 알토 대역을 노래한다. 이들은 이번 오페라<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서 고전주의 음악시대에 카스트라토가 담당했던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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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옥의 문' 장면과 요단강 '님프들의 춤'이 보여주는 스펙터클

그밖에 토월극장이라는 다소 작은 규모의 중극장에서 상연됨에도 불구, 심플하면서도 어느 정도 스펙터클을 느낄 만한 무대 연출을 통해 회화적 미감을 살린 점도 사줄 만한 부분이다.

오르페오가 지옥으로 들어서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지옥의 문' 장면은 마치 로댕의 그 유명한 조각작품 <지옥의 문>이 살아나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고 이승과 저승을 잇는 '지옥의 강(또는 요단강) 장면에선 무대 위에 물이 가득 채워져 실제 강 위로 배가 지나다니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었고, 님프들이 물 위에서 춤추는 장면도 꽤 몽환적 인상을 준다.

요단강 위, 님프들의 춤
 요단강 위, 님프들의 춤
ⓒ 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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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 부분도 언급할 만한 것들이 있다. 첫 장면에서 오르페오 등 에우리디체의 장례식 참가자들이 입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전통의 굴건과 삼베 장의들이다. 서구적 죽음의 미학에한국적 '씻김'과 '해원'의 정서를 결합했다는 것.

하지만 이는 마치 지난달 국립 창극단이 상연한 창극 <춘향 2010>의 쑥대머리 장면에서 서양 가면을 쓴 무용수들이 일본식 느낌의 춤을 추던 것처럼 낯설어 보였는데 다른 일반 관객들은 이 장면에 대해 과연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좀 더 아쉬운 점은 역시 오페라극장이 아닌 토월극장인 탓에 무대가 크고 장치사용이 더 용이한 대극장의 경우처럼 지옥의 풍경을 좀 더 강렬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 99년 오페라극장, 당시 문호근 예술감독이 직접 연출하여 국내 초연했던 <파우스트>의 다층구조 무대는 아직까지도 기자의 뇌리 속에 깊숙이 박혀 있다. 아마 이번 무대도 오페라극장에서 했더라면 지옥의 연옥이 끓고 있는 장면까지 더욱 인상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을까?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제1회 대한민국 오페라페스티벌의 첫 작품이다. 오페라 페스티벌은 6월 7일부터 10일까지는 <리골레토 Rigloetto>, 6월 16일부터 19일까지는 <아이다 Aida>, 6월 25일부터 28일까지는 <라트라비아타 椿姬, La Traviata>, 7월 3일부터 7일까지는 <카르멘 Carmen>이 계속 이어진다.

'지옥의 문' 앞에 다다른 오르페오
 '지옥의 문' 앞에 다다른 오르페오
ⓒ 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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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의 '지옥의 문'은 단테의 <신곡>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 나오는 지옥의 문 역시 이 문으로부터 모티프를 잡았을 것 같다.
▲ 파리 로댕미술관에 야외 전시되어 있는 '지옥의 문' 로댕의 '지옥의 문'은 단테의 <신곡>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 나오는 지옥의 문 역시 이 문으로부터 모티프를 잡았을 것 같다.
ⓒ 문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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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를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꼭 미리 예습을 하고 가자!

혹여 이번 기회에 오페라를 처음으로 보는 관객이 있다면 꼭 권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다. 

반드시 미리 줄거리와 주요 내용을 알고 갈 것, 어디서 웃고 눈물 흘려야 할지를 외워두었다가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를 통해 거기에 최대한 감정이입을 해볼 것, 머리 위에 올려진 한글 자막은 가급적 보지 말 것 등이다.

왜냐하면 오페라나 발레와 같은 클래식 장르의 공연들은 연극이나 영화, 뮤지컬처럼 구체화된 언어로 표현되어 감동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시각과 청각, 즉 배우들의 몸짓이나 노랫소리가 전달하는 '떨림'의 전파를 몸으로 감응하며 느끼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페라는 예습이 중요하다. 이왕이면 공연 시작 20~30분 전에 미리 도착해 프로그램을 보고서 줄거리를 잘 외워 놓는 것도 좋을 것이다. 줄거리만 알면 대사 하나 하나가 굳이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되니 오로지 배우의 표정과 몸짓, 노래에만 몰입하라.

머리 치켜들고 자막 읽느라 자꾸 시선이 위로 올라가는 그 순간, 감동은 사라지고 오로지 무대의 스펙터클 정도만 남게 될 것이므로.

'카스트라토'와 '카운터테너'

카스트라토란 남성이 변성기 이후에도 소프라노 등 여성의 음역대를 내기 위해 거세한 가수를 말한다. 원래 중세 교회에서 여성이 노래부르는 것을 금지하였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영화에서 유명해진 파리넬리 등이 가장 성공한 카스트라토 중 하나이며 카사노바의 회고록 중 카사노바와 사랑에 빠진 한 여인도 카스트라토 행세를 하고 다녔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19세기 초반, 나폴레옹이 이태리를 점령한 후 카스트라토를 금지하면서 카스트라토는 점차 사라져갔으나 반면 카운터테너는 이때쯤부터 더욱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다. 카스트라토가 인위적인 거세를 통해 사춘기 이전의 음성을 유지하는데 반해 카운터테너는 남성이 사춘기 이후에 적절한 방법으로 가성을 훈련하여 알토 약간 윗부분부터 알토대까지의 음역을 노래한다.


태그:#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카운터테너 이동규, #소프라노 최윤정, #국립오페라단,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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