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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러기' 윤준환 화백이 개인전을 열었다
 '꾸러기' 윤준환 화백이 개인전을 열었다
ⓒ 한국만화영상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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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러기' 윤준환 화백이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다. 지난 1일에 시작되어 7월 4일까지 두 달간 뮤지엄 만화규장각에서 펼쳐질 이번 전시는 그의 40여 년 만화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어떻게 보면 내 마지막을 정리하는 자리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고맙죠. 진흥원 측에서 장소도 마련해주고, 정리를 해주는 셈이니까요.(웃음)"

짧은 한마디로 윤 화백은 전시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윤준환 화백은 지난 2008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자신의 작품 <꾸러기>와 <쭈구리>, <물대포> 등의 원고 약 6,000여 점을 기증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진흥원측이 기증된 원고를 일반에 소개하고자 마련된 것이다.

원고 기증은 그가 오래 전에 결심했던 일이다. KBS에서 함께 근무했던 조관제 화백에게 훗날 자신의 작품을 후학과 후배들을 위해 내놓겠노라 했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윤 화백의 작품 <꾸러기와 맹자>의 표지(좌), <꾸러기> 원고(우).
 윤 화백의 작품 <꾸러기와 맹자>의 표지(좌), <꾸러기> 원고(우).
ⓒ 윤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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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꾸러기>다. 윤 화백이 1968년도부터 장장 25년간 소년조선일보에 연재한 작품. 화백의 데뷔작이자 이름을 널리 알린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꾸러기>는 당시 어린이 도서 베스트 1위를 차지하고 단행본 권당 40쇄를 찍을 만큼 인기가 좋았다. 이밖에도 그는 <꾸러기 말썽일기>, <꾸러기 심술일기>, <꾸러기와 맹자> 등 소위 '꾸러기 시리즈'로 당대의 명랑만화를 이끌었다.

오랜 시간, 그토록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진득하게' 연재할 수 있었던 저력을 묻자 그는 '몰입'을 꼽았다.

"특별한 것 없어요. 작업을 시작할 때면 이전 연재분들을 보면서 그 작품에 빨리 빠져들도록 노력했어요.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그 작품의 '모드'가 되고자 했죠. 막연하게 앉아 뭘 그리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면 밤샙니다. 그렇게 한 번에 16쪽, 12쪽을 그렸죠. 많을 때는 동시에 연재를 18개까지 하기도 했었는데, 성인용, 청소년용 할 것 없이 순간적으로 몰입이 되곤 했어요. 요즘도 연재중인 <물대포>가 막혀 힘들면 감이 올 때까지 이전 연재분들을 훑어보며 '모드'가 되고자 노력해요."

빠른 작업 시간의 비결은 그만의 특별한 도구에도 있었다. 만화가들이 보통 사용하는 잉크펜 대신 소위 말해 플러스펜과 매직을 사용해 작업을 단순화하고, 시간을 절약했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심지어 MT를 가서도 마감은 칼같이 지켜낼 수 있었다고.

"몰입만 잘 하면 재미있는 만화가 나올 수 있어요. 그리는 동안 내가 웃는 만화는 남도 재밌어 하죠. 그러니 만화는 내가 즐거우면서도 남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다시 태어나도 만화가가 되어 만화 한 번 걸판지게 그리고 싶어요."

올해로 칠순인 그에게 남은 마지막 목표는 "현재 일요신문에 연재중인 <대포>를 1000회까지 그려내는 것"이다. 1000회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1년 남짓. 다시 태어나도 '걸판지게'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이 노화백의 식지 않는 열정과 성실함이 그 목표를 충분히 이루게 하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디지털만화규장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윤준환, #꾸러기, #물대포, #한국만화영상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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