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라 뤼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있다"고 진단하며 정부의 개선 의지에 대해서도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는 "정부의 공식초청(노무현 정부 때 상시초청장 제출)이었지만 대통령과 총리, 국정원장, 검찰총장, 각 관계 부처 장관과 만나지 못했다"며 "유엔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으로 표현의 자유 현황을 조사하고자 면담을 신청했으나 전혀 성사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정부 책임자를 만나는 것은 면담을 통해 표현의 자유에 관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며 "이번에 면담이 불발된 것으로 한국의 인권 개선 의지가 어떤지 알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라 뤼 보고관은 지난 17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2일 동안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라 뤼 보고관의 정식 보고서는 2011년 6월, 유엔인권위원회 총회에서 보고되며 인권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될 경우 한국은 인권국가로서 국가위상에 치명타가 입을 수 있다. 또 이번 조사기간 중, 국가기관이 보고관을 미행·사찰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어 사실로 밝혀질 경우 국제적 망신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유엔인권위원회에 한국 인권문제 상정되나 라 뤼 보고관을 파견한 유엔인권위원회는 1948년 세계인권선언의 초안을 작성한 곳이다. 46년 국제연합경제사회이사회 산하에 설치된 인권보호기관으로 세계 각지의 인권, 시민적·정치적 권리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및 여성·아동·노인 등 취약계층의 권리에 관한 국제적 선언 또는 협약을 검토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세계 각 국가에 보고관을 파견해 인권침해에 관한 사항을 조사하고, 국제연합경제사회이사회에 제안과 권고를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결의안을 채택하는 곳이다. 2006년 유엔 전체총회에서 채택된 '북인권결의안'도 2003년 인권위원회에서 먼저 채택됐다.
문제는 라 뤼 보고관이 이번 한국에 대한 조사결과가 결의안으로 채택될 수 있다고 밝힌 데 있다. 그는 "지금 발표는 인권전문가로서 개인의 의견이지만, 내년 인권위원회 총회에서 정식 보고되고 결의안이 채택되면 유엔의 공식입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발표한 조사결과에는 ▲ 정부의 명예훼손 남발 ▲ 인터넷 표현의 자유 제한 ▲ 인터넷 실명제 ▲ 국가보안법 ▲ 집회시위 자유 제한 ▲ 폭력적인 공권력 사용 ▲ 과도한 선거법 적용 ▲ 공영방송 침해 등 그동안 시민사회가 지적해 왔던 이명박 정부의 인권탄압 문제가 그대로 드러났다. 정부가 보고관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유엔인권위에 한국의 인권문제가 상정되는 최악의 상황도 가능하다.
라 뤼 보고관은 "한국을 방문한 목적은 과거에 비해 인권 상황이 진전했는지 후퇴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며 "한국은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에는 인권이 상당히 진전됐지만 2008년 촛불집회 이후에는 표현의 자유가 많이 위축되고 제한되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후진국에서 일어나는 일... 한국에서도한편, 지난 4일 서울 명동의 한 호텔 앞에서 라 뤼 보고관을 몰래 촬영하던 사람들이 탄 승용차가 목격돼 국가기관이 보고관을 사찰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차량이 국정원 소유부지의 공터(서울 서초, 구룡산 정상)에 주소를 둔 유령회사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정원 사찰의혹으로 증폭되고 있다. 만약 사실로 밝혀지면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에서 유엔특별보고관을 국가기관이 사찰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라 뤼 보고관은 17일 기자회견에서 국정원 사찰에 대해 "그것은 사실"이라며 미행, 사찰 받았음을 확인했다. 그는 지난 15일 연세대학교 강연에서도 "과테말라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지만 조사활동을 위축시킬 수 없었다"며 "이번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과테말라는 지난해 우리 교민 3명이 잇따라 피살되는 등 치안이 매우 불안하고 정부의 인권탄압도 심각한 인권후진국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