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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지사 후보로 유시민이 결정되자 한나라당이 급해졌나봅니다. '유시민 때리기, 김문수 띄우기에 올인'했다네요.

한나라당이 유시민을 때리는 몽둥이로는 김영춘 전 의원 제품이 애용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의원이었던 김영춘은 2004년, "유시민은 저토록 옳은 소리를 왜 저토록 싸가지 없이 할까?"라고 말한 바 있지요.

그 철 지난 제품을 한나라당 정미경 대변인이 들고 나오더니, 이어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 안형환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이 줄줄이 들고 나옵니다. 유시민 앞에 그들이 한 없는 두려움에 쪼그라들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런 제품을 저렇게 높으신 분들까지 애용할 리가 없는데 말이지요.

한나라당이 애용하는 싸가지 유시민?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민주노동당를 찾아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민주노동당를 찾아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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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혹시 '시건방 고은광순'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신지요. 없을 겁니다. 고은광순은 정치판에 짧게 머물다가 오래 전에 은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지금까지 정치판에 남아있다면 '시건방 고은광순'은 '싸가지 유시민'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꽤 널리 퍼졌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2003년의 일이었으니 벌써 7년 전입니다. 17대 총선 전, 필자는 여성광역선거구제를 만들기 위해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선거운동도 포기한 채 정치개혁위원인 천정배, 유시민 의원 뒤를 쫓아다니고 3당의 여성의원들을 설득하고 다녔습니다. 여성광역선거구제가 무어냐고요?

남존여비의 유교적가부장문화가 강한 한국 땅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선거라는 경쟁구도를 통해 정치가가 되기란 아주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16대 국회에선 여성의원의 비율은 지역구출신 2%였고 비례대표를 포함해도 5.9%에 불과해 세계 182개국 중 104위를 차지할 정도로 열악했지요. (2008년 현재, 내전이 심했던 르완다는 국제기구의 관여로 여성의원이 48.8%, 스웨덴은 47%, 쿠바는 43.2%, 핀란드 41.5%로 여성들의 정치참여가 활발합니다.)

당시 여성들은 후궁 간택 기다리듯 비례대표 선정을 기다리다가 용도폐기되는 정치풍토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방안으로 여성전용선거구제를 계획했습니다. 나중에 좀 더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용어를 여성광역선거구제로 바꾸었는데 남녀 대결구도에서 살아남기는 너무나 힘이 드니까 여성들간의 대결구도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1차로 지도를 놓고 보통 선거구제로 지역을 나누고(240여개), 2차로 그 위에 지도를 다시 올리고 광역으로 선거구제(20여개)를 나누어 광역선거구에서는 여성들끼리 대결해서 여성지역의원의 수를 늘여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개선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2004년 2월, 유시민, 천정배 의원 등이 애쓴 덕에 국회정치개혁특위는 여성전용 광역선거구 26개를 17대와 18대 총선에 한해 도입키로 합의했습니다. 그래서 총 의원 수는 비례대표 포함 기존 273명에 여성광역선거구 출신 26명을 더해 299명으로 늘어나게 되었고 본회의 통과절차를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참여연대, 경실련, 민노당 등에선 비례대표 숫자가 10석 정도 줄어든다며 찬성하지 않았지만, 여성단체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지요.

일부 시민단체들이 남성의 참여를 제한한다며 위헌성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여성광역선거구제는 양성불평등을 해소할 '적극적이고도 한시적인 조치'이므로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에도 부합하며 유권자 51%를 차지하는 여성의 대표가 5.9%에 불과한 것이 오히려 헌법의 남녀평등을 위배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맑은정치여성내트워크, 총선여성연대 등 여성계는 대찬성이라며 반겼지만, 일은 엉뚱한데서 터지고 말았습니다. 열린우리당내 지역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A, B, C, D 여성의원들이 처음에는 여성광역선거구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도 하고, 자기들이 예전부터 준비했다고 생색을 내더니 슬슬 반대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녀들의 반대행동은 참으로 묘하게 나타났습니다.

우선 A의원. 의원총회에 들어가 여성단체도 반대한다고 거짓말을 했지요. 놀라서 내게 전화하는 남성의원들이 있어 부리나케 여성단체의 환영성명을 팩스로 받아 몇 부를 복사하여 회의장 안에 들여보냈습니다.

A의원은 회의가 끝나고 나오면서 복도에서 기다리는 내게 고래고래 한참을 야단쳤습니다. "누가 이 따위 문건을 허락도 받지 않고 안으로 집어 넣으랬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럼 왜 사실을 왜곡하시냐?"고 큰 소리로 대응을 할 수 밖에요.

당시 당내 게시판에 끊임없이 여성광역선거구제가 부당하다며 글을 올리던 당원이 있었는데 알아보니 세상에나, A의원 캠프에서 일하던 사람이더군요. 여성의원들과 여성중앙위원들 이삼십 명이 모인 자리에서 '여성의원의 옳지 못한 게시판 작업'에 대해 항의하자 B의원이 그게 누구냐고 내게 물었는데, 답변을 할 찰나 A의원이 얼른 다른 말을 꺼내어 화제를 돌리더군요. 정치 9단?

당시 A, B, C, D의원의 속내를 충실히 언론에 밝히던 M씨는 그 자리에서 "여성 광역선거구제는 좋지 않다. 지역선거를 준비하는 여성들은 현재 소수이기 때문에 이익을 보는 측면이 있는데 여성광역선거구제로 인해 여성후보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면 그 이익이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시뮬레이선을 해 보니, 유권자의 심리상 광역후보로 여성을 뽑아야 하는데 자기 지역구에서 또 여성을 뽑게 되지 않는다며 현재 지역출마를 준비하는 여성후보(A, B, C, D)는 10% 정도 감표가 예상된다는 것이었습니다. D의원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A, B, C, D의원은 자기들의 재선을 위해 여성계의 소망을 접어달라는 것이었고, M씨는 한국의 양성평등한 정치문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A, B, C, D의원을 위해 복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 앉아있던 여성정치지망생들은 비례대표를 통한 국회입성을 준비하고 있었으므로 선배의원들인 A, B, C, D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발언을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M씨는 후일 비례대표로 의원이 되었지요.)

"밖으로는 여성의 정치세력화와 질적 양적 확장을 말하고, 그것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 안에서 이래도 되는 거냐?"고 언성을 높였던 나는 얼마 안지나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시건방진 고은광순'이라는 평가 말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건방 고은광순'에 대한 평가는 그 동네에서 꽤 많이 퍼져있더군요.

오... 그런 곳이 정당이더군요. '기득권'이라는 것이 철저히 보호되어져야 한다고 믿는 곳. '기득권자'의 눈에 들어야 자신도 권력을 갖게 된다고 믿는 곳. 그렇게 전도된 가치관으로 똘똘 뭉쳐 있는 곳. 그런 곳이 정치판이더군요.

그속에서 유시민은 욕봤습니다. 유시민이 달을 가르칠 때, 패거리들은 손톱이 길다며 다른 데 가서 정치개혁, 정당개혁 하라고 말을 합니다. 정치개혁, 정당개혁을 통해 선거에 이길 생각을 하지 않고, 패거리 덕에 줄 잘 서서 재선에 성공할 생각만 합니다.

고은광순과 유시민은 격을 비교할 수 없지만, '시건방 고은광순'과 '싸가지 유시민'은 완전히 같은 우물에서 탄생한 같은 말입니다. 앞뒤가 180도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의 부끄러운 행위를 들키자 '시건방 고은광순' 또는 '싸가지 유시민'이라며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것이지요.

계속 몽둥이 휘두르십시오

그런데 과거 정치인들이 써먹었던 '싸가지 유시민'을 한나라당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훌륭한 무기라며 가져다가 휘두르고 있습니다. 정미경, 김무성, 안형환 등 당 대변인, 당 대표, 당 선대위 대변인에 이어 앞으로도 줄줄이 줄줄이 그 걸 들고 나오겠지요.

그러나 단연컨대, 위의 상황을 보고 '시건방 고은광순'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는 유권자들이라면 '싸가지 유시민' 역시 옳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패거리들에게는 '패거리에 고개 숙이는 싸가지'가 중요할지 몰라도 유권자들은 '저토록 옳은 소리'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미 유시민의 진가를 파악한 유권자들은 사흘 동안 40억이라는 선거자금을 마련해 빌려 주었습니다. 정치를 하려는 사람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물 속 비열한 자들이 만들어 낸 '싸가지'를 비장의 무기라며 그에 목매고 있는 당신들. 당신들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아니지. 계속 '싸가지 몽둥이'를 휘두르십시오. 지칠 때까지 계속 하세요. 그 동안 국민들은 '저토록 옳은 소리'를 하는 정치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보겠습니다.

*사족) 나는 정치판을 완전히 떠났지만, 여성광역선거구제는 되살아나야 할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한시적으로 몇 번만 해 보십시오. 심상정, 전여옥의 대결. 이런 거 기대해볼만 하지 않나요? 후궁 간택 당하듯 비례대표 한 번 하고 밖으로 튕겨져 나간 여성의원들, 구미 당기지 않는지요? 물론 A의원 같은 정치9단은 사절합니다. 2009년 대한민국 양성평등지수 134개국 중 115위, 이거 뭡니까?


태그:#유시민, #야권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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