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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클래식을 즐겨 듣지 않는 이라면 '음악회'가 그저 딴 나라 사람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학창 시절 마지못해 음악 숙제를 하려고 찾았던 곳이 클래식 콘서트였다는 사람도 꽤 많다. 이렇게 클래식은 일반인에게 거리가 먼 대상이 되곤 한다.

 

책 <너 음악회 가봤니?>(류준하 지음, 현암사 펴냄)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이에게 쉽고 훌륭한 안내서다. 아직 클래식 세계에 맛을 들이지 못한 사람도 한 번쯤 읽어 보며 음악에 담긴 작곡가들의 생각과 감상법을 얻을 수 있다. 그만큼 쉽고 재미있게 쓰였다는 얘기다.

 

책은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는 내가 결코 저질러 본 일도 없는 죄의식 때문에 울며 슬퍼하고, 나의 비극도 아닌 것에 애도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음악은 항상 나에게 그러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다. 음악은 인간에게 알지 못했던 과거를 만들어 내게 하고, 눈물로 인해 숨겨진 슬픔의 감각을 채워 준다."

 

음악이 지니는 카타르시스 효과를 제대로 언급한 말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그 어떤 것보다 음악으로 인해 감정의 자극을 많이 받으며, 위안 또한 얻는다. 음악에 대한 이런 마음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형성된 것이어서 지금도 음악이 없는 세상이란 상상할 수 없다.

 

그럼 책에서 배도반과 차선생이 대화를 나누는 클래식 음악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책의 첫 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품 중 인상적인 것은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이다.

 

'핑갈의 동굴'은 스코틀랜드 북서쪽 바다, 대서양 가운데 스타파 섬에 있는 암굴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동굴 주변 해안은 주상절리가 발달한 가파른 절벽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멘델스존은 이 동굴 부근의 색다른 풍경과 섬에 얽힌 전설을 소재로 하여 이 음악을 만들었다.

 

작곡가 바그너도 이 곡을 듣고 '멘델스존은 일류 풍경화가'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책의 등장인물인 류수연씨는 해설가 차 선생에게 이탈리아 사람인 멘델스존이 어떤 계기로 이 곡을 쓰게 되었는지 물어 본다. 이 음악이 탄생한 계기는 다음과 같다.

 

영국을 매우 좋아했다는 멘델스존은 짧은 일생 동안 열 번이나 영국을 방문한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여러 지방을 돌아보고 와서 누군가가 이 동굴 풍경을 보고 온 소감을 묻자,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느낌입니다"라고 답하며 피아노 앞에 앉아 즉석에서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던 내용을 연주한다.

 

바흐를 존경한 쇼팽... 쇼팽을 사랑한 클라츠 브라더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뛰어난 음악은 이처럼 천재적인 작곡가들의 영감에서 비롯된다. 

기쁨의 순간에 탄생하는 작품도 물론 있지만,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기에 탄생하는 음악도 있다. 모차르트가 만년에 쓴 곡 중 '클라리넷 협주곡', '클라리넷 5 중주곡'은 너무 아름다워 작곡자가 무척 행복한 시기에 만들었을 것이라 착각하기 쉽지만, 그가 가장 힘든 시기에 쓴 곡이다.

 

책에는 다양한 지휘자들이 지휘한 음반도 비교하여 설명한다. 흔히들 잘 알고 있는 유명 지휘자 번스타인이나 카라얀처럼 상업적인 음반도 있지만, 노대가로서의 위엄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칼 뵘이 지휘하는 연주도 한 번쯤 들어볼 만하다.

 

클래식 음악이 어렵고 복잡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지라도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제 3번을 들으면 금방 친숙함을 느낀다. 드라마나 광고에 자주 사용되는 데다 우리 귀에 익숙한 선율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책에서 음악 해설을 담당하는 차 선생은 '어디서 들었지?'하고 고개가 갸우뚱해지고 익숙한 음악이면 그냥 '명곡이구나!'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 주위에 흔하게 들려오는 음악 중에는 작품성이 뛰어난 클래식 음악의 일부가 담겨 있을 때가 많다.

 

음악가들이 서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언젠가 작곡과에 재학하는 친구들이 자기들은 베토벤, 모차르트, 바흐와 같은 거장을 제일 싫어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이유가 '너무 뛰어난 음악을 만들어서 그들을 뛰어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란다. 우스우면서도 공감이 간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음악가 쇼팽 또한 평소에 바흐를 무척 존경했다고 한다. 재즈 음악가인 클라츠 브라더스는 쇼팽의 음악을 평소 많이 연주하고 좋아했다고 하니, 좋은 음악이란 시대를 뛰어넘고 인간과 인간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각 민족 별로 길이 남을 만한 음악들을 정리해 준다. 특히 맨 마지막에 언급하는 러시아인들의 예술사랑은 누가 봐도 정말 각별하다. 러시아 여행을 하던 중 우연히 만난 현지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무심코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꺼내자, 갑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는 그들의 열정을 짐작케 한다.

 

자기 자신들도 예술을 사랑하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을 인정할 줄 아는 자부심과 포용력 덕분에 러시아가 내놓은 예술의 거장들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음악에서는 차이코프스키를 비롯하여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소설가, 그리고 발레까지, 러시아는 그야말로 예술이 넘쳐흐르는 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베리아의 찬 공기 속에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러시아인들의 정신처럼 차이코프스키의 음악도 독특한 향기를 뿜어낸다. 여섯 살짜리 딸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와 '호두까기 인형'인 걸 보면 좋은 음악이란 시대와 나이를 초월하는 깊은 감동을 주는가 보다.

 

혹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클래식을 안내해 주는 이런 책 한 권 정도는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음악에는 모든 장르를 뛰어넘어 세대를 공감케 하는 끈끈한 무언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너 음악회 가봤니?

류준하 지음, 현암사(2009)


태그:#음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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