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생신이라고 모이고, 어버이날이라고 모이고, 농번기여서 일손 거들자고 모이고, 본지 오래됐으니 얼굴 한 번 보자고 모이고….
틈나는 대로 모여서 같이 음식을 해먹고 술잔을 기울이며 수다를 떠는 재미로 사는 가족이 있다. 이른바 '성재동 팔공주네'.
'팔공주'를 거느린 딸부자는 전라남도 무안군 현경면 용정리 성재동에 사는 윤세중(73)·양백순(76)씨 부부. 동네사람들에게 '팔공주네'로 통하지만 사실은 1남 8녀를 두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럽디다. 그렇게 아이들을 많이 뒀냐고…. 근데 나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허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한디, 나는 아이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허요. 낳을수만 있으면 더 낳고 잡소."양백순씨의 말이다.
여기저기 살고 있던 가족들이 한번씩 모이면 집안이 비좁기 마련. 하지만 웃음꽃을 피우느라 불편한 줄 모른다. 전라도에서 살고 있다는 것 빼고는 다른 직업과 환경을 갖고 있다보니 이야기꺼리도 그만큼 다양하다. 자매는 물론 사위들도 친형제 이상으로 돈독해 술잔을 주고 받으며 밤을 지새우기 일쑤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몰라. 지들이 즐거운께 나도 덩달아 즐겁기는 한디…."윤세중씨의 얘기다.
모여서 소통하는 걸 즐기는 이 가족의 모임은 5월에도 잇따르고 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맞아 자리를 같이 한데 이어, 21일엔 만화에 재능을 지닌 윤창숙(44)씨의 개인전이 열리는 날이어서 또 모인다. 윤씨의 일러스트 작품전시회인 '여인의 향기'전은 목포문화예술회관에서 27일까지 계속된다.
마늘과 양파 수확할 때가 되면 일손을 거들기 위해 다시 한번 모일 계획이다. 모두들 주말농장에 가는 셈치고 즐겁게 모인다는 게 가족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이들의 소통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도 계속된다. 사이버 세상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는 것. 몇 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가족카페를 통해서다. 이 카페엔 칠순의 할아버지에서 10대 손자·손녀들까지 들어와 실시간 대화를 나눈다.
김장을 언제 할 것인지, 부모님 생신잔치는 어디서 할 것인지…. 크고 작은 집안일이 여기서 논의된다. 몇째 네가 승진을 했다는 등 좋은 일은 함께 나누면서 축하도 해준다. 때로는 '이모·이모부들 힘내라'는 조카의 격려글도 올라온다.
"나이 들어갈수록 가족이 더 소중하게 다가오더라구요. 부모님 건강하시고 형제자매들 화목한 게 큰 행복이고 재산이라 여기고 있어요."카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윤창숙씨의 얘기다.
갈수록 인정이 메말라가면서 이웃은 물론 형제들 사이의 교류도 단절되는 요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이들 가족의 잦은 만남이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