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MBC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인 <하땅사>의 폐지가 결정됐다.
공개 코미디의 절대적 지존인 KBS의 <개그콘서트>의 박준형과 SBS <웃찾사>의 정찬우가 힘을 합쳐 MBC 코미디의 자존심을 부활시키겠다던 그 외침은, AGB닐슨미디어리서치 기준 마지막 방송 3.1%라는 초라한 성적표만을 던져놓고 쓸쓸히 사라졌다. 이유야 여러 군데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항상 스스로를 예능의 중심이라 자부했던 MBC 측으로서는 상당히 씁쓸한 결과일 것이다.
'MBC 예능'이라는 커다란 함선은 이렇게 코미디라는 전통적인 웃음을 부활시키는 데 또 한 번 실패함으로써, 이제 공익예능으로서의 부활에도 주춤하고 있는 <일밤>과 함께 아래에서부터 구멍이 뚫려 물이 차오르는 형국이 됐다. 이럴 때의 선택은 두 가지다. 과감히 배를 버리든지, 아니면 그 그곳에서 구조를 기다리든지.
MBC의 드라메디의 전성기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 MBC는 분명 과거 대한민국의 예능의 중심이었다. 특히 90년대에 MBC 예능은 말 그대로 대항할 자가 없는 '무적'이었는데, 특히 드라마와 코미디가 합쳐진 '드라메디(dramedy)'라는 독특한 장르는 90년대 초반과 후반 그들이 무적이 되게끔 만들어준 핵심적인 무기였다.
초기 <일밤>이 콩트의 기반을 버리고 주병진의 뒤를 이은 이경규를 중심으로 버라이어티 포맷으로 승승장구할 때, 이휘재라는 말쑥한 개그맨이 TV 앞에서
"그래! 결심했어!"라는 희대의 유행어를 앞세우며 드라메디는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런 그가 선보였던 이 드라메디라는 장르는 결과적으로 '이휘재의 전성시대'와 아울러 'MBC 예능의 전성시대'를 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일밤>의 '인생극장'이라는 꼭지에서 서서히 인기를 얻은 이 드라메디는, 그 후에 김국진을 필두로 한 <테마게임>을 중심으로 완전히 예능의 대세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2000년대 이후에 등장하는 정보와 예능이 결합한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와 공익예능, 현재의 대세인 리얼 버라이어티(real variety)의 등장 이전까지 당시 예능 전체를 지배했다.
그리고 <테마극장>을 전신으로 한 90년대 중후반 <테마게임>의 중심에는, 알다시피 김국진이라는 걸출한 개그맨이 존재했다. 얼마 전 KBS <남자의 자격>에서 밝힌 자신의 롤러코스터 인생강의에서 그때의 김국진이라는 개그맨의 인기를 조금은 추억할 수 있다. 거기에 약간만 첨언하자면 당시 방송3사 사장의 권력만큼 김국진의 힘이 강했다는 농담 섞인 기사제목은 단순히 웃으며 넘길 얘기가 아니라는 점 정도를 꼬집고 싶다.
그러한 <테마게임>이, 코미디의 부활에 표면적으로 실패한 <하땅사>의 후속 프로그램으로 새롭게 편성된다는 이야기가 현재 방송계에서 솔솔 들려온다. 아직 확실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풍문은 과거 <테마게임>에 대한 향수가 짙은 세대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예능 포맷을 기다려온 이들에게 분명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대중들이 선호하는 웃음의 코드도 변화하듯, 결코 가볍지 않은 웃음으로 진중한 뒷맛을 남겼던 <테마게임>의 부활은 그 성공여부에 따라 예능의 판도를 변화시키거나 과거처럼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폭넓고도 앞서는 이야기, 새로운 포맷의 <테마게임>
실제로 과거 <테마게임>은 돌이켜보면 상당히 시대를 앞서가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영화 <3시의 결투>의 패러디나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의 모티브가 연상되는 탄탄한 에피소드들이 이들 프로그램에는 있었다. 그 외에도 버추얼 리얼리티 속에서 고립된 개인이 겪는 분열과 사회비판, 트라우마를 넘어서는 가족애와 시공을 넘나드는 사랑이야기, 에피소드끼리의 액자식 구성과 같은 실험적이고도 폭 넓은 공간의 스토리가 이들 프로그램에는 존재했던 것이다.
아울러 서경석, 홍기훈, 김진수, 김효진과 같은 연기력이 탄탄한 MBC 출신 개그맨들이 자리를 굳히게 하는 역할도 이 <테마게임>은 충실히 수행했다. 온 국민이 사랑한 김국진 외에도 김용만이나 조혜련과 같은 타사의 개그맨들 역시 이 <테마게임>의 수혜를 톡톡히 입었다.
또한 탤런트 박용하가 이 프로그램의 전신인 <테마극장>을 통해 데뷔했으며, 국내에 많은 팬층을 거느리는 드라마 <아일랜드>의 인정옥 작가 역시 이 <테마게임>의 작가로 활동한 일은 꽤 유명한 이야기다.
물론 덕분에 프로그램 자체가 조금은 마니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없지 않았으며 일본의 TV 시리즈인 <기묘한 이야기>와 로드 셀링의 <환상특급>과 곧잘 비교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테마게임>은 그 특유의 한국적인 코미디 요소를 실험적인 각본과 적절히 배합하여 독자적인 영역을 상당히 잘 구축했던 프로그램으로 우리에게 존재했다.
그래서인지 MBC에서 다시 보고 싶은 예능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이 <테마게임>이 늘 거론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 후에 버라이어티의 물결에 밀리고 소재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시간대가 토요일에서 월요일로 옮겨지며 폐지의 수순을 밟긴 했지만, <테마게임>은 대중들에게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에 한 획을 그은 프로그램으로 기억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테마게임>의 부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세상은 참 빨리 변한다. 내가 보고 듣고 즐기고 느끼는 그 감정이란 놈은 내 안에서 그대로 있지만, 그것을 자극하는 것은 그렇게나 빠르게 유행을 타고 트렌드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인지 지나간 것에 대한 추억과 과거에 나를 스쳐간 것에 대한 아련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그 크기를 더해간다.
<하땅사> 이후, 아마도 여운혁CP가 새롭게 선보일 예정인 <테마게임2>(가제)는 그러한 과거의 소중한 기억을 온전히 재생시킬 수 있을까. 침몰하고 있는 위기의 MBC 예능에서 과감히 배를 버리는 이 선택은 후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확실히 정해지진 않았다지만, 만일 이 <테마게임>이 새로운 시즌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새로운 예능의 길을 뚫어주는 프로그램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그러한 추억과 불안감이 합쳐져 커져만 간다.
당시 <테마게임>의 주제곡이었던 가수 최민수의 '의미 없는 시간', 최진경의 'Sha La La La', 김건모의 '테마게임'이란 노래들을, 이제는 최신 MP3 플레이어에서 감상하는 지금 이 시대에 그러한 영광의 부활이라는 기대가 조금은 어려운 주문이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