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남도여행을 계획하게 된 사연

 

 

지난 4월 청산도 '슬로우 걷기 축제'가 열렸다. 그때는 가고 싶었으나 사정이 있어 축제에 참가를 할 수가 없었다. 청산도의 슬로시티 축제는 5월 2일에 이미  끝났다. 그렇지만 청산도를 가고 싶은 마음이 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다행히 아내가 효도 휴가를 얻어 둘이 함께 완도와 청산도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틀 휴가에 토요일과 일요일을 포함하니 3박4일 여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완도와 청산도 외에 영암, 강진, 해남을 포함하는 답사여행을 계획할 수 있었다. 첫날에는 영암 월출산 주변의 문화유산을 보고, 강진의 다산초당을 찾기로 했다. 둘째 날에는 해남을 찾아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를 보고 두륜산 대흥사로 가 템플스테이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둘째 날 오후부터 셋째 날 오전까지는 대흥사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따라 산사체험을 하게 된다.

 

셋째 날에는 대흥사에서 완도를 지나 청산도로 들어갈 예정이다. 청산도에서는 걷기도 하고 투어버스도 타면서 슬로시티의 본질을 체험하려고 한다. 이번 슬로시티 체험은 담양 창평에 이은 두 번째 경험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다시 월출산을 찾아 도갑사의 문화유산을 볼 것이다. 도갑사는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해서 더 유명한 절이다. 마지막 날에는 배를 타고 청산도를 나온 다음, 완도에서 천리도 넘는 먼 거리를 자동차로 달려야 한다.

 

월출산 가는 도중 영산포에서 홍어 냄새를 맡고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리고 있다. 그런데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면서 비가 조금씩 줄어든다. 전라도 지역에 들어서니 비가 그치기 시작한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한 번 정도 쉬고 아내와 나는 이내 광산 나들목으로 빠져나온다. 여기서부터는 13번 국도를 타고 월출산까지 갈 예정이다. 그런데 12시가 넘어 중간에 잠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마침 영산포를 지나게 되어 영산강을 끼고 읍내로 들어간다. 차를 중심가에 세우고 음식점을 찾는데 벌써 홍어냄새가 진동을 한다. 영산포 우체국 앞의 다복식당으로 들어간다. 찾는 사람들이 많다. 메뉴를 보니 홍어정식이 중심이다. 그런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우리는 일반 정식을 시킨다.

 

나온  음식을 보니 홍어도 있고 있을 건 다 있다. 여럿이 술도 먹고 하면 홍어정식이 좋겠지만, 아내와 단 둘이 점심을 먹는 데는 일반정식도 괜찮다. 점심을 먹고 영산포 시내를 빠져 나온 우리는 다시 13번 국도로 타고 영암군으로 들어선다. 금정과 덕진을 거쳐 영암읍에 이르자 동서로 이어진 월출산 산줄기가 뚜렷하게 보인다. 우리는 월출산을 동쪽으로 우회해서 강진군 성전면으로 내려갈 예정이다.  

 

월남사지 찾는 일, 만만치 않네     

 

 

월출산은 영암과 강진 그리고 해남에 의해 삼분되어 있다. 동쪽의 천황봉에서 출발, 향로봉과 미왕재를 지나 도갑산에 이르는 주능선의 북쪽은 영암군이다. 도갑산에서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월각산과 밤재로 이어지는 능선은 월출산의 남쪽을 동서로 나눈다. 그 동쪽이 강진군이고 서쪽이 해남군이다.

 

우리는 불티재 터널을 지나 강진군 성전면에 들어선다. 여기서 내리막길을 가다가 월남리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월남사지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월남사지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나오질 않는다. 머뭇머뭇 하다 오른쪽으로 난 길로 들어서니 월남정사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최근에 만들어진 절인 것 같다.

 

그래서 앞에 보이는 마을로 들어선다. 그런데 마을 안길이 여러 갈래다. 마을 사람에게 물어보니 월남사지로 가는 길을 설명해 준다. 설명을 따라 근처까지는 갔지만 절터가 보이질 않는다. 또 물어보는 수 밖에. 다행히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한 분이 바구니를 들고 올라오신다. 월남사지를 찾는다고 하니 자기를 따라 오란다.

 

 

조금 가니 오른쪽으로 삼층석탑이 보인다. 아주머님께 진각국사비는 어디 있느냐고 다시 묻는다. 그러자 큰 거북이가 자기 집 앞에 있다고 말한다. 큰 거북이라면 진각국사비의 귀부를 말하는 것이다. 그 아주머니를 따라 갔더니 비각 안에 정말 큰 거북이 있다. 그런데 비석의 일부가 깨지고 훼손되어 있다.

 

우리를 진각국사비까지 안내해 준 아주머니는 이곳 월남리에 사는 임점효(87) 여사다. 열아홉에 나주에서 시집와 아들 딸 다 출가시키고 혼자 이곳 월남리에 산다고 한다. 무슨 낙으로 사시나 하고 물어보니, 낙은 무슨 낙이냐고 대답한다. 그냥 농사 지어 자식과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는 게 보람이라고 말한다. 아주머니 댁을 한 번 둘러보니 툇마루에 방 두 칸, 부엌과 광이 있는 일자형 집이다. 아주머님께 건강하시라고 인사를 하고, 우리는 진각국사비를 보러 간다.     

 

월남사지에서 만난 진각국사 혜심

 

그런데 진각국사비를 받치고 있는 거북이가 마치 우리에 갇힌 것 같다. 비를 보호하기 위해 비각을 만든 건 좋은데 너무 촘촘하게 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비문을 보기도 어렵고, 조각의 아름다움을 관찰하기도 쉽지 않다. 문화유산에서 우리는 내용적인 의미와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찾아야 하는데, 이런 식이면 그런 즐거움을 누릴 수가 없다.

 

 

거북은 입에 구슬을 문 상태로 목을 길게 빼고 네 발을 단단히 짚고 있다. 발톱 표현의 사실성, 목과 머리조각의 세밀성 등 이 두드러져 아주 강렬한 인상을 준다. 꼬리는 감아 올려져있으며 등에는 육각형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그에 비해 비신은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아랫부분만 남아 있다. 더욱이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육안으로 글씨를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1973년 전문가들에 의해 판독되어 그 내용을 알 수가 있다.

 

문하시랑 평장사 이규보가 찬한 비문에 따르면, 진각국사(眞覺國師)의 법명은 혜심(慧諶: 1178-1234)이고 자(字)는 영을(永乙)이며 자호(自號)는 무의자(無衣子)이다. 속가의 성(俗姓)은 최씨(崔氏)며 이름은 식(寔)으로, 나주(羅州) 화순현(和順縣) 사람이다. 25세에 출가하여 32년 동안 승려생활을 하면서 간화선을 통해 선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각고정진 32년 닦으신 도덕

감로 같은 법우를 두루 뿌리고

메말랐던 마음 밭에 보리수 심어

무성하게 자라게 해 결실시켰네.

  

진각국사 혜심은 고려시대 대표적인 선승으로 수선사(현재의 송광사) 2대 사주(社主)다. 초대 사주인 보조국사 지눌의 뒤를 이어 수선사 정혜결사를 이끌었으며 교리와 문장에 뛰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지은 대표적인 책으로는 『선문염송』이 있다.

 

월남사지에서 만난 주봉 종명 스님

 

 

진각국사비를 살펴보고 나서 우리는 3층석탑을 찾아 갔다. 이 탑은 고려시대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백제계 양식이다. 기단 및 탑신의 각 층을 별도의 돌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1층의 지붕돌이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식은 목탑양식을 석탑에 적용한 것으로,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 등 백제계 석탑에서 확인할 수 있다.

 

3층석탑을 보고 나서 월남사로 들어가면서 보니, 옛 절터에서 나온 주춧돌 등을 사용해 새로 절집을 지은 것 같다. 또 절집 주변에는 월남사지에서 나온 돌들이 널려 있기도 하다. 마침 종명(鐘明) 스님이 밭일을 마치고 들어온다. 인사를 하니 차를 한 잔 마시자고 한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스님으로부터 월남사에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월남사는 진각국사 혜심에 의해 크게 번창하였으나, 조선 초 경주최씨 들에 의해 절이 수용되면서 많은 스님들이 절을 떠났다고 한다. 그 후 절은 정유재란으로 폐허가 되었고, 1900년대까지 거의 방치상태로 남아있었다고 한다. 종명 스님은 7년전 인연이 되어 이 절에 오게 되었으며, 농사도 짓고 차나무도 키우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스님은 또한 시를 좋아하기도 하고 시를 쓰기도 한단다. 그래서인지 벽에 김육(金堉: 1580-1658)의 시조가 한 수 걸려 있다. 많이 보던 내용으로, 스님 역시 풍류를 좋아하는 것 같다.

 

자네 집에 술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소,

내 집에 꽃피거든 나도 자네 청하옴세.

백년덧 시름 잊을 일 의논코자 하노라.

 

 

스님과 시에 대해 논하다 보니 자신이 쓴 시를 몇 편 보여주신다. 시가 서정적이면서도 선문답처럼 느껴진다. 그 중 '금오산(金烏山)'이라는 시가 가장 인상적이다. 이 시는 스님이 구미 금오산에 머물며 쓴 시라고 한다.

 

금오산아 낙동강아 나 이제 가려하네,

만산홍엽 듬뿍 서린 청산녹수는 두고 감세.

자취야 있건 없건 세상 돌아가는 대로 너도나도 돌아감세.

까마귀 형상 금오라 불렀건만 속 흰 까마귀 보이지 않고,

겉 희고 속 검은 잡동새만 둥지 짓네.

세상 살아가며 검고 흰들 무엇하랴.

 

그런데 세속에 묻혀 사는 우리들이 희고 검은 것을 구별하는 분별심을 떨쳐 버릴 수 있을까? 흰 것은 희고 검은 것은 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별 수 없이 검은 까마귀. 월남사지를 떠나면서 든 생각이다.


#남도 여행#영산포#월출산#월남사지#진각국사 혜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