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겨울이 문득 떠오른다. 당시 대입을 앞둔 겨울은 필자에게 정치적 경험을 최초로 안긴 '미선이 효순이 촛불시위'가 도심에서 활발히 일어났다. 사실 그해 여름 종로를 지나가다 우연히 한복판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있는 대학생과 그를 가격하고 있던 전경의 모습이 도저히 잊히지가 않아 수능이 끝난 후엔 반드시 대학생들과 한편이 되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미선이 효순이 사건을 계기로 한 'SOFA' 개정운동, 그리고 민권 회복운동은 필자를 비롯해 많은 젊은 청춘들의 참여를 유도해내고 있었다. 상식을 요구하는 권리운동의 힘은 정말 놀라웠다. 2002년 대선의 판도를 좌지우지하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상식의 열기가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에 공헌을 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민주세력이 정권을 창출하기 위한 지역연합 전술에 의존하지 않아도, 수구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지역 맹주들과 오월동주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적어도 조금씩 역사는 전진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자신도 인지했듯, 자신의 승리로 민주의 가치가 더 이상 관심의 집중이 되지 않자 사회적 의제의 중심은 '오로지 경제'로 집중되었다. 이제 경제에서 역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어려운 싸움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줄곧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표현을 통해 경제 분야를 주도하기 어려운 민주세력과 그들을 리드해야 하는 자신의 입장이 초라해진 것이다. 정치권에서 줄곧 비주류로 살아왔던 그가 엘리트 집합소인 관료의 벽을 허물기에는 불특정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버거웠을 거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동시에 진보적인 요구들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더 기대하기를 꺼려하는 현상들이 발생했다. 이미 YS부터 급속히 진행된 사회양극화 문제가 노무현 대통령 집권시기에도 풀릴 기미가 없자 정치적으로 조직된 노무현 대통령 '비판적' 지지세력은 지지를 철회하고 대치선을 만들었다. 2004년 탄핵정국으로 급속히 세를 확대하게 된 집권여당이 몇 년이 지나지 않자 외로운 신세에 직면해 버린 것이다. 대략 2006년 지방선거를 전후해서 일까? 다수의 국민은 그들을 심판했고, 그들은 무능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이때부터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은 늘 불안정한 것이었다. 외환위기를 창출해낸 다름 아닌 그 정당이 '무능론'을 확산시켰고,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외치는 희한한 상황이 발생했다. 왜 이렇게까지 상황이 전개되었을까? 국민경제에서 나름의 성과도 있었고, 외교적으로, 문화적으로는 최대한의 성장이 있었다. 또한 집권의 명분 역시 과거의 어느 정권보다 떳떳함이 있었다. 정권 말기 노무현 대통령은 그래서 진보의 미래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국가가 현재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정책은 정치 없이 홀로 설 수 있는가. 최고 권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늘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노무현 대통령, 인간적으로 그는 성숙한 사람이기에 한국사회가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진보 일각에서는 신자유주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민중의 삶을 도탄에 빠지게 한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 냉전세력과 다를 게 뭐가 있냐는 비판이 한때 설득력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미국 군수자본의 이해로 발생한 이라크 전쟁에 참전하고, 한-미 FTA를 받아들여 경제의 양극화를 조장한 노무현 정부는 이도 저도 갈 데가 없어보였다. 이 논리가 노무현 대통령을 가장 괴롭게 했고, 임기가 끝나서까지 생각을 놓을 수가 없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내가' 혹은 '민주세력'이 원래 무능한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순수한' 진보진영이 집권하면 해결할 수 있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뜻은 높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에 비해 자본력이 없었고, 정치 기반이 튼튼하지 못했다. 외부의 충격에 끝까지 견딜 만한 내구성이 약해보였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 남은 것은 시민들의 힘이다. 시민들의 힘이 있으면 끝까지 밀고 갈 수 있다. 관료주도의 정부를 개혁하고 정치의 질서를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분명 본인은 시민 속에서 실패한 바가 있다. 이 한계를 극복하자. 중요한 것은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무슨 완전무결한 영웅적인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한국이 대통령 혼자 영도하는 국가 역시 아닐 것이다. 이 지점에서 시민들과 새로운 권력을 창출해보고자 하는 시도는 살아있는 권력의 지독한 견제 속에서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게 우리 앞에는 지금 '새로운 권력'이 놓여있다. 이 권력은 자본을 앞세운 권력이다. 동시에 386 세대 이전의 집단적 정치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 박자에 맞춰 한국사회는 다시 '민주'에 초점을 맞춘 후퇴의 시기가 찾아왔다. 그렇기 때문이라도 노무현 대통령은 그리운 사람이다. 그리고 제 2의 노무현 대통령이 나온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한 부분을 반복하지 말자. 이미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 주고 있지 않은가. 1년 동안 많은 것을 알려 준 노무현 전 대통령께 감사드린다. 한국사회에서 청년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오늘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