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 스님, 지난 밤 빗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자승 스님! 올봄을 불경스럽게 만드는 게 어디 날씨뿐이겠습니까... 무엇보다 이 땅의 정치권력이 특정 종교에까지 줄을 대고, 입맛에 맞지 않으면 칼을 들이대고 협박한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하는 건 자승 스님까지 연루되어 있다는데 있지요."-160~161쪽, '아름다운 마무리' 몇 토막'반딧불이 발하는 불빛', '그 불빛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작은 희망과 같이 겸손한 연대를 통해 문학공동체를 지향하는 종합문예지' 계간 <시에>. '시와 에세이' 줄임말인 <시에> 2010년 여름호(통권 18호)가 나왔다. 편집자문위원은 김선태, 김용락, 맹문재, 박수연, 박형준, 방민호, 안도현이며, 편집주간은 양문규.
이번에 나온 <시에> 여름 호는 고조기(?~1157) 시인이 쓴 '산장의 밤비'와 김민자가 붓끝으로 쓴 '애기똥풀'(양문규 시)을 권두시로 책갈피를 연다. '시에' 신작시에는 우대식, 박부민, 이규리, 양정자, 이흔복, 정안면, 서지월, 이태수, 김형영, 김혜순 시인 등 50여 명에 이르는 시인들 신작시가 초롱초롱한 눈빛을 반짝이고 있다.
'시에' 시인으로는 <문학사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여태천 시인 신작시 5편과 '여태천 시 깊이 들여다보기'를 <문학과 사회>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나영 시인이 짚어보고 있다. 그밖에 추억에세이, 소설, 자작시집 엿보기 등과 함께 문학평론가 임헌영이 쓴 문학에세이 '다시 오월을 맞으며'가 푸르러가는 녹음처럼 '시의 초록빛'을 톡톡 튕기고 있다.
"불교의 생명존중사상과 자비정신"은 어디 있는가"자승 스님, 저는 고등학교 시절 이후 오늘날까지 불교와 가까이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문학적 소양 역시 불교를 통해 배우게 되었고요.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여러 스님과 더불어 함께 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참다운 삶이란 무엇일까, 등을 궁구하며 살아왔지요. 그 가운데에는 항상 부처님 진리의 법이 있었습니다."-162쪽<시에> 여름 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글은 양문규 시인(50, 시에 주간)이 쓴 산문 '아름다운 마무리― 다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에게'란 제목을 단 글이다. 양문규 시인은 오랜 서울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내려가 지금 10년째 천태산 여여산방에서 지내며 시를 길어 올리고, '如如山房(여여산방)에서 보내는 편지'란 제목으로 산문을 쓰고 있다.
그는 이번에 쓴 6번째 산문에서 요즈음 논란이 되고 있는 '조계종 총무원 직영사찰로 전환'과 관련, 우리 불교가 국민과 불자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것에 조목조목 꼬집는다. 양문규 시인은 고등학교 때부터 불교를 믿었고, 시와 삶 또한 불교에서 배웠으며, 지금까지 불교를 믿고 있는 시인이다. 그가 '여여산방'에서 살고 있는 것도 불교에서 말하는 생명존중사상과 자비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양문규 시인은 이번 산문에서 '조계종 총무원 직영사찰 전환'이란 사건을 일으킨 뿌리는 "불교의 생명존중사상과 자비정신의 결여, 무소유 철학의 빈곤에서 비롯되었다"고 곱씹는다. 그는 특히 큰스님이라 불리는 대덕들 잘못된 행적과 행태(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조계종 법전 스님 등)를 법정 스님, 스코트 니어링 등이 살아온 길에 빗댄다.
법정 스님은 "소중한 나무들을 베지 말라", "남아있는 땔감 가져다가 그 위에 얹어놓고 화장해 달라"며 가시는 그날까지 무소유를 말했고, 지구촌 지성 가운데 스코트 니어링은 "죽음이 가까이 왔을 무렵, 단식을 하다 죽고 싶다", "어떤 장례식도 열려서는 안 된다"며 재를 거두어 나무 아래 뿌려 달라며 무소유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는 돈만 버는 "제사종, 관람종, 입장료종"
"자승 스님, 한국불교가 언제부터 돈만 되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행하게 되었는지요.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스님은 별로 없는 듯 보이는데요. 명진 스님은 여기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한국불교는 굉장히 문제가 많습니다. 한국불교는 선종으로 봅니다. 그런데 과연 선종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167쪽양문규 시인은 한국불교는 '무소유'가 아니라 '소유'를 부처님처럼 따른다고 여긴다. 그는 명진 스님(봉은사 주지) 말을 빌려 조계종은 "'제사종, 관람종, 입장료종'"이라고 마구 할퀸다. 지금 한국불교 조계종은 제사(49재, 예수재 등)와 기도, 관광, 입장료 등을 업으로 삼아 돈 버는 재미에만 포옥 빠져 있다는 그 말이다.
그는 조계종 자승 스님에게 "이제부터라도 한국불교는 미혹에서 각성의 세계로 나아가야" 할 것을 화두로 툭 던진다. 한국불교가 무소유 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불교와 정치의 그간 부적절한 관계를 완전 청산"하고, "조계종 큰스님들이 가진 모든 사유재산은 지금 당장 조계종에 환속시키거나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그는 "큰스님들의 개인 소유 사찰(토굴)을 바로 공찰로 돌려야" 하고, "큰스님들의 문종을 등에 업고 관리하는 사찰들을 모두 돌려받아 조계종에서 공정하게 유지 운영해야" 한다고 못 박는다. 그는 또 "교구본사는 물론 모든 사찰의 재정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 다른 종교처럼 "신도회 중심으로 사찰 운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소연한다.
양문규 시인은 끝으로 "어리석게 살아가는 중생들이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 마무리'를 이룰지 실천으로 보여" 줄 것과 "진정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큰 부자인 큰스님을 모시고 법문을 듣고" 싶다고 자승 스님과 대덕들에게 간절하게 부탁한다. 그래야 한국불교가 맑고 깨끗하고 향기롭게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를 시혼으로 삼아 삼라만상과 더불어 살기를 바라며 시와 삶을 꾸려온 양문규 시인. 그가 이번에 자승 스님과 여러 대덕들, 그리고 한국불교에게 '화두' 같은 면도칼을 꺼내 날카롭게 번득인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다름 아닌 한국불교가 '무소유'를 버리고 '소유'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불교를 믿는 시인 가슴에 '물질'이란 날카로운 면도칼을 들이댔기 때문이다.
시인 양문규는 1960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1989년 <한국문학>에 '꽃들에 대하여' 외 1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벙어리 연가>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집으로 가는 길>이 있으며, 평론집으로 <풍요로운 언어의 내력> 등을 펴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총무국장, '열림원' 기획위원, <실천문학> 기획실장 등을 맡았으며, 대전대, 명지대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