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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의 과중한 업무부담 경감을 내세워 한나라당이 내놓은 '대법관 증원'에 반대해 온 대법원이 공청회를 통해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다시 한 번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분명해 밝혔다.

 

대법원이 26일 '상고심사부'와 '법조일원화'를 주제로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사법제도개선 공청회를 가진 자리에서 주제발표자로 나온 김현석 법원행정처 정책총괄심의관(부장판사)은 "대법관 증원은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며 한나라당의 방안을 일축했다.

 

김 심의관은 먼저 "패소할 당사자가 제기한 무익한 절대다수의 상고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업무부담이 가중됨에 따라 정당한 상고사건의 신속한 처리에 중대한 장해요인으로 작용함으로써 무익한 상고사건의 상대방으로서는 소송의 확정이 지연돼 정당한 권리를 조속히 실현하거나 법률관계를 확정짓지 못하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현재 상고심의 실태"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러한 현상은 국민의 권리의식이 향상되고 사회가 다양화됨에 따라 수많은 종류의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상고심에 접수되는 사건 역시 해마다 계속 증가하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김 심의관은 그러면서 고등법원 '상고부' 제도, 대법원에 대법관이 아닌 판사를 두는 대법원 2원화 방안, 대법관 증원 등에 대해 장단점을 조목조목 짚으며, 결국 해법은 고등법원에 부적절한 상고를 걸러내는 역할을 하는 '상고심사부'를 설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 "고법 상고부와 대법원 2원적 구성 모두 부적절"

 

먼저 고등법원 '상고부'제도와 관련, 김 심의관은 "이 제도의 장점은 상고제한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대법원의 사건부담을 현저히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서 사건의 비중에 따라 심급구조에 적절한 차등을 둘 수 있고, 하급심 재판역량 강화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며, 대법원이 재판 부담을 줄여 법령해석의 통일적 기능에 보다 주력할 수 있고, 중요사건 처리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고 장점을 설명했다.

 

그러나 "고법 상고부는 대법원으로부터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하게 돼 부당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고, 단독사건에 대해 자칫 4심제의 구조를 취하게 되면 사건의 처리가 지연되고 소송의 비용이 증가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에 대법관 아닌 판사를 두는 '대법원의 2원적 구성 방안'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김 심의관은 먼저 "중요성이 적이 다수의 사건을 보다 신속하고도 충실하게 심판할 수 있게 돼 그 여력을 중요한 사건에 투입할 수 있게 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고법원의 재판부가 직급이 다른 재판부로 구성되는 어색한 모습을 띠게 되고, 동등한 합의가 어려울 수 있으며, 대법관이 아닌 판사가 대법원 판결에 관여하게 돼 대법원 판결에 대한 신뢰가 낮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2원적 구성부의 장을 맡은 대법관으로서는 2원적 구성부 사건을 모두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대법관 자신의 업무는 경감되지 못할 수도 있고, 경험이 풍부한 하급심 법관이 순차로 상급법원에 배치됨으로써 하급심이 약화될 우려가 있으며, 그에 따라 하급법원에 대한 불신이 누적돼 상고사건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김 심의관은 "뿐만 아니라 대법원의 비대화로 최고법원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법률심으로의 기능 수행이 더욱 어려워 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반대 입장을 보였다.

 

◆ "대법관 대폭 증원하면 대법원 기능 상실하고 하급심만 약화"

 

이와 함께 대법관의 과중한 사건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대법관 수를 24명으로 늘리자는 한나라당의 방안에 대해서도, 김 심의관은 "소수의 증원만으로는 현재의 사건증가 추이에 비추어 효과가 미미해 극히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반대했다.

 

대법관 10인을 증원해 24인으로 하더라도 대법관 1인당 사건 수는 2009년 접수건수를 기준으로 할 경우 1471건에 이르러 이미 2000년 수준을 넘어서서 업무부담이 대폭 경감된다고 보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나마 수 년 내에 곧 다시 현재와 같은 한계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최근 10년간 상고심 접수사건 평균 증가율인 연 9.6%를 적용할 경우 2012년 상고사건 수는 3만 7111건, 2015년 상고사건 수는 4만 1860건에 이르게 되는데, 대법관을 24인으로 증원하더라도 사건이 증가함에 따라서 2012년에는 2004년 수준으로, 2015년에는 2006년 수준으로 복귀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결국 대법관 증원의 효과를 전혀 누릴 수 없어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대법관 증원과 같은 미봉책을 계속 끌어 쓸 수는 없다는 게 김 심의관의 분석이다.

 

김 심의관은 "현재의 업무량에 여유 있게 대처하고 적정수의 대법원판결을 선고하기 위해 법관 1인당 상고사건 부담건수가 50여 건인 독일 수준에 맞출 경우 우리 대법관 수는 450명 이상, 프랑스 수준에 맞출 경우에도 80명 이상이 돼야 한다"며 "더욱이 전체 법관 수에서 차지하는 대법관 수의 비율을 고려할 때 하급심의 법관수도 현재보다 크게 증가시켜야 하기 때문에 우리 사법제도의 기본골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김 심의관은 "대법관의 대폭적인 증원은 하급심의 강화나 대법원의 업무경감이라는 기본방향과 배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대법원이 대법관의 증원을 통해 여전히 많은 사건을 소화해내고, 그로 인해 고등법원 이하 하급심은 상급심의 판단을 받기 위해 형식적으로 거쳐 가는 곳에 불과하다는 관념이 만연하게 되고, 하급심 경시경향을 가져와 필연적으로 사실심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대법관을 다수 증원하고 많은 부(部)를 두어 부 판결을 일반화하는 것은 법령해석의 통일을 기하고 중요한 법률문제에 대해 정책판단을 한다는 최고법원의 지위와 기능에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 심의관은 "결국 소수의 대법관만을 증원할 경우 업무부담 경감이라는 측면에서 그다지 효과가 없는 반면 증원에 따른 문제점만 노정하게 되고, 대폭 대법관 수를 늘릴 경우 대법원 규모가 지나치게 커져 헌법과 법률이 정한 대법원의 기능을 상실하고 하급심이 약화되며 예산 부담이 매우 커지게 되므로, 대법관의 증원은 대법원의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한 종국적인 개선책으로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 "고법 상고심사부가 유일한 대안…법원에 요구하는 사법정의도 실현"

 

결국 김 심의관은 현재의 상고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법원이 제시한 고등법원 상고심사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상고심사부는 명백히 부적절한 상고만 걸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

 

그는 먼저 "고법 상고심사부의 심사를 거쳐 대법원에 송부된 사건은 모두 충실하게 심리해 판결함으로써 대법원 판결의 신뢰도를 증진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대법원으로서는 다수 국민의 이해관계가 걸린 정책적 판단에 심리를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한 "절차면에서 보더라도 원칙적 구술심문을 통해 당사자의 절차적 만족감이 증대됨에 따라 당사자가 재판에 납득해 승복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됨과 아울러 패소할 것이 명백한 당사자가 상고제도를 악용하는 경우를 효과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정당한 상고인들의 권리구제가 무익한 상고로 인해 지연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상고심사부 제도는 각 지역에 분산된 고등법원에서 상고심사를 받게 돼 시민의 편의를 도모할 수 있고, 또한 필연적으로 대법원 소속 법관 수의 증가를 가져오게 되는 대법원의 2원적 구성방안에 비해 대법원의 비대화를 방지할 수 있고, 대법관 증원에 필요한 예산보다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실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술심문을 통해 당사자의 절차적 만족감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상고심사부의 상고심 불송부결정에 대해 대법원에 즉시항고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 대법원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심의관은 "또한 상고심사부는 현행 심리불속행 판결과 비교해 보면 오히려 아무 이유 없는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판결보다 경륜 있는 상고심사부의 구술심문을 통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사안의 진상을 파악해 명백히 상고이유가 없는 경우 당사자를 설득해 재판의 승복률을 높이는 것이 보다 나은 방책"이라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이 제시한 새로운 상고심사부 제도는 상고심에서 심사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전혀 무익한 상고를 적절하게 걸러내면서도 당사자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대법원의 법령해석통일기능에 보다 주력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의 권리구제 기능에도 소홀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 국민이 재판절차를 통해 법원에게 요구하는 사법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김현석#대법관 증원#상고심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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