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내려와 지낸 지 넉 달이 넘어서고 있다.
다랑쉬오름에 두 번 올랐고, 올레 1코스만 두 번째.
한 곳에 집중하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모처럼 맞은 한가한 시간, 청명한 하늘,
올레1코스에 제목을 붙이고 글을 써야 하는 '과제'를 껴앉고
가방을 둘러멨다.
구제역의 여파로 말미오름은 오를 수 없었지만,
그 옆의 알오름은 파릇파릇 생기를 내뿜고 있다.
길위에 사람을 얹어 사진 한 장 찍기위해
대전에서 온 아가씨 둘을 기다려 먼저 보낸다.
"밀과 보리가 자라네밀과 보리가 자라네밀과 보리가 자란 것은 누구든지 알지요~~"동요를 흥얼거리며 걷고 있는데,
햇살에 부서지는 파도,
돌담이 둘러쳐진 밭에서 일렁이는 파도라니.
'보리파도'
밀려가는 파도, 그 눈부심이라니.
제주의 바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김영갑 선생님이 느끼셨다는 그 '제주의 바람' 맛을 아주 살짝 보았다.
올레길엔 바람만이 있진 않았다.
제주사람들의 삶도 오롯이 묻어 있다.
자연, 그 자연의 일부인 사람들...
우리들의 일상.
할망바당에서 물질을 하시는 할망해녀님들.
연신 물속과 물 밖을 넘나들며 삶의 당당한 주인 노릇을 하고 계셨다
.
오늘은 바람에 나풀거리는 풀들이 계속 속닥거린다.
'바람을 만져봐.바람을 느껴봐.'
오늘따라 성산일출봉엔
수학여행 온 친구들이 많다.
파주에서 왔다는 원어민 영어강사 케이티와 장난치는 아이들,
등 뒤에 '10'을 새겨 자신의 소속을 밝히는 아이들.
길은 언제나 새로움을 안겨준다.
어제 없던 꽃도, 풀도, 바람도, 사람도...
바람에 넘실거리는 보리파도,
친구랑 가족들이랑 함께 어우러져 서로를 지켜주는 보리파도,
햇살 속에 아름답게 빛나는 보리파도,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내 삶도 저렇게 빛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