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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후원과 관련해 '해임' 통보를 받은 의정부 송현고 이충익 교사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동영상을 보고 있다. 뒤로 이 교사의 심정을 담은 현수막이 보인다.
 정당 후원과 관련해 '해임' 통보를 받은 의정부 송현고 이충익 교사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동영상을 보고 있다. 뒤로 이 교사의 심정을 담은 현수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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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11시 30분.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송현고 전교조 조합원 교사들은 모두 검은색 옷을 입고 하나 둘씩 특별실로 모였다. 이 학교 이충익 교사가 정당 후원과 관련해 '해임' 통보를 받은 것에 항의하는 의미로 모두 검은색 상복을 차려입은 것이다.

마침 이날은 21번째 맞는 전교조 창립 기념일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 모인 교사들은 5일째 단식농성을 진행 중인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과 함께 이날 점심을 모두 굶기로 했다. 테이블에는 기원을 담은 정화수 같은 맑은 물 한 잔씩만 놓였다. 교무실 이충익 교사의 자리에 놓여있던, 아침에 제자가 두고 갔다는 음료수 한 병이 떠올랐다. "점심시간에 힘내세요. -기운-"이라고 쓴 작은 쪽지가 붙은.

전교조를 둘러싼 시국상황을 담은 동영상을 관람한 후 이충익 교사가 동료들 앞에 섰다. 동영상이 상영되는 동안 턱을 괴고 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던 이 교사는 '감사하다'는 인사로 말문을 열었다.

"사실 그동안 표현 안 했지만 고통스러웠다. 해임 통보를 받고 선생님들과 아이들, 학부모들에게 편지를 썼다. 이러저러해서 학교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고. 우리 반 아이들은 내가 보낸 편지를 읽고 너무 많이 울었다. 학부모들은 문자 메시지와 전화로 힘을 줬다. 해임의 고통보다 많은 위로가 됐다. 작은 것을 잃고 큰 것 얻은 것 같다. 처음엔 많이 슬펐지만 지금은 오히려 행복하다. 아이들과 학부모, 선생님들의 응원에 정말 감사하다."

"선생님은 우리 마음 속 영원한 담임이다"

송현고 전교조 조합원 교사들은 이충익 교사가 정당 후원과 관련해 ‘해임’ 통보를 받은 것에 항의하는 의미로 모두 검은색 상복을 차려입었다.
 송현고 전교조 조합원 교사들은 이충익 교사가 정당 후원과 관련해 ‘해임’ 통보를 받은 것에 항의하는 의미로 모두 검은색 상복을 차려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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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익 교사의 말을 듣고 있던 교사들도 돌아가며 답사처럼 이어받았다. 1989년 전교조 창립 당시 중학생이었다는 황윤신 교사는 생생하게 당시를 떠올리며 지금이 바로 그 시절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전교조를 잘 모르지만 조전혁 의원 덕분에 우리가 전교조 교사라는 걸 안다"며 "아이들이 '이런 게 모두 우리 일인데 우리에게는 왜 안 물어보는 것이냐'며 '몹시 부당하다'고 말하더라, 이 역시 모두 교육이다, 다 같이 기운내자"고 말했다.

평소 이충익 교사에게 많은 것을 배우며 의지했다는 최지현 교사는 이 교사의 해임 소식을 듣고 분개해 어떻게든 힘이 되고 싶다며 27일 전교조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지윤경 교사도 지난 26일 같은 이유로 조합원이 됐다. 이 역시 이 교사에게는 더없는 위로와 힘이 됐다. 전교조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손광섭 교장도 이 자리에 참석해 "안타깝다"는 말로 위로를 건넸다.

이충익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2학년 1반 아이들도 이날 행사 소식을 듣고 특별실로 달려왔다. 마침 이날은 학교에서 축제를 하는 날이어서 아이들은 숙연한 분위기에는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선생님이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면서 준비한 율동으로 교사들을 웃음 짓게 했다.

이충익 교사가 동료들 앞에 섰다.
▲ "처음엔 많이 슬펐지만---" 이충익 교사가 동료들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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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내 이 교사의 해임과 관련해서는 눈물을 떨구며 차마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손미현 학생은 "아빠처럼 저희를 챙겨주셨는데 가시면 싫어요"라며 금세 눈시울을 붉히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박소현 학생도 "선생님이 해임되면 우린 고아가 된다, 이제 서로를 알아가는 중인데 이렇게 떠나시면 안 된다"며 "선생님이 계속 계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은정 학생은 "이충익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한테 우리들 자랑과 칭찬을 많이 하신다"며 "선생님은 우리 마음 속 영원한 담임이다, 선생님과 함께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며 이 교사의 해임 소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가 지난 27일 정당 후원과 관련한 전교조 교사들의 직위해제 시기를 시도교육청 자율로 처리하라는 지침을 내리면서 당장 직위해제는 면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징계는 남아있다.

동료 교사들에게 "결코 정당에 가입한 적은 없다"며 씁쓸한 웃음을 짓던 이충익 교사는 28일 오후 7시 서울 조계사에서 열리는 '교사대학살 중단·전교조 지키기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한 자루의 촛불을 밝힐 예정이다.

이충익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2학년 1반 아이들은 선생님이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면서 준비한 율동으로 교사들을 웃음 짓게 했다.
 이충익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2학년 1반 아이들은 선생님이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면서 준비한 율동으로 교사들을 웃음 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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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교육희망>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전교조, #이충익, #배제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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