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김기동)는 지난 5월 6일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에게 '징역 6년'을 구형했다. 안 전 국장이 세무조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기업들이 부인의 갤러리에서 미술품을 사도록 하는 방식으로 거액을 챙겼다는 것이 검찰의 핵심주장이다.
하지만 안 전 국장은 이날 최후진술에서 "알지 못하고 하지도 않은 일로 누명을 썼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특히 그는 "26년 동안 공무원으로 살아오면서 자부심을 가졌지만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참담하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부당한 표적수사'라는 항변이다.
안 전 국장의 선고공판은 오는 6월 4일 오후 2시에 열린다. 검찰은 "안 전 국장의 혐의가 충분히 입증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핵심증인들이 구체적인 진술을 못하거나 검찰의 기소내용과 전혀 다른 증언들까지 나와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홍승면 부장판사)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특히 이번 사건은 국세청 내부 권력암투, 강남 도곡동 땅 실소유주 논란 등과도 간접적으로 연결돼 여권에서도 1심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미술품 구입은 과연 '세무조사 무마' 대가인가?
현재 안 전 국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세무조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기업들이 부인의 갤러리에서 그림을 사도록 요구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세청의 '과세 전 적부심사' 신청에 도움을 주고 한 사업가로부터 1억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전자와 관련, 검찰은 안 전 국장이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C건설과 I토건 등 5개 업체에 부인 홍혜경씨가 운영하는 가인갤러리의 미술품 36억원어치를 사도록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합산한 '강매 미술품 36억어치'에는 C건설이 구입한 25억원어치 조형물이 포함돼 있다. 이는 C건설이 시행사로 참여한 고양시의 한 아파트 단지 안에 설치할 상징조형물이었다. 또 배아무개 C건설 회장은 지난 2006년 12월 가인갤러리에서 이응로 화백의 작품을 2800만원 주고 샀다.
검찰은 이러한 미술품 구입이 '세무조사 무마'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지만, 정작 구입자인 배 회장은 법정에서 전혀 다른 진술을 내놓았다.
먼저 배 회장은 이응로 화백의 그림 구입과 관련해 "사훈에 맞는 그림을 이전부터 찾고 있었다"며 "홍씨의 남편이 국세청 국장이라고만 들었을 뿐 구체적으로 어디에 근무하는지는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배 회장은 25억원어치 조형물 설치 용역과 관련해 "상징조형물 설치작업은 회사의 명운을 걸 만큼 중요한 일이어서 2006년부터 적당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며 "홍씨가 건축과 출신으로 미술 쪽에도 전문성이 있다고 판단해 용역을 의뢰했을 뿐"이라고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가인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홍씨도 "(저와 배 회장은) 2006년 10월 서로 전혀 신분을 모르는 상태에서 고객과 화랑 대표로 만난 사이"라며 "첫 거래 이후 C건설의 주상복합 분양 홍보전략과 가인갤러리의 조형물 설치 방향이 일치해 (조형물 설치라는) 추가거래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국세청 간부조차 "C건설 세무조사 세게 했다"고 하는데...흥미로운 사실은 검찰의 주장에는 안 전 국장을 향한 국세청의 사퇴압력과 간접적으로 관련된 국세청 간부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들로 인해 C건설과 관계가 전혀 없었던 안 전 국장이 C건설과 엮이게 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현 지방국세청 간부인 김아무개씨의 부탁을 받은 안 전 국장이 C건설 세무조사를 맡고 있던 문아무개(현 C세무서 과장)씨에게 청탁전화를 했다고 보고 있다. 문 과장은 "안 전 국장이 전화를 걸어 와 '친절하게 해줘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배 회장과 20년간 친분을 유지해온 사이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부동산 투기 의혹 조사과정에서 조사자와 피조사자로 처음 만났다는 사실이 법정에서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그런 김씨조차 "배 회장이 저에게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한 적이 없고, 제가 안 국장에게 부탁했다는 얘기를 배 회장한테 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다만 그는 "안 국장에게 '배 회장 회사 세무조사를 잘해 달라고 담당자에게 전화로 부탁해 달라'고 청탁한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문씨는 지난해 5월과 8월 안 전 국장 사퇴, C건설 세무조사 등과 관련해 국세청의 감찰조사를 받은 인물이다. 특히 문 과장은 검찰에서 수사하기 전 국세청 감찰팀의 요청으로 C건설을 방문한 사실을 인정했다.
배 회장도 "문씨가 국세청 감찰팀 직원과 함께 회사를 방문해 '세무조사 대가로 홍혜경에게 일을 주었다'는 것을 확인해 달라고 했다"며 "그런 사실이 없기 때문에 못해준다고 이야기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김씨에게든 안원구에게든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한 적 없다"고 거듭 주장하면서 "세금도 내야 할 것보다 더 추징당해서 그때 담당자를 고소하려고까지 했다"고 말했다. 문씨조차 법정에서 "C건설 세무조사를 느슨하게 하지 않았다"며 "(그동안의) 실적이 부족해 세게 했다"고 진술했다.
그런 점에서 검찰이 '짜맞추기 수사'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 전 국장에게 사퇴압력을 넣은 국세청과 '코드'를 맞춘 일부 간부들의 증언을 활용해 안 전 국장과 C건설의 조형물 구입을 억지로 꿰맞추었다는 것이다.
'현금 1억원'은 오리무중... 뇌물공여자는 왜 처벌 안 하나?안 전 국장의 또다른 혐의인 '1억원 수수'는 사실 여부부터 검찰과 안 전 국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사안이다. 검찰은 안 전 국장이 한 사업가의 구속 전 적부심사 신청에 도움을 주고 현금 1억원을 받았다고 주장한 반면, 안 전 국장은 1억원 수수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대구에서 사업을 하는 서아무개씨는 지난 2006년 8월 대구지방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은 뒤 '11억2700만원의 과세'를 통보받았다. 서씨는 친구인 안 전 국장으로부터 3명의 세무사를 추천받아 그중 국세청 출신인 임아무개씨를 수임했다.
이후 서씨는 임씨를 통해 같은 해 12월 '과세 전 적부심사'를 신청했고, 2007년 3월 '전액 감액' 결정을 받아냈다. 이에 서씨는 과세금액의 약 20%에 해당하는 2억2000만원을 수임료 명목으로 임씨에게 건넸다. 그런데 2억2000만원 중에 1억2000만원은 임씨가 대표로 있는 D회계법인 계좌로 보냈고, 나머지 1억원은 현금으로 임씨에게 직접 전달했다.
문제는 임씨에게 건네진 '현금 1억원'의 행방이다. 임씨는 서울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근처에서 서씨를 만나 현금 1억원이 든 쇼핑백 두 개를 건네받은 뒤 바로 안 전 국장의 자택으로 가서 1억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임씨는 1억원을 전달한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전달시점이 2007년 3월~4월께라는 것이 임씨의 증언이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안 전 국장은 국제조세국장 신분으로 해외출장 중이었다.
또한 임씨는 법정에서 "안 전 국장의 평창동 집 응접실에 있던 탁자 밑으로 쇼핑백을 밀어넣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안 전 국장의 변호인이 "그 탁자는 아래가 막혀 있어서 쇼핑백을 밀어넣을 공간이 없다"고 증거사진을 내놓자, 임씨는 "그냥 탁자 밑에 놓고 나왔다"고 자신의 진술을 바꾸었다.
임씨는 안 전 국장에게 1억원을 전달했을 당시 상황이나 정황 등을 정확하게 진술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일관된 진술은 안 전 국장에게 현금 1억원을 건넸다는 것뿐이다.
특히 임씨는 지난해 9월께 안 전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당시 수임료 중 1억원을 세금신고하지 않았는데 국세청 감찰팀에서 (돈을 건넨) 서씨에게 확인을 할 것 같다"며 "현금으로 준 1억원은 말하지 말아 달라고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는 당시 두 사람의 전화통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통해 드러났다.
'더 큰 불이익' 때문에 '1억원 전달' 거짓진술했나?검찰은 '안 전 국장에게 현금 1억원을 건넸다'는 임씨의 진술을 근거로 안 전 국장이 뇌물을 수수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뇌물을 공여(공무원에게 돈을 주는 행위)했다고 '자백'한 임씨에게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검찰의 주장대로 임씨가 안 전 국장에게 1억원의 뇌물을 공여했다면 이는 변호사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이를 두고 임씨가 뇌물공여를 자백하지 않았을 경우 그에게 생길 수 있는 '더 큰 불이익'을 생각해 '거짓진술'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소득신고를 누락할 경우 받는 '불이익'은 크다. 신고누락소득의 80%에 해당하는 세금을 추징당할 뿐만 아니라, 특별세무조사에 의해 세금탈루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는다. 또 세무사법에 의해 세무사 자격증까지 박탈될 수 있다.
특히 뇌물공여와 관련된 검찰의 상반된 태도는 더욱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금 1억원'을 안 전 국장에게 건넸다는 임씨는 고발조치조차 하지 않으면서, 25억어치의 조형물을 산 배 회장은 뇌물 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기 때문이다. '현금 1억원'은 '뇌물 공여'로 보지 않은 반면, '25억어치의 조형물'은 '뇌물 공여'로 본 것이다.
이를 두고 검찰에 불리한 진술을 하느냐('배 회장'), 유리한 진술을 하느냐('임씨')에 따라 검찰의 법적용이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검찰이 안 전 국장 뇌물죄의 단서가 된 녹취록 문구의 일부를 잘못 기술한 점도 '짜맞추기 수사 의혹'을 사고 있다. 이 녹취록에는 임씨와 안 전 국장이 전화통화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녹취록에 따르면, 임씨는 안 전 국장에게 "이런저런 거 다 감내하고 지금까지 한번도 제가 전화를 안 올렸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감내하고'를 '답례하고'라고 녹취록에 기술했다. 임씨가 안 전 국장에게 현금 1억원을 건넸다는 주장을 연상시키는 단어 선택이다.
변호인측은 "검찰이 '단어 바꾸기' 등을 통해 안 전 국장의 뇌물수수 혐의를 그럴듯하게 입증하려 했다"며 "검찰이 안 전 국장의 혐의를 입증하려고 말도 안 되는 수사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측은 "'감내'와 '답례'의 발음이 비슷하게 들려 혼동한 것 같다"며 "사건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속기사가 옮겨 적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안 전 국장과 부인이 얻은 이익이 16억원?... "단순차익을 이익으로 계산" 반박한편 검찰은 안 전 국장이 미술품 강매를 통해 약 16억원의 이익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술품 거래를 주도한 부인 홍씨는 "검찰이 단순차익을 이익으로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홍씨는 "C건설이 조형물을 구입하면서 매출이 25억원 발생했고, 이 가운데 17억원이 작가에게 갔기 때문에 제가 8억원의 차익을 봤다고 검찰에서는 주장한다"며 "검찰은 이런 식으로 단순차익인 약 16억원을 이익(뇌물)로 계산했다"고 지적했다.
홍씨는 "하지만 조형물 설치가 4년간 진행되는 프로젝트이고, 아직 판매금액이 다 집행된 것도 아니다"라며 "검찰도 정확한 이익산정은 재판부에서 판단해 달라고 하지 않았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또한 검찰은 "안 전 국장이 홍씨와 함께 이익 내지 뇌물을 취득하였다"고 했지만, '홍씨가 공모했다는 뜻이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공모한 증거가 없다"고 답변했다. '공모하지도 않았는데 이익을 함께 취득하는' 묘한 사건이 일어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