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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문성근씨
 배우 문성근씨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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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내가 배우 문성근(57)씨를 처음 만난 건 2001년 겨울이었다. 참여연대 기관지 <참여사회>의 대선 전망 좌담에서다. 당시 그는 '진보의 미래'를 위해 2002년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었다. 그때 NGO는 정치적 중립을 주장했었다. 

2002년 여름, 나는 그를 두 번째로 마주했다. 빛고을 광주에서다. 나는 2002년 대선 후보 민주당 경선을 취재하러 갔었고, 유명한 영화배우였던 그는 노사모의 일원으로 예의 노란 풍선과 손팻말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가 팔을 번쩍 들어 나를 향해 힘차게 흔들던 기억이 난다.

정치적 중립노선 때문에 '경선감시운동'에 그쳤던 시민단체들 대신, 개미시민들은 노풍을 일으켰다. 그 바람은 결국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를 당선시켰다. 문성근은 승리했다.

그 뒤로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대연정, 한미FTA, 이라크 파병 등 굵직한 이슈들이 터질 때마다 나는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러나 만나지는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 마을로 내려간 뒤에도 나는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할 말이 없다"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지난해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다 우연히 참담한 표정의 그를 발견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조문을 받는 그의 모습이었다. 눈물로 얼룩진 그의 얼굴은 2002년 광주에서 환하게 웃던 모습과 오버랩 됐다.

선거는 끝났다?

"늦어서 미안해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늦는 건대. 정말 미안해요. 운전하시는 분이 '자봉'이라 야단할 수도 없고, 아 정말 미안해요."

콧등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바삐 서두른 티가 났다. 9년 전 얼굴과 비교하니 흰 머리카락도 많이 늘었고, 주름도 늘었다. 배우는 평생 늙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도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아닌 모양이다. 지난 5월 29일 오후 2시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의 한 카페에서 8년 만에 그와 다시 만났다. 세 번째 만남이다. 

"그러게. 노짱 돕느라 이렇게 꼬박 10년을 보냈네. 하긴 제대로 한 건 2~3년에 불과해요. 집권 5년간은 후폭풍 때문에 칩거했었지. 후훗. 돌아가시는 바람에 도로 불려나왔네. 이게 다 운명이겠죠?"

고개를 푹 숙이던 그가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훅 긴 한숨도 토해냈다. 뭔가 긴 말을 시작하기 위한 서곡처럼 들렸다.

"제발 부탁하고 싶은 게, 앉아서 평론하지 말았으면 하는 거예요. 그 시간에 친구들한테 메일이라도 하나 더 보냈으면 해요."
 "제발 부탁하고 싶은 게, 앉아서 평론하지 말았으면 하는 거예요. 그 시간에 친구들한테 메일이라도 하나 더 보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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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에서는 선거는 끝났다는 분위기던데. 선거운동 할 만하세요?
"누가 그래요? 아니야. 아직 안 끝났어요. 촛불 이후 말 잘 못하면 잡아간다는 정서가 퍼져 있어서 여론조사 결과를 정확하다고 하기 어렵잖아요? 한명숙 캠프 선대본부장인 이해찬 총리도 박빙 승으로 전망하던데. 끝까지 해봐야지. 제발 부탁하고 싶은 게, 앉아서 평론하지 말았으면 하는 거예요. 그 시간에 친구들한테 메일이라도 하나 더 보냈으면 해요."

그는 지난해 경남 양산 재보궐 선거 때도 도움을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사양했다. 미래발전연구원에서 노무현 시민학교를 열었을 때도 딱 한번 강의했을 뿐 안 나갔다. 그러나, 다시 만난 그는 정치와 선거 한복판에 서 있었다. 2002년 대선 이후 정치와 멀어졌던 그가 다시 정치의 중심에 선 이유가 궁금했다.

"격분하게 된 것은 남북교류 전면 중단 때문이에요. 이건 민족사의 죄악이죠. 우리는 통일신라 이후 1300년을 단일국가로 살아왔습니다. 2차 대전 뒤 동서냉전으로 할 수 없이 갈라져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살고 있습니다. 다른 건 다 제외하더라도 한국경제를 위해서라도 남북관계 개선은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그는 다 빼고 철도이야기만 하겠다고 했다. 왜 우리가 남북교류를 중단해서는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손기정이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할 때 서울역에서 기차 타고 가다가 모스크바에서 갈아탔어요. 철도경제 하나만 생각해도 우린 남북대결을 할 이유가 없어요.

이명박 대통령은 실용주의를 선언했습니다. 재벌기업에서 사업도 해봤어요, 그럼 남북철도연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거 아니에요?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북한의 광물자원이 7000조원이랍디다. 우리말 할 줄 아는 우수한 노동력이 있어요. 왜 남북대결을 하죠?"

폭포수처럼 말문이 터졌다.

"남북관계 단절되면 중국의 북한 예속화 심해질 것"

30일 오후 범야권단일후보인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경기도 분당 서현역 광장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유세를 벌이는 가운데 영화배우 문성근씨가 유 후보를 끌어안고 있다.
 30일 오후 범야권단일후보인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경기도 분당 서현역 광장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유세를 벌이는 가운데 영화배우 문성근씨가 유 후보를 끌어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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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명박정권이 집권 2년이 지나면 남북관계를 정상화 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면중단? 결과적으로 북한을 중국에 예속시키겠다는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교류 중단되면 북한은 살기 위해 중국과 붙게 돼 있어요. 북한을 중국에게 다 내줘야 하는 거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이번 방중에서 한 일이 뭡니까. 결과적으로 나진항을 중국에 내준 거 아니에요? 이미 보수언론도 북한이 중국에 나진항 개발권을 주고 유류와 식량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잖아요.

중국은 북한을 거점으로 동북3성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북한이 중국의 한 경제권으로 흡수되기를 바라는 건가요? 세월이 가면 중국의 북한 예속화 작업은 더욱 속도를 낼 거예요. 한나라당 식으로 말해도 북한은 우리의 영토입니다. 한반도의 절반을 중국에 내주겠다는 건가요?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 정권이 무엇을 위해 남북관계를 단절하는 것인지."

한 동안 담배를 피웠다. 남북관계 단절에 대해 깊은 우려를 전달하던 그는 <한겨레> 보도를 봤느냐고 물었다. 굉장히 중요한 뉴스인데 다른 언론이 왜 침묵하는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터뜨리기도 했다.

"<한겨레>가 보도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제안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고 봐요. 정전협정 당사국(남북미중)이 모여 천안함 사고 공동조사하자는 것, 이 대통령은 거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북쪽에서 검열단을 파견하겠다고 했을 때 이미 정부는 '군사정전위 틀 안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정부는 이 제안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해요."

거듭 강조했다. 자신 스스로 정부의 천안함 사고 조사결과 발표를 믿는다고 강조했다.

"천안함 정부발표를 믿어요. 정말. 그런데 국민의 30%가 못 믿는 건 그간 거짓말을 해와서 신뢰가 붕괴한 탓이 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만일 4개국 공동조사 결과 딴 결론이 나오면 정권 차원에서 감당이 불가능한 수준이 될 것 같아요."

그는 천안함 사고로 발발된 북풍이 이번 선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엄청난 세몰이를 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한나라당과 조중동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문성근이 민주당을 대신해 사과한 까닭

세간에서는 야권이 수도권에서 전멸할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내고 있지만 그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패배주의로 가면 더 심각한 열패감이 진보를 잠식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성토했다.

"촛불도 시민사회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느낍니다. 대구, 대전, 충남, 서울, 내일(30일)은 강원도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는데 민심은 달라요. 다 진다? 그렇게 볼 것 아니에요.

나는 무조건 이번 선거를 이겨야 낙담과 열패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촛불들이 느꼈던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지요. 우리가 승리해야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따라서 이번 선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지면 2012년 권력교체기에도 힘을 모으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다시 힘을 모아 역동적으로 움직여가야 합니다."

그는 절규했다. 그리고 사과했다. 노무현정부 5년간 등산만 다녔다는 그는 민주당을 대신해 대중에게 고개를 숙였다.

"김대중-노무현정부 10년 다 잘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조중동과 싸우며 시끄럽게 굴기만 했지, 대체 뭘 한 거야? 비판할 수 있다고 봐요. 집값 못 잡아서 서민들 열 받게 한 것 정말 죄송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노동유연성, 양극화 확대 반성해야죠. 저도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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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분석이 이어졌다. 그의 말속에는 2001년 겨울부터 2010년 봄까지 이어져오는 '진보의 미래'에 대한 깊은 고민이 묻어났다. 민주당에 대한 내부비판도 필요하다는데 동의했다.

"민주당은 오래 된 정당이죠. 70년대 민주화운동을 했던 분들은 선도적인 자기희생으로 투쟁했었고, 80년대 운동권은 선도적인 자기희생적 운동가들에 학생대중이 결합한 격이죠. 또 80년 광주의 경험이 추가됐고. 여기에 중산층이 합류하면서 6월 항쟁이 성공했다고 봅니다.

87년 양김 분열 뒤 민주진영은 약화됐고, NGO가 출범하기 시작했죠. 90년대는 NGO 중심이었습니다. 김대중정권에 70~80년대 운동했던 민주인사들이 참여했다면, DJ가 지지를 잃어가면서 개미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죠.

386 명망가들은 이미 다 정치인이 돼 있었고, 386 학생개미들과 개미시민(일반대중)들이 정치에 참여했지요. 이게 노사모입니다. '개미시민'들까지 지친 상태가 되니 촛불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10대죠. 그들은 민주화시대를 살았어요. 얼마든지 촛불 들고 광장에 나와 놀아도 된다고 교육 받았고 그런 걸 보고 자랐죠.

그런데, 이명박정부가 확~ 후려갈긴 겁니다. 물대포에 온몸이 젖기 시작했죠. 시청앞 광장을 닫아걸고 국민을 상대로 소송전을 시작했습니다. 문제제기하면 천안함 사건에서 보듯 유언비어로 잡아들입니다. 미네르바가 감옥에 갇혔고, 촛불을 주도했던 네티즌카페 사람들이 징역살이를 하게 됐습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과를 치르게 된 거죠."

그가 키위주스를 한 모금 빨아들이는 틈을 타 질문을 던졌다.

- 진보 내부의 문제 아닌가요?
"촛불로 모아진 바를 모두 포괄할 정당이 필요한데, 민주당에는 이 고민이 없어요. 그게 문제죠. 민주당이 그 고민을 하게끔 강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앞으로 누가 어떻게 진보의 정치를 새롭게 짜갈 것인지 그게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거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민주당이 이대로 유지된다고 해도 이전 선거보다는 좋은 성적을 낼 거예요. 2012년 총선? 마찬가지겠죠. 그러나, 대선은 질 거예요. 민주당의 기득권 때문이죠. 기득권을 버리는 당 구조를 개편하지 않을 테니까. 민주당이 역사를 생각한다면 스스로 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거연합을 해보니 좋은 경험이 됐을 테고, 이 경험을 살려서 미래를 설계해볼 수 있지 않느냐 이런 생각도 해요. 순전히 개인 생각이지만."

진보의 새로운 정치를 고민하는 그에게 오늘날 진보의 현 주소가 어떠냐고 거듭 물었다. 그의 평가가 궁금했다.

"우리나라의 존경하는 대통령 1위가 박정희, 2위 노무현, 3위 김대중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 처음으로 박정희가 30%대로 떨어졌지요. 노무현과 김대중이 합쳐서 박정희를 넘는 날, 그날을 당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요. 우리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당겨질 것이라고 봐요. 비단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과 연결해서 하는 얘기일 뿐이지만."

영화배우 문성근씨가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 지하철역 부근에서 열린 6.2지방선거 투표 참여 호소 'NO VOTE, NO KISS' 캠페인에서 투표참여 피켓을 들고 시민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영화배우 문성근씨가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 지하철역 부근에서 열린 6.2지방선거 투표 참여 호소 'NO VOTE, NO KISS' 캠페인에서 투표참여 피켓을 들고 시민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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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만으로 쉰일곱. 젊은 날의 배우 문성근과는 다른 풍모다. 한국의 정상급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잘 나가던 시절은 지나갔다. 그는 2002년 대선 이후 노풍과 함께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각에선 직접 정치에 뛰어들라는 주문도 한다. 그는 안 한단다. 정치현장에서 머리칼이 쭈뼛쭈뼛 서게 연설하는 그지만 정치는 절대로 안 한단다. 배우이기 때문에. 언제까지 배우로 살겠느냐고 물었다.

그의 답이 돌아왔다.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그와 인터뷰가 마무리될 즈음, 사진기자 권우성씨가 트위터 소식을 알려왔다. 심상정 경기지사 진보신당 후보가 모든 유세일정을 취소했다고 했다.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들려오기 직전 마치 폭풍전야처럼 고요함이 잠식했다.

"심상정씨가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외마디 후, 그는 지하철 2호선 홍대전철역 입구에서 'NO VOTE! NO KISS' 행사를 하러 가야 한다며 바삐 자리를 떴다. 멀리서 지켜보니 아주 작은 행사였다. 젊은이 몇몇이 인도에 나무판을 걸어놓고 지나는 시민들에게 '문성근과 사진찍기'를 주문하는 것이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지나는 시민들과 '프리허그'를 하고 있었다.

2002년 여름 빛고을 광주에서 보여줬던 환한 웃음은 아니었지만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에필로그

그와 인터뷰를 끝내고 오면서 내내 심상정이 궁금했다. 트위터를 들여다보고, 인터넷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결국 심상정은 결단했다. 그는 "오늘 제가 흘리는 눈물은 진보정치를 키우지 못한 송구스러움이 담긴 눈물입니다. 또한 진보신당 지지를 호소하는 눈물입니다. '유시민 후보를 도지사로 만들어 주십시오'라는 부탁의 눈물입니다"라며 사퇴했다.

심 후보의 사퇴를 반대하는 진보신당 당원들은 격렬히 저항했다. 문성근씨는 어떻게 보았을까. 전화기를 붙들고, 그의 전화번호를 꾹꾹 눌렀다.

"민족사적 위기 국면에서 결단을 내린 것은 너무나 큰 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대표까지 지낸 분이 당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퇴한 건 정치생명을 건 결단입니다. 그를 살리는 건 시민의 몫입니다. 당외 시민이지만 심상정씨를 응원합니다."

심상정 후보는 이틀 남은 선거전에서 새로운 변수로 부상했다. 그의 결단으로 진보신당 지지율은 많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심상정의 눈물을 함께 삼킨 시민들은 그의 눈물에 대한 보답을 꼭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그:#문성근,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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