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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를 신고 연병장에서 병사들과 축구하는 모습은 평소 하느님보다 더 높고 무서운 그런 여단장(준장) 모습이 아니었다.

 

축구가 끝난 후 내무반에서 하늘같은 여단장과 졸병들이 함께하는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여단장과 졸병이 막걸리 잔을 기울인다는 게 '언감생심' 꿈이나 꿀 일인가!

 

여단장은 막걸리와 안주도 푸짐하게 준비해 왔다. 병사들 이름을 호명하며 잔에 술도 따랐다.

 

"좀 전에 축구할 때 내게 패스 해준 병사 누군가?"

"네 일병 000."

"다음은 내 공 뺏어간 병사."

"네 상병 000."

 

건배 제의가 이어지고 술이 몇 순배 돌아가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여단장 앞에서 뻣뻣하게 굳어 있던 병사들 몸이 풀려 갈 즈음, 장군님은 준비 했던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대통령으로 뽑아 줬으면 일 잘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사사건건 대통령 발목 잡으면 나라가 잘 돌아 갈 수 있겠나? 집 안에서 아버지 의견에 자식들이 반대만 하면 그 집안 어떻게 되겠나?"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이런 내용이었다. 이 말을 듣고서야 호랑이 같던 여단장이 갑자기 친절해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여단장은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 선거 운동을 하러 온 것이었다.

 

군대에서 여단장 말은 굉장한 파워를 가진다. 명령에 무조건 충성하도록 강요당하며 살다 보니 여단장이 하는 말은 아무리 사사로운 것이라도 곧 법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름 이념이나 사회 문제에 의식이 있다고 자부하던 내 귀에도 여단장 말이 그럴듯해 보였다.

 

당시 누구를 찍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름만 보고는 누가 일 잘할 사람인지 알 수가 없어서 무척 고민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하지만 여단장이 그토록 당선시키고 싶어 하던 민정당 후보는 아니었다. 

 

여단장님의 막걸리 선거 운동...투표 '첫 경험'

 

1992년 12월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가 두 번째 선거경험이다. 제대하고 난 이후다. 투표장에 들어서면서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선택한 후보는 머리가 하얗고 늘 두루마기를 입고 다니던 분이다. 학창시절에 그 분 연설을 들은 적이 있다. 매우 힘 있고 재미있는 연설이었다.

 

그 분은 낙선했다. 하지만 난 실망하지 않았다. 실망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당선되지 않을 것을 알고 찍었기 때문이다. 난 그분의 사상과 공약에 동의했을 뿐이다. 내가 던진 한 표가 우리 사회에 작은 울림이라도 일어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그 이후 지금까지 많은 선거가 있었다. 난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투표장에 갔다. 간혹 가족동반해서 바람 좀 쐬고 오자는 유혹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런 내게 '투표가 밥 먹여 주냐'며 눈을 흘기던 이웃도 있었다.

 

난 그 이웃에게 '투표가 곧 밥' 이라고 대답했다. 우리 손으로 뽑는 후보가 우리 밥그릇을 뺏을 수도 있고 우리 밥그릇에 밥을 한 그릇 더 얹어 줄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계층에게 얼마만큼의 세금을 걷을지를 결정하는 것도 정치인이고 누구에게 어떤 복지 혜택을 줄지를 결정하는 것도 정치인들이다. 그 외에도 우리 삶의 내용을 결정하는 많은 것들이 정치와 연결돼 있다. 때문에 투표가 곧 밥인 것이다.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많은 것들이 정치와 연관

 

지난 2006년 지방 선거 때는 진보정당 소속 기초의원으로 직접 출마했다. 기존 보수 정당 출신 지역 정치인들보다 훨씬 더 잘할 자신이 있었다. 또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평범한 생활인들을 확실하게 대변 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

 

낙선하고 난 이후 한동안 많은 생각을 하며 지냈다. 그때처럼 진지하게 내 자신을 되돌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 많은 고민을 한 끝에 내린 결론은 떨어진 게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난 의욕만 있었지 당선 될 만한 구체적인 준비를 하지 못했다. 주민들이 내게 한 표를 줄 만한 이유도 만들어 주지 못했다. 그러니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그래도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당시 선거 결과가 후보자를 제대로 검증하고 평가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불어온 한나라당 열풍은 굉장했다. 지금도 2006년 지방선거를 '묻지마 투표'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난 '묻지마 투표'를 실감 할 수 있었다. 박근혜 의원 얼굴에 상처가 나는 사고가 터진 이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아예 다른 당 후보와는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난 평범한 유권자다. 내일 아침이면 예전처럼 투표장에 갈 것이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잘 대변하고 성실하게 일 할 것이라 예상되는 사람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이다.

 

하지만 걱정이다. 또 다시 '묻지마' 투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천안함 사태 때문에 정책 선거가 실종된 지 이미 오래다. 공약과 후보는 이미 뒷전으로 밀렸고 천안함 사태가 이번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만 남아있다. 이런 정치에 환멸을 느껴서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이런 문제가 쌓이면 또 다시 '묻지마 투표'가 재현되는 것이다.

 

첫 경험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선거 때마다 여단장 말이 기억나는 이유도 아마 첫 경험 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단장이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 후보에게 힘을 실어줘야 나라가 잘 돌아간다고 할 때 난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마 그 말을 했다면 난 다음날 군기 교육대에 갔을 것이다.

 

난 하고 싶은 얘기 맘껏 해도 두렵지 않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소신을 광화문 네거리에서 소리쳐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서로 손가락질 하며 싸우지도 않고 다르면 다른 대로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그런 세상을 원한다. 그런 세상을 위해 난 투표장에 갈 것이다. 생각 할  자유, 표현 할 자유를 얻어 줄 수 있는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던질 것이다.

 

또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 밥그릇에 밥을 한 숟가락 더 얹어 줄 수 있는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태그:#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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