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관해 새 책을 쓴다고 하니 '서울에 대해 쓸 것이 그렇게 많아? 라는 물음이 돌아왔다. 그러게 말이다. 나도 이럴 줄은 몰랐다. 길을 나서니 서울은 자꾸만 민낯을 내밀고 새로운 말을 걸어왔다. 이야기는 샘물처럼 솟아나고 이어졌다. 그리고 길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표정을 드러냈다.
- <오!!! 멋진 서울>서문에서
그렇다. <오!!! 멋진 서울>(웅진 리빙하우스 펴냄)에는 저자가 발품을 팔아 만난 120곳의 서울 이야기가 오롯이 들어있다. 서울의 동서남북 어디랄 것도 없이 저자가 눈독들인 곳은 여지없이 '민낯'을 드러내고 만다.
서울은 '느림'보다는 '치열함'이 먼저 떠오르는 대도시다. 조금이라도 어정대다가는 가차 없이 내몰릴 것 같은 비정함마저 느껴지지 않는가. 그런 서울을 저자 박상준은 눅진하도록 다독이고 정성들여 우리 앞에 멋지게 내놓았다.
숨가쁘게 펼쳐진 서울 120곳... 대체 토라진 길이 어디야?
책 속에는 서울의 120곳이 숨가쁘게 펼쳐져 있다. 그러나 결코 급하게 읽을 필요는 없다. 저자가 조근 조근 걸으면서 얻어낸 서울 사랑이니 독자 또한 그리하면 된다. 쉬엄쉬엄 책갈피를 뒤적이며 잠시 쉬어갈 곳을 찾아 둘러본다. 산책하듯이 목차를 더듬으면서 평소에 궁금했거나 한 번쯤 가 보았으면 했던 곳이 눈에 띈다면 그 부분을 펼치고 읽어내면 족하다. 사전처럼.
유랑했다. 방랑했나. 가쁜 서울의 삶은 늘 길이 그립다. 느긋한 걸음과 산소처럼 맴도는 흙의 부대낌. 먼 땅 제주의 올레길이거나 지리산의 둘레길이거나 대관령의 옛길에서나 될 법한 일이라고? 서울에서도 모두 만나고 즐길 수 있다. 서울을 걸었다. 거처 없이 떠돌고 정처 없이 떠다녔다.........가만가만, 사뿐사뿐, 타박타박, 또는 총총대며 걸었다.
우선 서울을 걸으란다. 그러면서 바쁜 마음 한 자락을 길에 내려놓고 유랑하란다. 그에게 길은 저마다의 색깔이 있다. 어느 한 군데도 같은 곳이 없다. 그래서 모든 길이 사랑스럽다고 한다. 어떤 길은 토라진 듯하고, 어떤 길은 살갑고, 어떤 길은 작고 소박하고. 도대체 '토라진' 길은 어떤 길인지 가보지 않고는 배겨낼 재간이 없다.
서울의 산책로, 유적지, 공원, 카페 등 가볼 만 곳이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엮여 있다. 워낙 많은 곳이 섭렵되어 있어서 색인이 필요하다. 그래서 별책부록이 붙었다. 얇은 별책부록은 봉급자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보너스 역할을 한다.
저자의 서울 사랑이 너무 지나쳤나, 두께에 '헉'
<오!!! 멋진 서울>에는 24곳의 산책로, 19개의 유적지, 14곳의 공원과 광장, 28곳의 미술관, 박물관, 5군데의 도서관과 헌책방, 12군데의 소극장, 영화관, 기념관, 자료원, 수련관, 22곳의 카페, 레스토랑, 그리고 8군데의 쇼핑, 스타일에 관련된 내용들이 들어있다. 그냥 들어있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은근한 사랑을 듬뿍 담아 달콤한 연애편지 쓰듯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듯 버무려 놓았다.
그렇다면 이런 곳들을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서민적이다. 지하철과 버스와 걸음만을 가지고도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교통편은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지만 자동차의 길은 안내하지 않는다. 서울과 연계된 수도권 몇 군데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소개되어 있는데, 그마저 대중교통 길이다. 더 나가 친절하다. 장소에 따라 독자가 궁금해 할 것이라면 무료인지, 유료인지, 관람시간과 전화번호에 누리집 주소까지 아주 꼼꼼히 곰살맞게도 챙겨 놓았다.
정말 사랑스런 공간과 사람들. 가만히 생각하니 이들 모두 내가 서울에서 만난 인연이다. 서울은 우리의 생각보다 삭막하지 않다. 가끔씩 우리의 마음이 삭막해지는 순간이 있을 뿐이다. 그 순간 '오! 멋진 서울'을 떠올릴 수 있다면.
저자는 서울에서 사랑을 만나 설렜고, 감성의 거리에서 감각을 키웠고, 사연을 만나 조우했으나, 그래도 다 안다고 할 수 없어서 날마다 탐험을 시도한다. 그리고 누리며 즐긴다. 그런 시간들을 켜켜이 쌓아 우리에게 고스란히 넘겨주며 함께 누리자고 한다. 김춘수의 <꽃>처럼 '하나의 몸짓'에 다름없었던 서울이 그가 불러 주니 '꽃'이 되었다.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었다.
다만 서울사랑이 너무 지나쳤나. 사전처럼 두꺼운 책에 독자들의 손길이 멈칫하게 생겼다. 그러나 갈피갈피 여백처럼 들어앉아 있는 사진과 저자의 알콩달콩 풀어내는 이야기에 책장은 쉽게 넘어간다. 외출시에는 별책부록을 들고 길 위에 나서면 된다.
입소문 날까 쉬쉬하며 걷고 싶은 길, 궁금하다면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서울에 이런 곳이 숨어 있었다니 입소문이나 날까 슬며시 입을 다물고 싶다'는 월드컵 공원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어볼까. '다정한 걸음이 정겨운 걸음에게 말을 건네는, 나무와 나무는 저들끼리 뒤에서 소근 거리며 파르르 하거나 스스르 하는' 서초문화예술공원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어볼까.
'태양인들 바람인들, 그 몸을 휘저을지언정 푸름을 어찌하지는 못하는, 절개 같은 푸른 솔잎을 머리에 인 채 유연하게 세상과 마주 한다는', 우이동 솔밭 공원을 거닐며 '푸른 빛깔'로 물들어 볼까. 어느 날에는 '안으로 좀 더 안으로 후미진 구석'의 '팔판동까뻬'로 스며들어 커피향에 취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서울과 연애하는 저자는 이미 객관적이지 않다. 서울사랑 콩깍지가 단단히 씌웠다. 하지만 나 역시 그의 사랑에 동승하고 싶어진다.'콩깍지여 영원하라'고 응원해 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