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과 경기지사만 당선시키면 뭐하나? 팔·다리도 없이 일할 판인데…."
한나라당 서울시당의 한 관계자는 3일 수도권 광역단체장 3곳 중 2곳을 지켜낸 선거 결과에 대해 이렇게 푸념했다.
그의 말처럼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지사는 민선 4기와 전혀 다른 정치적 환경에 놓이게 됐다. 1995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이래 처음으로 수도권 광역단체장과 정치노선이 전혀 다른 지방의회를 상대로 힘겨운 4년을 보내야 하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먼저 민선 1기(1995년)부터 4기(2006년)까지의 서울시의회 선거결과는 다음과 같다.
1기 : 민주당 123명, 민자당 10명 (민주당 조순 시장)
2기 : 국민회의 78명, 한나라당 15명 (국민회의 고건 시장)
3기 : 한나라당 87명, 민주당 14명 (한나라당 이명박 시장)
4기 : 한나라당 102명, 열린우리당 2명, 민주당 1명, 민주노동당 1명 (한나라당 오세훈 시장)
그러나 6·2 지방선거에 의해 구성될 5기 서울시의회(106명)는 민주당 79명, 한나라당 27명이다. 민주당이 서울시의원 4명 중 3명을 차지함으로써 야당이 시의회를 완벽하게 지배하는 구조다. 자신의 인기를 발판으로 시장 재선은 물론, 안정과반수의 시의회까지 만들려고 했던 오 시장에게는 '악몽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됐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시의회, 오 시장 견제세력으로 부상하다
그렇다면, 서울시의회는 오 시장을 어떤 방식으로 견제할 수 있을까?
4기 시의원을 지낸 민주당 조규영 당선자(구로2선거구)는 "오 시장의 전횡을 막으려고 해도 힘이 없어서 할 수 없었던 일을 이제는 제대로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의회는 매년 24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심의·의결할 권한이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시의회는 그동안 오 시장의 한강르네상스, 디자인서울, 뉴타운재개발 사업 등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키곤 했다.
오 시장이 재임 4년 동안 1180억 원에 달하는 홍보비를 마음껏 써도 한나라당 어느 누구도 그에게 "꼭 필요한 돈만 쓰라"고 제동을 걸지 못했다. 민주당 시의회에서는 이런 일은 어림도 없다.
지난해 12월, 10만 서울시민이 서울광장 사용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꿔달라는 조례개정안을 제출했지만, 한나라당이 장악한 시의회는 무한정 심의를 유보해 본회의에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조규영 당선자는 "시의원 10명의 서명만 있으면 조례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는데, 한나라당 시의원 어느 누구도 응하지 않았다"며 "5기 시의회에서는 시민들의 요구가 작년처럼 철저히 무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오 시장은 앞으로 시의회가 요구하면 수시로 의회에 나와 시정 질의에 응답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됐다. 이전에도 시정질의 제도가 있었지만, 한나라당 일색의 시의회는 "바쁘게 일하는 시장을 놔두라"며 그를 거의 부르지 않았다. 어쩌다가 야당 시의원 1명이 오 시장을 성토하게 되면 여당 시의원 10명이 나와 오 시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늘어놓는 게 서울시의회의 시정 질의였다.
통과의례에 불과했던 행정사무감사(여의도 국회로 치면 국정감사)가 제 역할을 하게 돼 오 시장의 역점사업들이 철저한 검증을 받게 된 것도 앞으로 달라질 풍경이다.
경기도의회도 124석 중 80석이 야당
김문수 경기지사가 상대해야 할 경기도의회의 사정도 서울시와 크게 다를 게 없다.
3기와 4기 도의회는 한나라당이 91석과 115석을 각각 휩쓸었기 때문에 손학규·김문수 지사의 도정에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나 5기 도의회는 124석 중 80석(민주당 76, 국민참여당 2, 민주노동당 1, 진보신당 1)이 야당들에 돌아갔다. 42석의 한나라당은 교섭단체는 구성할 수 있지만, 다수결 사안마다 야당연합에 밀릴 수밖에 없다.
도청 13조 원, 도교육청 9조 등 22조 원에 달하는 예산도 야당의 동의 없이는 쓸 수 없다.
그동안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무상급식 예산안을 3차례나 무산시켰던 경기도의회가 이제는 무상급식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 것이 가장 극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4기 도의원을 지낸 민주당 고영인 당선자(안산6)는 "김 교육감의 혁신학교와 무상급식 정책을 현실적으로 뒷받침할 힘이 생겼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김 지사의 핵심공약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사업에도 급제동이 불가피하게 됐다. 경기도의회가 예산심의 및 산하기관들의 사업계획 승인 카드로 김 지사를 지속적으로 압박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소수의 설움을 톡톡히 맛본 고영인 당선자는 "김 지사의 독선과 오만은 확실히 견제하겠다, GTX 같이 인기영합적인 정책도 당연히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에서도 "여당 '빅2' 단체장들의 봄날은 끝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의회 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한 A씨는 "그동안 한나라당이 오 시장의 방패막이가 되어줬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정치력을 시험받게 됐다"고 말했다. 야당 시·도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에 쓰일 소규모 사업 예산에는 순순히 동의해주겠지만, 두 단체장의 대권 행보와 직결되는 대규모 사업은 어김없이 저지하려고 할 것이라는 얘기다.
A씨는 "수도권의 여당 단체장들은 그동안 정무라인의 필요성을 별로 못 느끼고 지냈지만, 앞으로는 야당과도 협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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