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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은 처음부터 불리했다. 도의원 출마자 중 유일한 여성 후보였고, 선거구도 중산층 이상으로 지역에서는 부유하다는 평가를 듣는 한나라당 우세지역이었다.

 

더구나 외진 곳에 있는 지역은 상대 후보의 텃밭이었다. 한나라당 후보는 지역 시의회 부의장을 지내며 오랜 기간 지역 정치를 해 온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인물로 여러 조건에서 앞섰다. 

 

여성으로, 시민 사회단체 영입 인사로 민주당 전략 공천을 받아 나선 것이었지만 객관적으로 분석할 때 당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였다.

 

주변에서는 말만 여성 배려요 형식만 전략 공천이란 이야기가 떠돌았다. 아는 사람들은 나가지 말라고 만류했다. 당선이 가장 어려운 선거구에 여성을 배치한 생색내기 공천이라는 지적이었다.

 

처음 정치에 도전하는 38세 싱글맘이 맞붙기에는 녹록지 않은 환경이 분명했다. 그래서 초반 계획을 낮게 잡을 수밖에 없었다. 승리보다는 나름대로 최대한 선전하자가 목표였다. 여성 후보로 얻은 자리이니 만큼 다음번에도 여성들이 나설 수 있도록 흐름을 지켜내자는 것이었다. 

 

선거운동의 시작은 미약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탄력이 붙었다. 아줌마들이 성원했고, 주변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또한 시정 모니터 활동을 펴 오면서 상대 후보가 시의회 활동을 부실하게 했음을 알고 있었기에, 아줌마 특유의 오기가 생겨났다. 저런 후보자가 도의회까지 진출하게 만들 수 없다는 각오였다.

 

도와주는 주위 사람들의 열정도 힘을 북돋웠다. 선거를 돕는 모두가 형식적이 아닌 진정성 있는 도움을 주고 있었다. 마지막 선거 운동을 마치며 눈물이 핑 돌만큼 첫 정치도전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혹시 떨어져도 나를 밀어준 사람들을 위해 계속 애써야지 마음을 다질 만큼.

 

그리고 나온 결과는 창대했다. 정치 도전 두 달 만에 당선! 첫 개표에서는 1300표 차로 뒤졌으나 개표함을 열수록 차이가 좁혀졌다. 75표 차로 첫 역전을 시킨 이후 표 차이가 벌어졌다. 총 득표수 1만4079표 득표율 47%. 1만2700표로 42.4%를 얻은 상대 후보 누르고 경기도의원에 당선되는 순간이었다. 아줌마의 힘은 매서웠다.

 

무상급식·보육문제에 움직인 엄마들 마음

 

6·2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여성 의원들이 여럿 배출된 가운데, 경기도 안산시 8선거구에서 승리한 원미정 당선자는 악조건을 딛고 의미 있는 승리를 이뤄냈다. 지역 내 다른 선거구의 경우 대부분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후보만이 경쟁하는 양당 대결 구도로 갔으나 8선거구는 야권단일화가 안 돼 민주노동당 후보도 출마했다. 한나라당 심판의 흐름이 크게 작용했지만 가장 힘들 것으로 예상됐던 지역이었던 만큼 30대 주부의 당선은 그 의미가 상대적으로 크게 평가되는 것이다. 

 

지난 4일 원미정 당선자를 만나 선거 과정과 앞으로 의회 활동에 대한 각오를 들어봤다.

 

원 당선자는 선거 승리에 대해 "한나라당에 대한 불신과 일을 제대로 했으면 하는 지역민들의 바람이 컸다"고 말했다. 이어 "진정성 있는 마음이 유권자들에게 전해진 것이 주효한 것 같다"고 승인을 분석했다.

 

또 아이 키우는 주부로서 아파트를 돌면서 만난 주부들이 성원을 해 줬고, 특히 무상급식 무상보육에 대한 엄마들의 관심이 높았다고 덧붙였다.

 

"엄마들의 도움이 상당히 컸어요. 선거 운동 하면서 아이들 학교문제와 무상급식, 보육문제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저도 진심이었고 엄마들의 말하는 어려움이 와 닿았고, 그러다보니 서로 간에 진정성이 느껴진 것이지요.

 

학교 학부모들 모임가면 엄마들이 처음에는 정치인 왔다고 냉랭하다가 한 30분 이야기하다 보면 정말 꼭 돼서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정치인들이 본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 없는지라, 제 이야기에 신뢰감을 갖고 의회에 진출해서 잘 해보라고 도움을 준 것이라 봅니다."

 

"6시 되면 선거운동원들은 칼퇴근, 홀로 선거구 누벼"

 

아이들 문제에 대한 공감대는 엄마들의 공감대는 원 당선자가 승리하게 된 큰 요인이었다. 아줌마의 진정성이 아줌마들에게 통했던 것이다. 덕분에 시간이 흐르면서 원 당선자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처음에는 당선을 자신 못했는데, 선거 운동을 하면서 확신이 들더라고요. 주민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한나라당에 대한 시민들의 배신감이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기존 정치인들이 지역현안에 관심을 안 갖고 외면하는 일이 지속되다 보니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높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의원 만들어 놓으면 일 안 하고 욕심만 채우는데, 그러지 말고 제발 일해라가 이번 표심에 나타난 주민들 뜻이라고 봐요."

 

여성후보로서 여성을 배려해야 한다는 마음은 선거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는 여타 후보들과는 다르게 이례적으로 선거운동원들을 오후 6시에 '칼퇴근' 시켰다. 당선자 스스로가 주부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주로 여성들인 선거운동원들 배려한 것이었다.

 

"아이들과 가정을 우선시해야 하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정치가 힘든 일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선거운동을 아예 안 할 수는 없고, 아침부터 오밤중까지 하면 정성들여 하겠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의무적이고 형식적으로 하면 유권자들에게 진정성 있게 안 비칠 것 같아, 정말로 저를 좋아하고 하는 사람들과 함께 진정성 있게 하자 생각했지요. 밤에는 제가 다니는 교회 집사님들이 도움을 주셨어요. 전화를 해도 정성스럽게 해 주셨지요."

 

오후 6시 이후 그는 홀로 선거구를 누벼야 했다. 하지만 그만큼 다른 후보들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후보자가 홀로 명함을 돌리는 것을 본 유권자들은 "정말 후보예요? 본인 맞아요? 후보가 직접 다니시네요" 묻고는 했는데, 그게 선거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원미정 당선자는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싱글맘이다. 그는 이혼한 경력에 대해서도 스스로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기에 처음부터 오픈했다고 말했다. 괜히 공개 안 하면 뒤로 갈수록 흐려지게 하지 않을까 해서 아예 당당하게 공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싱글맘이라는 것이 선거에 조금은 불리한 조건이었다고 덧붙였다. 명함을 나눠줄 사람이 상대 후보들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저와 어머니밖에 없었어요. 선거법상 명함을 배우자 1인과 배우자 지정 1인까지 돌릴 수 있는데, 저는 애들도 어리잖아요, 그런데 상대 후보는 자식들 장성하지요, 배우자 있지요. 배우자 지정 1인까지 돌리니 그게 제게는 불리한 조건이었지요."

 

하지만 그럴수록 명함을 단순하게 뿌리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후보들은 후보자 가족들이 찾아가서 돌릴 뿐 후보자 자신이 직접 찾아가지 않은 지역들도 있었는데, 원 당선자는 자신이 지역 구석구석을 누비며 명함을 돌렸고, 그게 득표에 많은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통일선봉대 나섰던 여대생, 시민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간호사로 있던 원 당선자가 처음 시민운동에 뛰어든 것은 2001년 YWCA 생활정치학교를 통해서였다. 지역 인사의 권유로 참여한 것이 계기였다. 그는 생활정치학교가 "내면의 잠재된 것을 깨워내는 느낌과 함께 '왜 그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살았지' 하는 후회감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대학시절 통일선봉대를 하며 민주화를 위해 청춘을 보냈던 바탕이 작용을 한 것인지도 몰랐다. 이후 병원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시민 단체 활동에 참여하면서 그는 시민운동가의 삶을 시작했다. 지방의회를 모니터링 하면서 여성의 정치 참여 필요성을 절감해 왔는데, 이번 선거를 통해 그 필요성을 직접 실현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고 있는 도의회 의정 활동은 어떤 것일까?

 

"교육에 대한 관심도 많고, 여성이나 보건 행정자치에 대한 관심도 많은데, 투명한 행정이 될 수 있는 제도적인 틀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많이 기울일 생각이에요.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고 제도적 투명성을 갖추는 일도 중요하거든요. 행정 사무 감사를 통해 전시행정인지 여부를 따져나갈 것이고, 각각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제안하면서 필요한 것은 깎는 작업도 해야겠지요. 특정영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을 생각입니다."

 

김문수 지사의 경기도정에 대해 꼼꼼한 감시를 다짐한 원 당선자는 주민과 시민사회 활동가, 전문가들 함께 토론하는 원탁회의 등을 통해 도정을 상세하게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시민들의 대리인으로 의회에 들어가는 것이니 만큼 주인으로 시민들이 의정 활동을 철저히 감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의회에 가니 똑같더라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걱정되니 부족한 부분은 많이 지적해 달라는 것이 정치에 첫 발을 내딛는 그의 바람이었다.

 

"몰라서 고민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 부분은 주민들이 최대한 제게 문제제기를 하고 지적해 줬으면 좋겠어요. 몰라서 놓치는 게 있을까 걱정이지 알면서는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시의회에 갔으면 자신감 있게 했을 것 같은데, 도정은 모니터를 많이 못해 부담스러운 면은 있어요. 많은 분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만들어 갈 생각이고, 더 많이 노력할 것입니다."


#6.2 지방선거#경기도의원#지방선거 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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