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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이 4대강을 마구 파헤치는 굴착기 앞을 가로막습니다. 인천 계양산에는 골프공 대신 맹꽁이와 반딧불이 넘쳐납니다. 서울광장에서는 시민들이 마음 놓고 촛불을 들고, 콘서트를 열고, 추모제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눈칫밥'이 아닌 친환경 급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이 '즐거운 상상'의 끝은 어디일까요? 6.2 지방선거로 한나라당이 독점했던 지방권력의 절반 이상이 교체되면서 사회 곳곳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투표가 내가 사는 동네를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게 될지 <오마이뉴스>가 미리 짚어봤습니다. <편집자말>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국악계의 소녀시대'라 불리는 걸그룹 '미지'가 국악연주와 함께 구성진 목소리로 '소녀시대'를 부르고 있다. 광장 잔디밭에는 300여 명의 시민들이 신문지나 돗자리를 깔고 앉아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광장이 마치 안방인 것처럼 아예 잔디밭에 누워서 공연을 보는 시민들도 있다. 

 

서울시는 지난 5월 15일을 시작으로 매일 오후 7시 30분부터 100분간 '문화와 예술이 있는 서울광장'을 열고 있다. 시청역 5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자주색 팸플릿에는 6월 한 달간의 일정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행사를 위한 행사가 너무 많아... 집회 막으려고"

 

밝고 화려한 무대 옆으로 눈길을 돌리자, 광장 한쪽에 10여 명이 아스팔트 바닥 위에 앉아 촛불을 밝히고 있었다. 자신을 '촛불시민'이라고 밝힌 이아무개씨(47) 앞에는 10여 개의 손팻말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4대강 개발 중단', '언론악법 폐기'와 같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2008년 촛불 이후 이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이곳 서울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 자연스럽게 서울광장에서 하는 행사도 자주 보게 된다는 이씨는 무대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쓸데없는 행사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오늘 같은 경우에는 분위기가 괜찮은데 행사를 위한 행사가 너무 많아요. 집회 막으려고..."

 

지난달 17일 '2010 유권자 희망연대'와 참여연대가 발표한 '서울광장 사용 현황'을 보면 2004년 5월 개장한 서울광장에서는 지난 4월 11일까지 총 752건의 행사가 열렸다. 이 가운데 서울시와 그 산하단체의 사용건수는 30%에 달했다. 여기에 서울시 외에 다른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사용까지 포함하면 관제행사는 전체 행사의 절반에 가까웠다.

 

서울광장조례에 따르면, 서울광장을 사용하고 싶은 사람은 행사일 최대 60일 이전부터 최소 7일 이전까지 신청을 해야 한다. 서울시가 그 이전에 행사계획을 잡아놓은 경우에는 사용할 수 없다. 최근 서울시는 '문화와 예술이 있는 서울광장' 일정을 이유로 오는 13일 열릴 예정이었던 '6.15 10주년 기념 평화통일 범국민대회'를 불허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문화와 예술이 있는 서울광장'은 오는 10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신미지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간사는 "문화공연을 하는 건 좋지만 시민들과 논의 없이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광장을 점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광장사용의 허가권이 서울시에 있다 보니 광장이 상업화되는 경우도 생긴다. 서울시는 월드컵 기간 동안 서울광장의 사용권을 SK에 넘겨줬다. 이 때문에 SK측과 응원가 문제로 마찰을 빚은 '붉은악마'가 거리응원전을 서울광장이 아닌 강남구 봉은사 앞에서 하겠다고 선언하는 일이 생겼다. 서울광장이 2002년 월드컵부터 거리응원전의 상징처럼 돼 있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조치다.   

 

이재근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팀장은 "광장이라는 건 항상 열려 있고 비어 있는 공간이어야지, 기업들의 홍보부스가 아니"라면서 "서울광장을 특정 기업에 임대해주다시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미지 간사 역시 "광화문 광장에서 1인시위도 못하게 하면서 지난해 현대카드가 주최한 스노우 잼 대회는 열게 해줬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라며 "서울광장이 대기업 광장도 아니고, 홍보부스도 아닌데..."라고 혀를 찼다.

 

빠르면 오는 8월 말, 서울광장이 시민들 품으로!  

 

지난 3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의 '석패'를 지켜본 시민들은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아, 서울광장!'을 외쳤다. 한 후보가 당선되면 오세훈 시장 재임 기간 동안 '닫혀' 있던 광장이 활짝 '열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서울광장을 되찾으려면 4년을 더 기다려야 하나'라는 탄식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빠르면 오는 8월 말, 서울광장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 전망이다. 이번 서울시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하며 전체의석 106석 가운데 79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서울광장조례개정안을 '서울시의회 첫 번째 통과조례'로 추진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여소야대'를 이룬 민주당은 조례안 통과를 자신하는 분위기다.

 

서울광장조례 개정을 앞장서서 추진해왔던 시민단체의 활동가들도 만감이 교차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지난해 6월 8일,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와 야당은 '광장을 시민 품으로'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경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인 5월 23일을 시작으로 영결식 날을 제외하고는 약 보름간 서울광장을 경찰차벽으로 봉쇄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그해 6월 24일, 광장조례 서울시민캠페인단이 구성되었다. 

 

이재근 팀장은 "처음에는 순진하게 시작했다"며 "'(서명) 한 번 받아보자'하고 시작했는데, 10만 명을 모으는 게 장난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10만 명 서명받아 주민발의했지만...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10만 명이 넘는 서울시민이 서명한 조례개정안의 핵심은 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꾸는 것이다. 또한 '시민의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으로 제한되어 있는 서울광장의 사용목적이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해, 집회와 다양한 공익적 행사도 개최할 수 있도록 했다.

 

광장사용 허용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도 시민위원회를 설치해 시민의견이 반영되도록 했다. 여기에 연령·성별·장애·정치적 이념·종교 등을 이유로 광장 사용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도 담았다. 지난해 12월 29일 캠페인단은 조례개정안 주민발의에 성공했다.   

 

이 팀장은 "광장이 닫혀 있는 데 분노했던 분들이 많이 있었다"면서 "시민들이 마지막에 많이 도와주셔서 주민발의를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사실, 조례개정안을 발의하는 것은 서울시의원 10명의 동의만 있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지난 회기 서울시의회에 야당 의원은 민주당 5명, 민주노동당 1명, 무소속 11명으로 한나라당이 절대 다수였다. 조례개정에 찬성하는 의원 10명을 모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대야소'로 인한 난관은 또 있었다. 서명을 제출한 지 3개월 후에 열린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조례개정안에 대한 심의·의결이 보류된 것. '상위법 저촉 여부 등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앞서 캠페인단은 지난해 11월 100명의 서울시의원들에게 '서울광장 조례개정에 대한 찬반질의서'를 보냈다. 그 결과 51명의 의원만이 답변을 보냈고, 응답자 가운데 조례개정안에 찬성한다고 답한 의원은 8명(민주당 5명, 민주노동당 1명, 한나라당 2명)뿐이었다. 

 

서울시의회 106석 가운데 79석 차지한 민주당, 개정안 통과 자신  

 

하지만 6.2 지방선거가 끝난 후, 상황은 반전됐다. 서울시장은 그대로지만 서울시의회는 '여대야소'에서 '여소야대' 정국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조례개정안 통과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마재광 민주당 서울시당 정책실장은 9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6월 20일에 시작되는 마지막 회기에서 (재심의를) 요청을 해보고, 안 될 경우 다음 달 의회가 개원하면 1차적 검토안건으로 발의해서 진행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 서울시당은 오는 11일 열리는 워크숍에서 당선자들과 함께 조례개정안을 포함한 주요 안건들에 대한 방침을 정리할 예정이다.

 

재선에 성공한 박래학(광진구), 조규영(구로구) 시의원도 지난 의회에 이어 조례개정안에 전력을 쏟을 예정이다. 명동에서 직접 조례개정안을 위한 서명을 받기도 했다는 박래학 시의원은 개정안 통과를 자신했다. 박 의원은 서울광장 개방에 대한 민심이 선거에 일정 부분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시민들 70%가 광장개방에 찬성했는데도 한나라당이 정책적으로 반대해왔고 그런 부분이 선거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조규영 시의원 또한 "개회하면 바로 첫 번째 안건으로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의원은 "시민들이 견제하라고 (민주당을) 뽑아준 것"이라며 "의원들이 많은 학습과 토론을 통해 제대로 된 견제와 감시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 시의회에 입성하게 된 김형식 당선자(강서구) 역시 "광장은 당연히 개방해야 한다"며 "개원하면 1번으로 상정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시민들 "서울광장은 시민의 광장, 조례개정 당연"

 

이재근 팀장 역시 조례개정안 통과를 낙관하고 있다. 이 팀장은 "서울시장이 거부권을 갖고 있지만 의원들의 3분의 2가 다시 의결하면 시행해야 한다"며 "민주당 의원들이 70%가 넘기 때문에 서울시장도 조례안이 통과되면 거부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례안 개정에 대해 시민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9일 서울광장에서 만난  직장인 김아무개씨(28)는 "서울광장은 시민의 광장인데 '하지 말라, 해라' 허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기자에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라고 반문했다.

 

직장인 장지웅(42)씨는 "문화적인 것도 좋지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명박 정부에도 여론을 수렴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씨는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 하지 않고 일방통행식 사고를 한 것이 이번에 표심으로 나타난 것 같다"고 평가했다. 


태그:#서울광장, #광장조례 , #서울시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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