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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 집무실에서 TV·라디오 연설을 통해 6·2 지방선거 이후의 국정운영 방향을 밝히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 집무실에서 TV·라디오 연설을 통해 6·2 지방선거 이후의 국정운영 방향을 밝히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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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14일 라디오 주례연설을 통해 집권 후반기의 국정운영 방향을 밝혔다. 6·2 지방선거 이후 12일 만의 일이다.

선거 패배 이후 이 대통령은 인사 쇄신과 국정운영의 변화를 요구하는 여론에 시달려왔다. 특히 지난주에는 한나라당 초선의원 89명 중 51명이 당·정·청 쇄신을 요구하는 연대서명을 발표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이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정 총리가 대통령 면전에서 인적 쇄신을 요구하는 '거사'를 벌이려고 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청와대와 국회, 지방정부를 완전히 장악한 MB정부의 일방독주 구도가 6·2 선거로 크게 흔들린 만큼 대통령으로서는 새로운 대응 전략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MB "선거는 졌을 때 더 큰 교훈 얻어야"

우선 이 대통령은 당·청 쇄신과 관련해 정부·여당에 "선거는 졌을 때 더 큰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남의 탓을 하기 전에 '내 탓'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청와대와 정부에만 미루는 태도는 온당치 못하다는 것으로, 청와대 참모 교체와 내각 개편을 요구해온 여당 초선들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참모들이 11일자 보수신문을 통해 "한나라당 초선들이 정치를 잘못 배운 것 같다"는 대통령의 발언을 공개했는데, 이 같은 발언이 대통령의 의중을 담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여당이 집권 중반기의 대통령과 정면대결하거나 정치적으로 결별한 전례가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발언으로 여당 초선들의 쇄신 요구가 동력을 급격히 잃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을 조기 개편해야 한다"는 요구에도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 대통령은 "오는 8월 25일이면 제 임기의 반을 지나게 된다"며 "청와대와 내각의 시스템을 더 효율적으로 개편하는 한편, 준비가 되는 대로 새로운 진용을 갖추겠다"고 말했다.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당·정·청의 면모를 일신한 뒤 7·28 재보선을 치르려는 여당 초선들의 계산과 어긋나는 대목이다.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선거에 졌으니 사람을 바꿔야 한다는 논리를 받아들이면 국정 운영의 틀이 크게 허물어진다"며 "65주년을 맞는 광복절(8월 15일)과 임기 반환점(8월 25일) 사이에 자연스럽게 인적 쇄신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도 "8·15 경축사를 즈음해서 정치개혁을 포함한 여러 구상을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은 물론이고, 7·28 재보선 이후에도 '분위기에 쫓기는' 인사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동관, 40대 중반~50대 초반 인사 전면 배치 가능성 시사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이 여당 초선들의 요구를 전면 거부한 것은 아니다. 이 대통령이 "지금이 여당도 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시대를 주도하는 젊고 활력 있는 정당으로 변모할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한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동관 홍보수석은 이에 대해 40대 중반~50대 초반 인사들의 전면 배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수석은 "청와대와 내각의 인사개편과 관련해 젊은 세대 인사를 상당 폭 기용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좀 더 젊은 내각이 필요하지 않냐는 의견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당·정·청을 40~50대의 젊은 리더십으로 개편한 뒤 이들의 경쟁과 협력 속에 차기 대선주자를 키우겠다는 복안도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기 주자들이 부각되면 현직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서면서 국정을 마무리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임기 전반기에 촛불시위와 세종시 수정안, 4대강 사업 등으로 대대적인 비난 여론에 시달렸던 대통령으로서도 정치적인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는 셈이다.

'차기 대권 0순위'로 꼽혀온 박근혜 전 대표도 '대통령이 키우는' 젊은 리더십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새로운 변수와 맞닥뜨리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내 비주류를 고수할 박 전 대표를 대통령과 함께 성과를 내려는 '젊은 주류세력'이 압박하는 구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여권 내에 새로운 갈등이 싹틀 수도 있다.

국정의 양대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세종시 수정안과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각각 '사실상 철회'와 '추진'이라는 상반된 입장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 때문에 국론 분열이 지속되고, 지역적·정치적 균열이 심화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며 "관련 법안들은 이미 지난 3월에 제출되어 있으므로 국회가 이번 회기에 표결 처리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동관 홍보수석은 "이전에는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결정을 한 뒤 국회에서 표결을 추진하는 방식이었지만, 이제는 당론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투표로 할 용의가 있다는 뜻"이라며 "민주당도 이런 대의명분을 더 이상 거부하기는 어렵지 않겠냐"고 말했다.

MB "4대강 살리기는 먼 훗날 아닌 몇 년뒤에 성과 볼 수 있는 국책사업"

이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 처리를 국회에 넘김으로써 수정안 폐기는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 한편으로, 충청권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완패하고 수정안 반대파(야당+친박)가 국회 과반수를 장악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표현으로 계속 추진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환경을 위해 유익한 의견을 반영하고 4대강 수계에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의견도 다시 한 번 수렴하겠지만, 4대강 사업 자체를 포기할 수 없다는 얘기다.

특히 이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는 먼 훗날이 아니라 바로 몇 년 뒤면 그 성과를 볼 수 있는 국책사업"이라고 말했다. 당장은 반대가 심해도 성과가 금방 드러나는 만큼 4대강 사업이 여권의 '정권 재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 담겨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국정운영의) 방식에는 일부 변화가 있을지 몰라도 방향은 바뀌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태그:#이명박, #라디오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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