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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수원화성
▲ 수원화성 수원화성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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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내가 걸어본 성(城)이 있다면 바닷가를 옆에 끼고 제주본토를 지키는 환해장성이었다. 제주의 환해장성은 구멍숭숭 뚫린 현무암을 켜켜이 쌓은 굽이굽이 돌아가는 돌담길이었다. 다시 복원되면서 너무 인위적인 성이 되었지만 말이다.

경기도 수원은 처음 방문하는 도시였다. 수원화성은 한번쯤 걷고 싶었던 성이었다. 조선 22대 정조의 효가 서린 곳이었기 때문일까.

수원화성 수원화성
▲ 수원화성 수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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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조시대 제2의 수도를 꿈꿀 만치 관심을 두었던 수원. 수원 시내에 들어가자 학생들을 태운 대형버스가 서행했다. 드디어 팔달산이 보이고 팔달산 기슭을 시점으로 쌓아올린 성곽이 눈에 띄었다.

성곽 성곽
▲ 성곽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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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수원화성 밟기
▲ 수원화성 수원화성 밟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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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둘레만 해도 무려 5744m, 면적 130ha 수원성은 예사로운 성은 아니었다. 동쪽 지형은 평지를 이루었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였다. 문루, 수문, 공심돈, 장대, 노대, 포 등 여러 가지 시설물을 차근차근 보고 걷노라면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은 40여 분, 잽싸게 걸을 수밖에.

수원화성 동북공심돈 망루에서 본 수원화성
▲ 수원화성 동북공심돈 망루에서 본 수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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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햇살이 수원화성의 잔디에 반짝였다. 파란 잔디와 어우러진 성곽, 그리고 수문과 문루는 성을 걷는 사람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주었다. 동양 성곽의 최대 백미라 일컫는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더욱이 수원화성은 창덕궁, 석굴암, 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인돌 유적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주목받는 곳이기도 하다.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효심이 서린 축성의 근본, 당시 당파정치와 왕도정치의 국방 요새, 수원화성은 그 의미 또한 분분하다.

수원화성 소라 같은 모양의 동북공심돈
▲ 수원화성 소라 같은 모양의 동북공심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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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심돈 동북공심돈 망루
▲ 동북공심돈 동북공심돈 망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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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동북공심돈은 비상시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로 소라처럼 생겼다. 벽돌로 쌓아서 둥그렇게 만들었는데,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겹으로 둘러 쌓았기 때문이다. 군사들의 몸을 숨길 수 있게 하여 바깥쪽으로 총안을 뚫어서 밝은 빛을 끌어들이는 구실을 겸하게 하였다. 아래 층 공심에서 벽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니 확 트인 전망대가 나온다.

동북공심돈 망루에 올라서니 팔달산 기슭 아래 성곽과 그 주변의 고층 아파트, 도로 등이 얽혀 수원화성이 주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수원천이 흐르고 있어 해자를 연상케 했다.

수원화성 수원화성
▲ 수원화성 수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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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별장 같은 화성행궁을 살펴보지 못함이 못내 아쉬웠다. 정해진 40여 분의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더욱이 문루와 수문, 공심돈, 포루, 각루, 치성 등 41개의 시설물을 모두 돌아보지 못함이 안타까웠다.

여느 성처럼 축성의 동기가 군사적 목적보다 정치·경제적, 특히 성곽 자체가 '효'사상의 철학을 담고 있어서인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온화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수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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