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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미추의 <리어왕>
극단 미추의 <리어왕> ⓒ 명동예술극장

명동예술극장에서는 지난 12일 토요일부터 오는 주말인 20일까지(17일 목요일 제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인 <리어왕>을 이병훈 연출로 극단 미추에 의해 공연중이다.

2008년 대한민국 연극대상을 수상한 바 있고 오는 7월, 일본 베세토연극제(도쿄신국립극장)에 초대된 이 작품은 세월이 지나도 결코 변하지 않는 고전의 향기를 단순하고 깔끔한 무대, 노련한 배우들의 숙성된 연기에 가야금과 대금 등 우리 국악기 반주를 잘 조화시켜 전달하고 있다.

연극 <리어왕>은 섣부른 후계구도 설정이 얼마나 큰 비극을 낳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나이가 들어 이제 국사에서 물러나 좀 편안하게 남은 여생을 즐겨볼까 하는 리어왕은 자신의 세 딸에게 영토를 물려주고 그들에게 신세를 지며 살고자 결심한다.

그의 영악한 맏딸 거너릴과 둘째딸 리건은 온갖 아부로 리어왕의 환심을 사면서 각기 영토를 물려받지만 진실한 셋째딸 코딜리어는 오히려 자신의 아비에게 아부를 하지 않은 대가로 상속은커녕 국외로 추방 당하고 만다.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상속한 리어왕은 큰 딸과 둘째 딸의 성에서 자신의 기사 100명과 함께 한달씩 머물기로 하였지만 이미 물려받을 것을 다 물려받은 두 딸들은 더 이상은 미련이 없으므로 아버지인 리어왕을 박대하며 온갖 수모를 다 겪게 한다.

결국 딸들의 집에서 머물 수 없게 된 리어왕은 오로지 자신을 따르는 궁정 광대 한 명만 데리고 폭풍우 휘몰아치는 벌판으로 쫓겨나게 된다.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 상황, 절망과 비탄에 빠진 리어왕은 비바람 속에 울부 짖는다.

한편 국외로 추방되었으나 프랑스왕의 왕비가 된 막내딸 코딜리어는 아비의 불행한 소식을 듣고 프랑스군을 이끌고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진군해 오지만 결국 리어왕과 함께 붙잡혀 포로가 되고 목숨을 잃게 된다. 코딜리어를 안고 더 큰 슬픔에 빠진 리어왕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글로스터와 에드거 둘째 아들 에드먼드의 배신으로 인해 두 눈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글로스터 백작, 역시 쫓겨나 거리를 헤매던 에드거는 자신이 아들임을 숨긴채로 자식의 도리를 다하고자 한다.
글로스터와 에드거둘째 아들 에드먼드의 배신으로 인해 두 눈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글로스터 백작, 역시 쫓겨나 거리를 헤매던 에드거는 자신이 아들임을 숨긴채로 자식의 도리를 다하고자 한다. ⓒ 명동예술극장
이 이야기 속에는 곁들여 또 하나의 다른 이야기가 함께 전개되는데 그것은 리어왕의 신하인 글로스터 백작과 그의 두 아들 에드먼드, 에드거에 관한 내용이다. 서자인 에드먼드는 그의 형이자 적자인 에드거를 모함해 내쫓고, 심지어 자신의 아비까지 배반하여 두눈을 잃고 거리를 헤메게 만든다. 쫓겨난 에드거는 복수를 다짐, 끝내 에드먼드를 찾아가 복수하지만 남는 것은 결국 슬픔과 회한뿐.

세익스피어의 고전 <리어왕>은 이미 물러난 권력이 현재의 권력에게 얼마나 비참한 꼴을 당할 수 있는지, 그래서 섣불리 자신의 권력을 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이미 내려놓은 권력은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권력의 속성들에 대해 아주 극명하게 꽤뚫어 볼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해 주는 작품이다.

이번 극단 미추의 작품에서는 리어왕에 정태화, 글로스터 백작에 김현웅, 켄트에 조정근, 거너릴과 리건에 서이숙과 황연희, 에드거에 조원종 등 탄탄한 실력을 갖춘 극단 미추의 배우들에 의해 완성도 높은 앙상블로 원작의 감동을 비교적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특히 나무로 된 발(커튼)과 한지를 이용한 병풍, 나무 상자 하나 정도가 전부일 정도로 매우 단순화되고 간결미를 살린 깔끔한 무대는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력에 여지를 제공해 주고 배우들의 연기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줘 드라마가 살 수 있는 무대로서의 기능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다.

만일 이번에 리어왕을 처음 보는 관객이 아니라면 특히 글로스터 백작의 서자로, 적자인 형 에드거를 내쫓고 아버지까지 배신한 후 거너릴과 리건 양쪽으로부터 사랑을 차지하는 악한 동생 에드먼드에 대해서 좀 더 주의깊게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리어왕의 두 딸인 거너릴과 리건이 단지 권력의 단맛에 취해 천륜을 져버린 악역인데 반해 서자로 태어나 만일 그대로 있으면 어차피 모든 재산은 적자인 형 에드거에게 돌아갈 것이 빤한 상태에서 비록 나쁜 수단을 써서라도 적극적으로 '인생의 수레바퀴'를 돌려놓고자 하는 그 처절한 노력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한 악역을 보여준다.

비록 죄는 밉지만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이 이 경우에 떠오른다. 모략과 배신의 온갖 악행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고자 했지만 그의 말로는 결국 인과응보로 끝을 맺고 만다. 온몸으로 돌려놓은 수레바퀴가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다.

주어진 처지에 순응해 살기 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자 적극 노력한 에드먼드, 리어왕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 군상 중 에드먼드는 이런 점에서 가장 현대적인 인물로 꼽을 수 있다.


#연극 리어왕#세익스피어 4대 비극#명동예술극장#베세토 연극제#극단 미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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