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지방선거에서 서울시 교육감으로 당선된 이른바 '진보교육감' 곽노현 당선자의 둘째 아이가 알고 보니 특목고인 '외고'에 다니더라는 이야기가 조중동에서 시작되어 온라인 공간으로 넓게 확산되었습니다.
"말도 안 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는 비판에서부터 "이해할 수 있다", "솔직하게 밝혔어야 한다"는 동정론 그리고 "자식은 자식이고 정책은 정책이다"라는 포용론까지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곽노현 당선자의 아들이 외고에 다니는 것은 문제 있다"는 주장을 오마이블로그 쓴 글이 오마이뉴스 첫 화면에도 올라왔더군요.
"잘못된 사회 구조, 교육 구조를 고치겠다는 사람들이 그런 구조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초반에 높이 떠받들어지다가도 쉽게 '위선자'로 낙인찍힌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사회는 진보주의자들에게 점점 더 냉소적이 된다."
진짜 진보, 자식 공부시키는 것 보면 알 수 있다
최근 읽은 책 김규항, 지승호 인터뷰집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를 보면, '진짜 진보 구별법'이 있습니다. 자칭 'B급 좌파' 김규항은 스스로 진보입네 하는 사람들도 '자식 교육 문제' 앞에서는 진보성을 견지하지 못하더라고 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시장주의 교육을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쓴 사람조차도 자기자식의 시장 경쟁력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는 거죠."
그는, 이미 한겨레 칼럼에서 이런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혀 스스로 진보 혹은 개혁진영에 몸담고 깨어있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의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였습니다.
아울러 그는 노동운동을 하는 부모들에게도 '불편한 진실'을 털어놓았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노동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자녀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하여 내 자식을 더 공부시켜 여기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부모의 바람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지요. 부모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아이들 대부분은 훗날 노동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부모의 삶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도 않고 경쟁에 길들여져 이기적이며 연대의식도 없는 노동자가 된다는 겁니다.
경쟁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 한국사회는 이제 경쟁조차 사라졌다고 평가합니다. 경쟁은 유리하고 불리한 차이가 있지만 가난한 사람도 이길 가능성이 있을 때 '경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제 한국사회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는 경쟁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일류대 신입생들은 강남과 부잣집 아이들로 채워져 있어요. 대학입시가 아니라 특목고에서 아니 국제중학교에서 이미 다 판가름 나는 상태라는 겁니다. 이건 경쟁이 아닙니다. 5퍼센트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삶을 영속하는 신분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한국사회, 이젠 경쟁조차 사라졌다
겉으로 보기에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경쟁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아무리 아이들을 경쟁 속으로 밀어넣어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노동자로 살아가게 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자식이 노동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노동자로 사는 삶을 불행으로 받아들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그는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노동자가 자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세상이 바뀐다는 건 노동자가 자본가가 되는 게 아니라 가치관이 바뀌는 거죠. 자본가의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을 노동자의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꾸는 겁니다. 자본가의 가치관은 남보다 많이 갖고 싶어 하고 남들과 격차가 벌어질수록 행복해지는 가치관입니다."
김규항은 노동자의 가치관은 달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남을 억누르고 빼앗고 호의호식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하며, 물질적 욕구만을 추구하는 것을 불편해하고 남들과 격차가 벌어지면 뒤처진 사람들과 함께 가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노동자 아버지, 노동자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세상 되어야...
이 책에서 김규항은 노동자의 가치관을 이야기하면서 영국 노동당 당수의 아버지가 기자들 앞에서 부르주아를 흉내내는 자신의 아들을 대놓고 비판하였던 일화를 소개합니다.
"그 녀석은 노동자의 품위를 저버린 놈이다. 왜 부르주아들처럼 천박하게 비싼 식사를 하고 비싼 호텔에서 묵는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노동자가 자본가와 똑같이 '부'와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는 한 희망이 없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생존권투쟁, 경제투쟁이 노동운동의 전부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희망이 없다고 합니다.
노동해방은 권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가치'가 실현되는 세상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과거 프로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하였던 사회주의자들은 권력만 바꾸었을 뿐 '가치'를 바꾸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국 더 부자가 되기 위해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쉽게 이해하게 됩니다.
노동해방, 권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바꾸어야
진보주의 운동 좌파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가치'를 바꾸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내 밖의 적과 싸우는 일을 '혁명'이라 하고 내 안의 적과 싸우는 것은 '영성'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루에 30분도 기도하지(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는 혁명가가 만들 세상은 위험하며, 혁명을 도외시하는 영성가가 얻을 수 있는 건 제 심리적 평온뿐이다."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좌파와 기도, 좌파와 예수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김규항은 예수에서 출발하여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기도와 영성이 부족한 혁명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회변혁에 조응하는 나의 변혁이라는 관점에서 영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에 대한 그의 해석을 듣다보니, <예수전>이라는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문을 하였습니다. 그는 말끝마나 '이스라엘 백성'을 주워섬기는 개신교의 예수 해석을 뒤집어 놓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은 전체 이스라엘 따위엔 관심이 없었어요. 예수는 매우 편향된 사람입니다. 오로지 지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입장만 생각했죠. 그들이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이라 선포했구요… 체제를 따질 것 없이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내가 부자라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는 겁니다."
아울러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이 뜻이 잘못 알려져 있다는 것도 지적합니다. 마르크스가 말한 아편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마약이 아니라 '고통을 경감하고 위로하는 약'을 뜻한다는 겁니다.
영성과 혁명이 조화를 이루는 삶
이 밖에도, 이 책에는 김규항의 사유와 실천을 엿볼 수 있도록 하는 이야기들이 너무 진지하거나 무겁지 않게 담겨있습니다. 개혁과 진보를 구분하는 법, 오늘날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는 기준, 내 안의 이명박을 찾는 성찰에 관한 이야기들 그리고 김규항에 의해 촉발되었던 페미니즘 논쟁과 소소한 살아가는 이야기까지.
의미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지승호의 인터뷰도 돋보입니다. 그의 인터뷰집이 나올 때마다 손에 잡을 수밖에 없도록 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오랫동안 마음에 울림을 주는 내용은 역시 자녀 교육에 대한 태도로 자신을 성찰해보라는 다음 메시지들이었습니다.
"보수 부모는 당당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에 밀어 넣고, 진보 부모는 불편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에 밀어 넣습니다."
"우파 부모는 아이가 일류대 생이 되길 소망하고, 좌파 부모는 아이가 좌파적인 일류대 생이 되길 소망한다."
"부모들은 아이가 운동에 재능이 없다는 건 인정하면서 공부에 재능이 없다는 건 쉽게 인정 못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 그렇다고. 한국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죠."
요즘 라디오 공익광고에 부모와 학부모를 비교하는 공익광고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이 되고 있습니다.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 합니다"라는 광고인데, 부모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참된 교육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좌파 부모와 우파 부모의 자녀 교육
김규항은 7년째 어린이진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나라를 "아동 인권 개념이 없는 후진국이며, 아이들에게는 지옥과 다름없는 사회"라고 합니다. 제발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보지 말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그는 독자들에게 진보, 좌파들에게 엘리트의 새로운 개념을 제안합니다. 다음 세대인 아이들을 이런 엘리트로 만들어야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곤란한 일도 지혜롭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현명한 사람,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 복잡하고 간교한 자본의 체제를 휜히 들여다보는 맑은 눈을 가진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소신과 신념을 '그래도 현실이...' 따위의 말로 회피하지 않는 강건한 사람, 그런 사람이죠."
<예수전>을 쓴 '예수쟁이'(?), B급 좌파 김규항은 현실은 낙관적이지 않지만, 진보에 대한 고민과 열망을 내려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강조합니다. "씨를 뿌린 사람도 못 알아차리는 사이에 어느새 싹이 돋고 이삭이 패고 마침내 알찬 낱알이 맺힌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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