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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거리의 초록이 짙어지고 바람에 어느덧 물기가 들어갔다 싶어지는 오뉴월 저녁. 요맘때 즈음이면 꼭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 '제주도 푸른밤'

들국화 멤버이기도 했던 최성원 작사·작곡의 '제주도 푸른밤'. 88올림픽이 열리던 해 태어난 이 로맨틱한 노래는 그간 수없이 리메이크 되어 이제는 국민가요처럼 되어버렸다. 이 노래가 이만치 사랑을 받은 것은 '떠남'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언제나, 늘'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사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왁자지껄한 무엇인가 시시때때로 우리의 눈과 귀를 괴롭히고 육신을 피로하게 만들 때는 더더욱.

곡의 최대 매력은 '제주도'를 노래했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국내임에도 왠지 이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여행지의 대명사 아니던가. 그런데 이처럼 낭만적이고 목가적일 것만 같은 제주도에서 여행이나 휴식 등의 일상탈출이 아닌 실제 '삶' 자체를 당연한 듯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드라마계의 거목, 김수현 작가가 집필하는 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이야기다.

김수현 작가가 쓴 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속에는 낭만적이고 목가적일 것만 같은 제주도에서 여행이나 휴식 등의 일상탈출이 아닌 실제 ‘삶’ 자체를 당연한 듯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 SBS 주말 특별기획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김수현 작가가 쓴 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속에는 낭만적이고 목가적일 것만 같은 제주도에서 여행이나 휴식 등의 일상탈출이 아닌 실제 ‘삶’ 자체를 당연한 듯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 SBS콘텐츠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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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

제주도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양병태(김영철)와 요리연구가 김민재(김해숙) 부부를 중심으로 시부모와 병태의 형제들, 부부의 자식 4남매와 딸린 식구들, 그리고 이런저런 연유로 얽힌 사람들까지…. '김수현표 드라마'임을 증명하듯 대가족이 극의 중심에 자리한 이 드라마에는 특정한 주연이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모두가 주인공이 된다.

평범한 가족드라마를 표방하는 극은,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설정이라든가 인물 개개인의 면모가 상당히 흥미롭다. 극의 축을 이루는 다정한 부부, 병태와 민재는 알고 보면 재혼부부다. 그로 인해 각자의 자식 한 명씩과 둘의 자식을 합쳐 4남매가 섞여 사는 셈이다.

맏딸 양지혜(우희진)는 이른바 민재가 '데려온 아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다른 자식이라는 설정은 이 드라마의 주제가 아닐 뿐더러 그로 인해 신파로 가는 빤한 스토리는 더더욱 아니다. 누구보다 자존심 세고 똑부러지는 지혜는 제 마음 한 구석의 여린 부분을 가족 앞에 드러내며 더욱 견고한 가족의 구성원이 된다. 그리고 물론 그것을 도와주는 것은 부모와 다른 형제들, 그리고 지혜 자신이 형성한 제 가족-남편 이수일(이민우)과 딸 지나(정다빈)의 사랑이다.

지혜를 예로 들긴 했지만 이처럼 인물 각자에게는 모두 사연이, 또 사랑이 있다. 가령 식구가 아닌 민재의 조수 부연주(남상미)마저도 민재의 가족구성원 못지않게 나름의 사연을 안고 있다. 연주는 사고로 부모를 잃고 병든 할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게다가 사랑한다고 믿었던 이에게도 배신당한 좀 서글픈 캐릭터다. 때문에 상처받은 속과 달리 겉모습이 싸늘해진 연주를 구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호섭(이상윤)이다. 연주의 직장은 그녀의 스승인 민재의 집이기도 해 그의 둘째아들 호섭은 필연적으로 연주를 자주 접하며 자신도 모르게 연정을 키우게 된다. 그러면서 밉지 않게 그녀에게 다가가고 상처를 보듬어주게 되는 것이다.

모든 걸 녹여주는 건 사랑이다. 또 그 흔한 사랑이냐 혹자는 타박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얘기해도 그 가치가 퇴색되지 않기에 질리지도 않고 줄기차게 얘기되는 게 아닐까. 또 그런 질리지도 않는 사랑 때문에 인생이 아름다운 거 아니냐고 드라마는 되묻는 게 아닐까.

인물 각자에게는 모두 사연이, 또 사랑이 있다. 또 그 흔한 사랑이냐 혹자는 타박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얘기해도 그 가치가 퇴색되지 않기에 질리지도 않고 줄기차게 얘기되는 게 아닐까.
▲ SBS 주말 특별기획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인물 각자에게는 모두 사연이, 또 사랑이 있다. 또 그 흔한 사랑이냐 혹자는 타박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얘기해도 그 가치가 퇴색되지 않기에 질리지도 않고 줄기차게 얘기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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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바람, 바람, 바람

극의 배경이 제주도인 만큼 무엇보다 그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제주도 하면 돌, 여자 그리고 바람 아니던가. 이 드라마, 유독 노래가 많이 연상되는 것 같다. 바람, 바람, 바람.

사전상에도 나와 있듯이 바람은 다의어다. 물리적인 바람(風), 생의 계절이 바뀔 때쯤 잠시 굴레에서 벗어나고파 일탈을 꿈꿀 때의 바람(脫), 그리고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소망하는 동사적 성격의 바람(願). 이러한 바람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예가 바로 장남 태섭(송창의)와 그의 연인인 사진작가 경수(이상우)의 관계다.

태섭과 사진작가 경수가 나누는 사랑은 일반론적 관점에서 볼 때에 이상한 동성애다. 특히 경수의 집에서는 아들의 성 정체성과 그가 행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사랑을 그저 일순간인 '바람'으로 치부하고 싶어 하고, 태섭과 경수는 서로의 사랑이 현실에서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병태 부부는 저들 장남의 남다른 정체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준다. 그들 각자가 '데려온' 큰딸과 '전실자식' 큰아들을 서로가 친자식처럼 품어주었듯이, 또 사연 많은 '남' 연주를 민재와 호섭이 연민과 애정으로 감싸주듯이 말이다. 그리고 부부는 태섭의 연인 경수마저도 따뜻하게 품어줄 준비를 한다. 이는 민재를 향해 던진 병태의 대사를 통해서도 증명된다. "아들하나 더 생기는 거지, 뭐."

호섭의 조부모는 또 어떤가. 젊은 시절 조강지처(김용림)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바람처럼 떠나버린 민재의 시아버지(최정훈)는 늙고 병들어 쫓겨나듯 원래의 제자리로 돌아온다. 바람이 불었다 그치길 3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덕분에 속이 곪을 대로 곪은 늙은 처는 그러나 결국 정(情)이라는 사랑의 다른 이름으로 인해 다 늙어 돌아온 남편을 받아들일 것이다.

태섭과 사진작가 경수가 나누는 사랑은 일반론적 관점에서 볼 때에 이상한 동성애다. 그러나 병태 부부는 저들 장남의 남다른 정체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준다. 그리고 그의 연인 경수까지도. 이는 민재를 향해 던진 병태의 대사를 통해서도 증명된다. “아들하나 더 생기는 거지, 뭐.”
▲ SBS 주말 특별기획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태섭과 사진작가 경수가 나누는 사랑은 일반론적 관점에서 볼 때에 이상한 동성애다. 그러나 병태 부부는 저들 장남의 남다른 정체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준다. 그리고 그의 연인 경수까지도. 이는 민재를 향해 던진 병태의 대사를 통해서도 증명된다. “아들하나 더 생기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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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 인생은 아름답나

제주도 바람이 너무 센 탓인지, 매회 누군가 넘어지는 신으로 엔딩이 장식되는 '인생은 아름다워'. 이는 바로 몇 초 후의 장애물에도 불가항력인 우리네 규정지을 수 없는 인생을 은유한다. 그럼에도 다음 회면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다시금 삶을 진행시키는 사람들은 묘하게 정이가 사랑스럽다.

그런데, 잠깐. 매주 주말 제주도 병태네 가족과 그 주변인물들 삶을 들여다보는 그대들 인생은 아름답나. 감히 그래 내 인생은 아름답소, 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천진하게 스스로의 삶을 규정할 수 있을까. 매일 여기서 빵 저기서 빵 터지는 이런저런 사건사고 앞에서 한낱 피조물인 우리는 그저 우리네 인생은 아름답다고, 혹은 앞으로 아름다울 것이라고 조심스레 기대해보는 것일 테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양가네 사람들을 통해,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넌지시 이야기 한다. 드라마처럼 누구에게나 바람이 분다고. 같은 성씨, 같은 핏줄이어도 뜯어보면 하나하나 생김새가 다른, 그러나 그것이 조화로운 양가네 사람들 삶의 터전인 제주도에서도 말이다. 무지갯빛 색색의 바람이 분다, '푸르메'가 살고 있는 그곳에는 늘. 그리고 우리에게도.


태그:#인생은 아름다워, #제주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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