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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엔 무엇을 먹을까. '점심'에 대한 생각의 여행을 떠난다. 나는 어제 먹은 갈비탕 한 그릇에서 출발한다. 갈비탕은 커다란 갈비 한짝이 잘 우러난 뿌연 육수에 담겨있었고 그 위로 계란지단이 넓적하고 길쭉한 맵시를 노랗게 자랑했으며 크게 썬 대파 몇 덩어리가 둥둥 떠서 향을 더했다.

 

국물을 맛보니 약간의 후추와 간장으로 간이 되고 통마늘의 단맛, 참기름 약간의 고소함 그리고 짭짜름함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소금간이 더 되어 있는듯하다. 개인적으로 좀 싱거운 듯 먹는 것이 좋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옆에 준비되어 나온 공기밥은 쌀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7분 도미 이상의 쌀로 지어졌다. 우선 갈비짝을 들어내어 뼈와 분리시켜서 적당한 크기로 가위질을 했다. 먹기 좋게 썰어진 고깃덩이가 둥둥 떠 있는 국물은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갔다.

 

밥을 말아 먹으면서 생각해본다. 음식점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기껏 갈비탕의 주 재료인 갈비가 호주산이라는 것뿐이다. 밥이 어느 지방에서 언제, 어디에서 도정된 쌀인지 알 수는 없다. 혹시 미국에서 수입된 칼로스쌀로 지은 밥을 맛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갈비탕을 먹는 곳은 전남 영광읍내의 한 음식점이었다. 적당히 불려서 밥을 지어 놓으면 홍성에서 지은 유기농 쌀인지(비싸기 때문에 식당에서 쓸 가능성은 적다) 경기도 이천쌀인지 제주도에서 바다를 건너온 쌀인지 알 수 없다.

 

밥은 그렇다 쳐도 갈비탕에 갈비만 들어가는 것은 아닐 터. 한 그릇의 갈비탕이 탄생하기 위해 들어가는 수많은 밑재료들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가. 알려고 하면 할수록 머리만 복잡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눈감는다. 어떤 재료가 어떻게 쓰였든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집에서 해먹는 요리의 경우 장을 보면서 생산지를 확인할 수 있지만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재배되는 것인지는 알기 힘들다. 기껏 유기농, 무농약 등의 등급을 나누기도 하지만 그건 마치 가격차를 두기 위한 말장난 같이 느껴질 뿐이다.

 

나는 갈비탕을 먹기 전에 물었다.

 

"돼지인가요. 소인가요?"

 

내 물음에 종업원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갈비탕 하나 물냉면 하나요 하며 주문을 확인하고는 종종걸음으로 주방을 향해 돌아서버렸다. 처음 먹어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갈비탕이 소갈비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다. 나는 정말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 터무니없는 질문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며칠 전 소비자고발프로그램에서 미국산 소를 국내산으로 속여서 팔아온 수많은 음식점들의 행태를 시청하고 나서 생긴 편집증의 일종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아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돼지갈비로 갈비탕도 하냐"면서 아들에게 물 컵을 건넨 뒤 나를 배재한 대화를 시작해버렸다. 호주산. 호주산이라고 하면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까.

 

육식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 채식주의자가 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대량으로 사육되는 소, 닭, 돼지들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는 나로서는 그들의 짧고 불행한 삶과 죽음의 과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다큐, 영화를 통해 시청한적이 분명이 있긴 했다) 충분히 입맛이 떨어졌다.

 

상상해본다. 마당 한쪽에서 닭장을 만들어 대여섯 마리의 닭을 키워 달걀을 얻고 송아지도 한 마리 돼지도 몇 마리 직접 기르는 것이다. 새끼를 낳으면 부모들은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내가, 우리가 먹을 고기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웩.

 

개를 기르고 나서는 개고기도 먹기 힘들다. 소를 기르면 쇠고기, 돼지를 기르면 돼지고기를 먹지 못할 것이다. 닭을 기르면 어디서 어떻게 기르고 잡혀진 채 튀김옷과 양념을 듬뿍 쳐 바르고 종이박스에 곱게 싸여 온 '치킨'을 먹지 못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점심에 먹은 갈비탕의 고기는 호주에서 왔다고 한다. 땅이 넓어서 너른 들에 풀어져서 맘껏 풀을 뜯고 운동을 위해 언덕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늘어지게 풀 위에서 낮잠을 즐기기도 한다. 그렇게 일년 넘게 살다가 도살장으로 향한다.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한 마리가 겨우 통과할 만한 통로로 이동하다가  벼락을 맞는다. 총처럼 생긴 해머를 정수리에 맞고 뻗으면 다리를 쇠사슬에 건다. 쇠사슬에 들어올려져 고개가 아래로 늘어지면 목 부위를 그어서 피를 뺀다.

 

기절한 채로 피가 다 빠지면 부위별로 잘려서 선별한다. 아참, 그 전에 내장을 빼내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칼질은 섬세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잘못해서 소화기의 내장을 건드리는 경우엔 냄새가 심한 액체를 뒤집어쓰게 되어 고기를 못 쓰게 되어 버리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푸른 들이 아닌 똥들로 뒤덮인 집약적 농장에서 자란 소일 가능성이 더 크다. 효율을 최우선시 하는 자본주의의 축산업은 더 빠르고 많은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소가 먹지 못하는 뼈, 옥수수, 고기 등을 섞어서 사료로 먹이는 것을 권장한다. 그 덕택에 병이 나고 주저앉는 소들이 생겨났지만 이를 '약간의 부작용'으로 생각하는 현재의 생산자, 소비자들이 근본적으로 변심하지 않는 한 이러한 '부작용'은 점점 커질 것이 확실시된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동물, 식물을 가리지 않고 먹는다는 데에서 생겨난다. 전통적으로 축적해왔던 먹거리에 대한 지식은 최근 급속하게 변하는 음식문화에 대항할 힘을 잃은 듯하다. "지혜는 혼란과 불안으로 뒤바뀐 지점에 이르렀다." 기본적인 일인 무엇을 먹을 것인가도 이제 전문가의 도움이 아니면 해내지 못하는 지경이다. 내가 먹는 음식들의 출처와 생육방식에 대해 알 수 없고 알기위해선 전문가나 관련 업계의 고위직을 알아야만 가능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패스트(Fast)푸드의 기만적인 문화에 맞서는 슬로(Slow)푸드 운동이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는 때이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지금 음식업을 장악한 산업적 음식과 유행하는 산업적 유기농을 넘어선 초유기농에 대한 경험, 원시시대의 대명사인 수렵과 채집문화에 대한 체험을 기술하고 있다. 그가 떠난 여행에 마음을 싣고 내가 먹는 음식에 대해 진지하고도 집요한 생각과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 이 책이 주는 최고의 장점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 지음·조윤정 옮김/ 다른세상/ 25,000\


잡식동물 분투기 - 리얼 푸드를 찾아서

마이클 폴란 지음, 조윤정 옮김, 다른세상(2010)


태그:#잡식동물의딜레마, #마이클폴란, #세컨네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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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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