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2002년 월드컵 스페인전이 열리고 있을 때, 난 마을 놀이터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 앞에서 신들린 듯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스페인전에서 양 팀은 전, 후반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끝내 승부를 내지 못해 '승부차기'를 했다.  

마지막 키커(kicker) 홍명보 선수가 스페인 골망을 흔들었다. 리베로(수비수이면서 공격에도 적극 가담하는 선수) 홍명보 선수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모습이 클로즈업 될 때는 마치 내가 홍명보가 된 듯한 착각을 느꼈다. 

이때부터다. 이때부터 난 축구 마니아가 됐다. 월드컵 이전부터 '조기 축구회'란 곳에 발을 들여 놓기는 했지만 '마니아'는 아니었다. 갓 서른을 넘겼을 뿐인데 뱃살은 주책없이 자꾸 흘러내리고 운동을 하긴 해야 하는데 마땅한 것이 없었다. 결국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축구'였다. 

축구, 잘 하고 싶었지만...응원 인생이었을 뿐

 축구
축구 ⓒ 이민선

왜 하필 축구를 선택했는지 궁금한 분이 있을 터. 결론부터 말하자면 '축구' 에 대한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축구를 잘 하고 싶은 욕망은 간절했지만 난 한 번도 축구를 잘 한다는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절친(아주 친한 친구) 두 명은 축구부원이 됐지만 난 될 수 없었다. 달음박질 실력도 시원치 않았고 부모님도 내가 운동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절친 두 명은 나와 함께 우리 동네 삼총사로 불리던 녀석들이다.

그 이후 인생은 '응원인생'이었다. 축구 시합이 열릴 때마다 난 늘 응원만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군대까지. 그래서 서른이 넘어서 선택한 운동이 '축구'다. 오랜 축구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면 훨씬 멋진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 기대하며 2002년 월드컵이 열리기 약 1년 전 운동장으로 향했다. 

숨이 턱턱 막히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번개처럼 뛰어가서 공을 낚아채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도무지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목구멍이 쩍쩍 붙어서 헛구역질이 나오고 하늘이 노래졌다. 결국 난 운동장에서 도망치다 시피 뛰쳐나와 벤치에 누워 버렸다. 조기 축구 첫날, 축구 경기를 시작한지 고작 10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그 후로 2002년 월드컵이 열린 1년 동안은 치열한 나와의 싸움이었다. 축구는 힘든 운동 이었다. 엄청난 체력과 기술이 필요했고 단 시간에 길러지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운동장에 나갈 때마다 한심한 체력과 기술에 실망에 실망을 거듭했다. 그래서 조기 축구 하는 게 그리 즐겁지 만은 않았다. 중간에 그만두면 패배자가 될 것 같아서 기를 쓰고 운동장에 갔을 뿐이다.

끊임없이 맨땅에 헤딩...축구 재밌네!

 축구, 호연이
축구, 호연이 ⓒ 이민선
하지만 끊임없이 맨땅에 헤딩하다보니 소득은 있었다. 축구가 재미있어졌다. 축구라는 게 뭔지 잘 몰랐을 때는 축구경기 관람도 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에 드라마와 축구경기가 동시에 나오면 드라마를 보는 '아줌마 같은' 남자였다. 심지어 월드컵 할 때 모든 방송사에서 축구 경기만 방영하는 것을 '성토'할 정도로 축구 경기 보는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은 달랐다. 열렬한 시청자가 돼 있었다. 당시 축구 열기로 뜨거웠던 사회적 분위기 탓도 있었지만 축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운동경기는 자기가 실제로 해 본 경기를 볼 때 재미가 있다.

홍명보 선수가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리고 운동장을 뛰어 갈 때 당장 축구를 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실제 축구공이 앞에 있었다면 힘껏 차고 달렸을 것이다. 그때부터 일요일 아침이 일주일 내내 기다려졌다.

조기 축구하기 전날 밤에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 운동장 펼쳐졌다. 2002년 월드컵 득점왕 호나우드 선수가 펼치던 화려한 기술이 그대로 내 머릿속에서 재현 됐다. 당구에 한참 빠져 있을 때 머릿속에서 당구대가 뱅뱅 도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자칭 축구 마니아지만 지금도 난 축구를 그리 잘 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내 체력과 기술이 한심 하다고 느끼며 가끔 실망한다. 특히, 시합에 나가서 형편없이 깨지고 온 날은 더욱 더. 축구라는 운동이 그만큼 힘들고 내가 운동에 큰 소질이 없는 탓이다.

하지만 축구 때문에 변한 것은 너무나 많다. 생각해 보니 축구를 하기 전보다 훨씬 더 멋진 인생이다. 축구 덕분에 담배를 수월하게 끊었다. 축구를 시작 하면서 동시에 금연을 시작했다. 금연을 결심한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 중에 한 가지가 축구를 더 잘하고 싶어서다. 담배를 끊은 일은 지금 생각해도 참 멋진 일이다.

몇 년 전부터 아내도 축구를 시작했고 6살배기 아들 녀석도 '축구교실'에 취미를 붙였다. '명실공히' 우리 가족은 '축구가족'이 된 것이다. 덕분에 온 가족이 잔병치레가 없으니 이 또한 멋진 일이다.

홍명보 선수의 환한 웃음을 보고 축구 마니아가 된 후, 8년이 흘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월드컵이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경기 하는 날은 아침부터 기대감으로 가슴이 콩닥 거린다. 우리나라 선수 아니더라도 멋진 플레이를 하는 선수나, 심장이 터질듯이 열심히 뛰는 선수를 보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러면서 일요일이 기다려진다. 심장이 터질듯이 뛸 수 있는 일요일이.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축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