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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서치라이트가 해안 언덕 아래를 비춘다. 그러나, 서치 라이트는 먼 바다 적들의 동태를 살피지 않고 언덕 바로 아래 바위 틈만 뒤지고 있다. 그리고 서치 라이트는 언덕 아래에서 백사장까지 오솔길을 따라 비춘다.

 

서치병은 그 환한 불빛 속에서 미역을 이고 가는 작은 몸집의 소녀를 본다. 서치라이트는 그때 오로지 그 키 작은 사춘기 소녀만을 위해 존재 했었다.

 

옥희! 금진 어촌에서 제일 이뻤던 소녀! 병사는 근무수칙도 어겨가며 저녁 6시 이후 소녀를 철조망 넘어 바다에 출입시켜 미역을 따게 하였고, 그녀의 작업을 위해 서치라이트를 비추어 주었다. 걸리면 영창 갈 일이지만, 병사는 두렵지 않았다.

 

40 년전, 그때 그 소녀 옥희! 눈망을 유난히 새까맣던 소녀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

 

그 소녀가 내 고모 김옥희다!

 

40 년 전 병사가 내 앞에 앉아 있다. 초로의 노인이 되어 말 없이 담배만 피고 있다.

 

"몇 년 전, 눈이 많이 와서 태백산맥을 넘지 못해, 금진이 생각 나서 저기 횟집에 몇 일 머믈다가 옥희가 아직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그때, 오빠 종대하고도 친했는데....옥희는 날 잘 기억을 못하더라구...."

 

"............."

 

노인은, 과거를 더듬고 있었다. 8만원짜리 회 접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회는 이런 거 맛이 없어..놀래기 새끼 통채로 입에 넣고...머리와 꼬리가 양쪽으로 삐져 나올 정도로 입에 우겨 넣고 먹어야 제 맛이지..."

 

"................"

청주 내륙지방 사람이 40 년 전 어촌에서의 경험담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에 말 없음표로 응답을 하며 빙긋이 미소 짓고 앉아만 있었다. 그것이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였다.

 

주말이라, 고모는 정신없이 바쁘다. 고모 대신에, 그 앞에서 나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3 시간째 회 접시는 그대로 방치된 채였다. 40년 전 놀래기 맛에 길들여졌던  노인네는 도저히 8만원자리 회가 입에 맞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그녀 김옥희 때문이던가!

 

"끝나고, 고모랑 정동진 가서 조개구이도 드시고...재밌게 놀다 오세요...."

 

내 말에 그는 빙긋이 웃기만 했다.

 

아침에 오니, 그는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모는 그를 위해 도루묵이며 꽁치며 한 상자 싸 주신다. 그는 돈을 줄려고 하고 고모는 한사코 받지 않으려 한다. 두 사람은 이윽고 마주 보며 작별 인사를 한다.

 

이세 세월이 흘러 20초반의 청년과 사춘기 소녀는 그곳에 없었다. 세월의 무게가 두 사람의 얼굴에 주름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도, 두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40 년 전 그대로였다.

 

"어제..정동진 갔었어요?"

 

"그래.....새벽 3시까지 있다 왔다...보리 새운가...그거 맛있더라...그 양반 돈도 많이 썼을 거야..."

 

"고모....좋았겠다..."

 

고모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 같았다.

 

"그 사람, 따라가지 그랬어요...."

 

"하하하..."

"호호호..."

 

나는 애써 농담으로 마무리 지울 수 밖에 없었다.

 

 

2

 

40 년 전 동해안을 지키던 늙은 병사가 내 앞에 앉아 있다. 그 옆에는 그의 늙은 친구들도 같이 있다.

 

"자네, 고모는 돈밖에 모르네...."

 

"맞아요. 그렇지만, 15년 전 고모부를 여의고 두 아이 대학까지 공부시키느라 오죽 했겠어요?"

 

나는 그렇게 고모를 편 들 수밖에 없었다.

 

토요일 오늘은 유난히 손님이 많은 것 같다. 40 년 전 고모를 위해 서치라이트를 비추어 주던 동안의 병사가 친구 셋을 대동하고 고모를 보러 왔다. 네 사람 역시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얼굴에 주름살이다.

 

그는 친구들에게 동해안 초병 시절의 고모의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눈망울이 유난히 까맣던 사춘기 소녀. 그 소녀의 미역 작업을 위해 초병의 임무를 망각하고 서치라이트를 비추어 주던 일을 자랑삼아 이야기 했고, 그 추억을 가슴에 안고 세 친구도 덩달아 이곳 금진항 항구횟집으로 왔는데.......회집은 유난히 바빴고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고모는 늙은 병사와 이야기 할 틈이 없었다.

 

"나...한눈에 고모를 알아 봤네....나 역시 식당을 하는 장삿꾼이네....청주에서 제일 유명한 식당이지...사람 척 보면 아네..자네 고모는 돈밖에 모르네...."

 

"네?"

 

"자네 고모, 혼자 되어서...마음에 여유없이 살아 온 것은 이해 하지만, 가끔은 다른 곳도 볼 줄 알아야지...잠깐만 고개를 돌리면 다른 세상이 있는데....저렇게밖에 평생 살지 못하네...나..그것이 안타까와 그 비싼 목도리를 보낸 거네..."

 

나는 그가 고모에게 보낸 값비싼 목도리를 알고 있었다. 금진 동네에 소문 난 목도리였다. 감히 어촌의 아낙네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내가 이 나이에 고모를 어찌해 보려고 목도리를 보낸 것은 아니네....다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의 말은 전부 옳다. 틀림없이 다른 세상이 있는데, 고모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 왔다.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은 아이들과 돈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 역시 그렇게 살아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그는 다른 세상을 꿈꾸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의 늙은 친구들에게 자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불륜이라 불리는 대단한 정열도 아니고, 사랑이라 불리는 낭만적인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 온 것과는 다른 삶인 것이다.

 

꿈꾸는 삶이다. 40년 전 동해안 초병이 꿈꾸듯이 비추었던 서치라이트 불빛이었다. 그 불빛은 미역을 이고 가는 사춘기 소녀를 위해 언덕 오솔길을 비추고 있었다. 소녀의 발 밑에는 파도에 자르르 소리를 내는 까만 자갈이 뒹굴고 있었다.

 

어쩌면, 꿈 속에서만 있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늙은 병사는 생각하며 청주에서 빗속을 뚫고 세 친구와 같이 이곳 금진항으로 온 것이다.

 

"고모에게 내가 식당한다는 말, 하지 말게.."

 

"네....."

 

그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아름다운 추억에 장사치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여유 없이 살아 온 고모에게 그마저 장사치라는 것은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다. 그의 마음은 40년 전 추억을 아름답게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사실을 고모에게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60 평생 살아 온 삶의 파편들을 숨기고도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앞에 앉아 있는 나 역시 장사치. 세 명의 장사치가 만들어낸 그림치고는 그런 대로 아름다운 그림이다. 지겹고 악착같고 추잡한 인생살이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은 진정성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 온 사람들이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더라도 아무리 마음에 여유가 없이 살아 왔더라도, 틀림없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있는 법이다.

 

눈 앞에 선하다. 동해안 해안단구 언덕에서 서치라이트 불 빛이 해안가 언덕 오솔길을 비추고, 거기에 사춘기 소녀가 미역을 이고 가고 있다. 그리고 소리가 들린다. 파도에 자르르 소리를 내던 까만 자갈들......소녀의 발걸음에 그 소리가 더욱 커져만 가고.....

 

"이제..안 올 걸세....."

 

"네.......실망한 건 아니시죠?"

 

"자네..내 마음 알잖은가..."

 

그럴 것이다. 여기까지가 그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는 한계선인 것이다. 그의 나이 만큼 그는 그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금진항#정동진#바우길#강릉#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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