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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무용한 것인가?

 

일생을 사는 삶의 시기가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시간을 대하는 마음이 많이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지난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낭비라고 여겼습니다. 누구에게나 유한하게 주어진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은 낭비이며, 이 낭비는 당연히 막아야 될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촘촘하게 시간을 계획하고 그 계획대로 꾸준하게 살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일하지 않는 짬이 허락되는 시간에는 무엇이든 배우고 익혔습니다.

 

헤이리로 주거를 옮겨서도 무의식중에 그런 태도는 크게 변함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니 헤이리에서도 무엇인가 배우려고 애쓴 흔적이 적지 않습니다. 미술사강좌와 젬베연주, 스포츠댄스와 최근의 크로키까지 헤이리에서 소그룹으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배움 모임에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익히는 보람 외에도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이웃들을 만나 안부를 나누는 즐거움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지나친 배움의 욕구도 욕심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머릿속에 무엇이든 주워 담기만 하고 그것을 되새기지 않는다면 무슨 효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지요.

 

그 의문의 결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야말로 진정 제게 필요한 것이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지요. 우리는 수많은 대화의 상대를 두고 있고 또한 매일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하루를 마감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대화의 상대 중에 '자신'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그 시간은 바로 자신을 대화의 상대자로 초대하는 시간입니다.

 

또한 되새김하는 시간입니다. 무조건 머릿속에 주입한 것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지요. 스스로의 삶의 기준과 가치로 마름질해야만 자신에게 유용한 것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야 말로 진정한 '창조의 시간'이라 여겨집니다. 기존의 학습과 그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명과 삶의 질서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번다한 시간들의 연속으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단체라면 천국도 싫다

 

일전에 마주친 취림헌의 이철웅 선생님께 이즘 집 밖에서 통 얼굴을 뵐 수 없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직업군인으로서 지난날 엄격히 시간을 엄수하는 세월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온전히 제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로…."

 

대령으로 예편하신 이 선생님은 연락장교로 미국에서의 근무와 국방무관으로 터키와 가나에서 근무하는 등 적지 않은 시간을 해외에서 보냈음에도 군인으로서의 규율을 중시하는 생활에서 예외 될 수는 없었지요. 그래서인지 규칙적으로, 혹은 단체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것에서 자유롭기를 원했습니다.

 

옆에 계시던 강복영 사모님께서 말했습니다.

"이 분은 단체로 가야하는 일이라면 천국도 싫다는 분입니다."

 

지난해입니다. 안상규 선생님이 헤이리 더스텝 안에 있는 '갤러리소품여행'이라는 곳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안 선생님은 이곳의 이윤현 대표의 평소 살가운 예우에 늘 고마움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고마움에 대한 감사로서 제게 그곳의 무엇인가를 사주고 싶어 했습니다. 손사래쳐서 될 일이 아님을 안 저는 여러 멋진 소품들 중에서 엿장수 가위 미니어처 하나를 골랐습니다.

 

그것은 지금 제 서가의 한켠에 놓여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제 생활의 지침에 대한 상징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가윗소리 횟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엿장수의 자유'입니다.

 

지난주에 1년 만에 얼굴을 보인 야초 스님과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이런저런 말끝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말 큰일이다'라는 경허 스님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10여 년 전에 접했지만 아직도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한 리조트의 광고카피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크럽메드의 인쇄매체광고였습니다.

 

이제는 끊임없이 머리에 주워 담는 지식의 탐욕보다 이미 담긴 지식을 지혜로 전환하는 '고삐 풀린 망아지의 시간'과 '가윗소리를 마음대로 낼 수 있는 엿장수의 자유'를 누리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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