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시골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오셨다. 밭에서 재배한 양파들을 보내 주시겠다고. 염치 불구하고 나는 큰 것 두 망태만 보내주시도록 했다. 어머니는 다른 자식들에게도 그 정도 나눠주신다며, 내게도 흔쾌히 보내주시겠다고 했다.
물론 어머니 형편이 녹녹한 것은 아니다. 허리도 구부정하고, 고관절에 수술도 하셨다. 앞으로 몇 년 더 있으면 팔순이 되신다. 그런 분이 무슨 힘이 남아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 나이에 자신이 양파를 직접 재배해서 팔기도 하고, 여러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있으니, 그걸 적잖은 행복으로 여기는 것 같다.
강분석의 <지금 이곳에서 행복하기>에서도 작은 행복을 엿볼 수 있다. 마흔이 된 남편을 따라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충주시 앙성면 시골에 터를 잡고 농사를 지으며 겪은 이야기를 비롯해, 그들을 찾아 시골 생활도 체험하고 여러 낭만적인 여행을 즐기러 온 외국인 '우퍼'들의 이야기, 그리고 틈나는대로 트렉킹하고 있는 그들 부부의 히말리야 등반기도 만날 수 있다.
그녀와 그의 남편은 충주로 내려간 첫 해와 두 해엔 농사에 죽을 쒔다 한다. 도심에서 살던 부부가 무슨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수 있었겠는가. 밭에서 돌을 골라내는 일이나 농약을 치는 일이나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있었을까? 그러다가 셋째 해부터였다던가. 그때부터 작은 다랑논과 과수원을 얻어 벼와 복숭아 농사를 지었다는데, 깨지고 바람 든 것에서도 작은 소출도 맛보았다고 한다.
"썩은 콩, 되다 만 콩, 못난 콩을 고르다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고요해졌으니까."(44쪽)
이는 그녀가 얄미운 콩을 대하는 태도다. 좋은 콩으로 높은 값을 받아야 했건만 그 추한 콩들로부터 무슨 값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지만 농부의 아낙네가 된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 작고 못난 콩들로부터 경건한 마음까지 추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은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그녀는 200년 8월에 '앙성닷컴'(http:// www. angsung.com)을 통해 복숭아도 판매했다는데, 거기에서도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은 빛이 난다. 전문 재배자도 아니요, 그렇다고 농약을 치는 것도 아니기에 종종 곰팡이 핀 복숭아가 들어 있다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한 분 한 분에게 전화를 걸어 송구함을 표한다고 한다.
"올 여름, 우리 농장에는 우퍼들의 걸음이 유난히 잦았다. 하와이 총각 저스틴에서부터 이스라엘의 아미와 아디, 최근에 우리 농장을 함께 찾아 온 뚜안과 마야까지. 덕분에 일손 귀한 산골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147쪽)
2007년 11월,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경북 봉화 산골짜기로 옮겨 터를 옮겨 본격적인 곡식 농사를 짓기 시작했단다. 놀라운 건 세계의 우퍼들이 그들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우퍼들은 자신이 지불해야 할 여행 경비도 줄이고, 시골 삶을 통해 여유와 평안을 얻는다고 한다. 그 동안 만난 우퍼들은 그들 부부로부터 많은 도전정신과 창조적인 영감을 얻어 갔다고 한다.
놀라운 건 그들 부부가 단순한 농부와 농부의 아내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겨울철 농한기가 되면 그들 부부는 함께 히말라야 등반을 하고 있고, 각종 마라톤 대회에도 동반 출전한다고 한다. 그를 위해 새벽녘이면 논두렁과 밭두렁 길을 뜀박질 한다는데, 그럴 때면 동네 사람들도 그들 부부의 뒤를 따른다고 하니, 얼마나 재미난 풍경일까.
누군가 그랬다던가. 삶은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Life is a mystery to be lived, not a problem to be solved)라고.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안다. 농촌 삶은 하루하루 풀어가야 할 과제들의 연속이라는 걸. 논밭에 자라나는 잡초랑 병으로 죽어나는 작고 여린 이파리들, 그리고 날로 늘어가는 농가 채무들.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을 무거운 짐으로 여기지 않고, 살아내야 할 신비로 여기는 그들 부부는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엮어내고 있는가. 먼 미래에 이룰 희망보다 지금 주어진 순간속에서 작은 행복을 건져 올리고 있는 그들 부부로부터 나는 내 삶의 현재를 되돌아본다. 지금 부딪히고 있는 순간순간 속에서 참된 신비와 경외를 맛보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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