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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명박 골키퍼가 골킥을 했다. 앞에 서 있던 정운찬 중앙수비수의 머리통에 맞고 자기네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민주당 선수들은 환호했다.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득점으로 신승했다. 어찌됐든 스코어 상으로는 이겼다.

해설자는 이렇게 평했다. "(민주당은) 단지 반사이익을 크게 얻었을 뿐이다. 이는 시민들의 정당 지지도를 나타내는 광역의원 비례대표 정당별 득표율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민주당의 득표율은 34.3%로 패자인 한나라당의 38.9%보다 오히려 낮았다."(최태욱, 6.18 한겨레신문)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21일 오전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6.2지방선거 광역, 기초자치단체장 당선인 워크샵 전 열린 최고위-시도당연석회의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21일 오전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6.2지방선거 광역, 기초자치단체장 당선인 워크샵 전 열린 최고위-시도당연석회의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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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민주당 선수의 생각은 달랐다. "일부에서 이번 승리를 반사이익이라 하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없으며…지방선거 승리를 깎아내리려는 세력에 대해선 당대표로서 좌시하지 않겠다." 21일 정세균 대표가 당선자 워크숍에서 한 말이다.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디선가 즐겨듣던 말이다. 민주세력의 어법은 결코 아니다.

시민들은 비웃고 있다. 민주당이 좋아 표를 던졌다는 유권자는 2.4%였다. 기껏해야 3.4%라는 여론조사도 있었다. 민주당에 투표한 유권자 중 97.6%가 정 대표의 상황인식에 동의하지 않음에도 정 대표는 승리라는 것이다. 이겼다는 것이다.

'좌시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한 정 대표는 너무나 자폐적이면서 철저히 계산속이다. 오로지 야당 패권을 한 임기 더 연장해보겠다는 의도, 야당 소 패권주의를 좀 더 강화하겠다는 의도, 야당 권력을 더 독점적으로 사유화해 보겠다는 의도, 이것 밖에 다른 것은 안중에 없는 태도다. 정 대표의 맹목에는 시민이 없다. 민주가 없다. 민권이 없다. 민본도 없다. 당연히 민생도 없다.

민주당 쇄신파는 무엇을 쇄신 중인가

지금 민주당은 싸움질 중이다. 대립항은 이렇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정당과 공화당이 그토록 사랑하던 '체육관 선거냐 아니냐', '당대표가 대선 때까지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대선을 치르느냐 아니냐', '총선 공천의 당파성을 독점하느냐 마느냐'의 싸움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당대표 임기를 1년으로 하느냐, 2년으로 하느냐', '집단지도체제냐, 단일지도체제냐',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해서 선출하느냐 마느냐'의 논쟁은 사실 따지고 보면 온전히 자신들만의 논쟁일 뿐이다. 왜냐고 이 논쟁에는 당원이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기들만의, 원내만의 그리고 당권을 탐하는 이기적 정치지도자들만이 참가하는 '그들만의 리그'요, '그들만의 규칙 만들기'다.

시민들은 '쇄신파'의 주장이 '당권파'의 주장과 뭐가 다른지 묻는다. 쇄신파는 당권을 바라지만 시민들은 '당권파'라는 이름 자체를 비웃는다. 오로지 한나라당이 싫어서 대통령이 싫어서, 한나라당을 견제하기 위한 시민들의 투표로 반사적 이익을 얻었음에도 이를 권리로 착각하고 당권을 사유화하려는 기도에 시민들은 등을 돌린다. 당원들은 쓴웃음을 짓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승리라는 이름의 묘약에 빠져있다.

현재의 민주당은 자타가 공인하듯, 한나라당조차도 염려하듯 '역사상 가장 허약한 야당'이다. 그럼에도 '닭벼슬만도 못한 당내 벼슬'을 놓고, 당권을 놓고 진흙탕싸움은 시작됐다. 그 전에 '쇄신파'가 정당성을 무엇을 쇄신한다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단지 반MB가 민주당의 미래가 아닌 것처럼, 反정세균, 反당권파가 쇄신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쇄신파가 그동안 당권에서 소외된, 혹은 당내 경쟁에서 패배한 이들이 쇄신이라는 우산 아래 모이기만 한 것이라면, 쇄신은 세신(洗身)조차 못된다. 쇄신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지금 수준에서의 쇄신은 당권파의 면역력을 강화시켜 결과적으로 더 무능하고 더 약한 야당을 만드는 정치행위가 될 수도 있다. 우산의 빛깔은 색색이되, 민심을 담고 시민을 모을 수 없는 찢어진 우산일 뿐이다. 구멍 숭숭 뚫린 '쌍끌이 그물 우산'이다.

민주화 이후 처음 맞는 실질적 여대야소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에 마련된 6.2 지방선거 개표상황판에 당선 축하꽃을 달고 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에 마련된 6.2 지방선거 개표상황판에 당선 축하꽃을 달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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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왜 역사상 가장 약한 야당이 됐나. 진단이 필요하다. 먼저 여대야소다. 그냥 여대야소가 아니라 1980년 이후 처음으로 맞는 실질적 의미의 여대야소다. 물론 전두환 정권, 노태우 정권, 김영삼 정권 기간 동안 야당 의석수는 여당 의석수보다 적었다. 심지어 여소야대가 됐던 노태우 정권은 3당 합당을 통해 인위적인 여대야소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는 의회 바깥에 조직화된 운동세력이 존재했다. 그 시절에는 정당 바깥의 운동세력이 정권의 안위에 더 위협적인 세력이었으며, 대통령과 여당의 독주는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곤 했다. 야당은 시민들의 요구를 제도화된 정치 공간에서 실현하면서 파국을 막는 버팀목 구실을 했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지난 17대 국회에서는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여대야소 국회가 탄생했다. 당시 한나라당이 무력하지 않았던 이유는 열린우리당의 의석수가 현재의 한나라당처럼 절대적이지 못해서가 아니다. 의회 바깥에는 보수언론과 보수학계, 정치화된 종교집단 등 주류 권력이 압도적으로 포진해 있었다.

한나라당이 의회를 거부하고 '장외투쟁'을 할 수 있었던 배경도, 상임위원회장과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농성할 수 있었던 든든한 배경도 바로 의회 바깥에 있던 강고한 세력 때문이었다. 한나라당이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와 '사립학교법 재개정'에 사활을 건 이유는 이를 통해 해석이 가능하다. 의회 바깥의 강력한 지지층이 바라는 것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진단이다. 실질적 여대야소가 왜 만들어졌나 하는 부분이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지지층을 배신했다. 이로 인해 의회 바깥의 진보적 시민사회와 지지층이 등을 돌렸다. 야권이 통합되면서 당은 또 몇 클릭 보수화됐고 진보적 시민사회는 민주당을 파트너로 삼지 않았다.

한편 해체된 지지층은 2007년 대선을 지나 2008년 총선에서도 복원되지 않았다. 2008년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일어났을 당시 '시행령만 개정하면 해결된다'면서 서명을 받으려던 민주당, 2009년 공권력이 사람을 죽인 용산참사를 놓고 '현장검증'만을 얘기하던 민주당은 민심과 당의 거리를 더욱 크게 벌려놓았다. 이는 전략부재가 아니라 당의 속성 때문이다.

정부의 폭력에 맞서 싸우고 있는 시민들에게 민주당은 또 하나의 여당이었을 것이다. 민주당은 철저히 이명박 정부의 '법치주의'에 동의했다. 충실한 준법자였다. 그리하여 제1야당은 박근혜 의원이 대표하는 친박연대의 몫이었다. 제2야당은 민주노동당의 몫이었고, 제3야당은 진보신당이었다. 민주당은 정작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다. 정권을 헌납하고도 스스로 여당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 무서운 관성이다.

당 지도부를 강화할수록 허약해지는 야당의 딜레마

세 번째 진단이다. 실질적 여대야소 국면에서 당 지도부는 당을 강화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하는 부분이다. 민주당은 원내정당, 명사정당의 구조를 더욱 강화해버렸다. 전당대회라는 용어는 사라졌다. '대의원대회'를 위한 대의원 구성방식을 추천제로 만들면서 당원의 권한은 소멸됐다.

정당운영은 위임에 위임을 더한 형식으로 최고위원회에 귀착돼버렸다. 그 결과 당 지도부는 정당의 가장 강력한 권한인 공직후보추천권과 당직임명권을 원하는 대로 휘두를 수 있게 됐다. 새로운 당규를 만들면서 지역위원장 또한 당 지도부의 입맛에 맞게 교체가 가능하도록 했을 뿐 아니라, 시·군·구 자치단체장 후보는 아예 중앙당에서 공천하도록 만들었다. 전례가 없던 일이다.

중앙당의 권한이 막강해야 당이 강력해진다는 주장과는 반대로, 중앙당의 권한이 막강해질수록 당은 약해져갔다. 바로 '실질적 여대야소'라는 사상초유의 국면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중앙당 권력 강화는 지지기반이 돼야 할 시민과 당이 유리되는 결과를 낳았다. 사실상 야당 내부의 일당독재였다. 철저히 중앙 집중 독점정치였다. 야당 권력이 이토록 집중되고 강화되고도 시민 권력과 대여 투쟁이라는 측면에서 이렇게 취약한 적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이었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민주당이 처한 현실과 앞으로 나갈 길을 알려주는 바로미터다. 답을 내기 위해서는 현실을 바로 봐야 한다. 당 대표가 '좌시하든 기립시하든' 할 말은 해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반사적 이득이었다. 민주당이 생각한 지방선거 전략은 모두 실패했다. 승리 또한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한나라당이 패배를 예측하지 못한 것은 이해되는 일이지만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패배로 인해 자신들이 반사적 이익을 획득하리라는 것조차 예측하지 못했다. 노풍은 미미했다. 검풍도 없었다. 북풍도 아니었다.

오로지 반(反)한나라풍만 불었다. 누가 뭐래도 그 바람이었다. 민주당이 이번 선거를 위해 준비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냥 세월아 네월아 했다. 선거 결과에 나타난 민심을 분석하자면 민주당은 한나라당 방식의 독주와 정책에 대한 반작용 덕에 승리했다. 실질적 여대야소라는 구도에서 민주당 바깥의 조직화된 정치세력은 크지 않되, 촛불을 든 시민들은 존재하는 형국이다. 정치사회는 왜곡의 길을 갔고 시민사회는 꿋꿋하게 살아있었다. 주권자로서 시민의 힘은 놀라왔다.

정책적 대표성으로 여대야소를 뒤집어야

그렇다면 지금 민주당은 무엇을 해야 할까. 선거는 대표를 선출하는 일이고, 그 대표를 통해 정책의 조응을 확보하는 일이다. 한 번 뽑혔다고 해서 4년 내내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이상한 민주주의는 지방선거에서 심판을 받았다. 시민들이 바라는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공론화 과정을 통해 진로를 수정해가는 일이고, 대표성을 확인하고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이다.

민주당은 위임된 대표성이라는 관점이 아닌 정책적 대표성이라는 관점에서 여대야소 국면을 전환시켜야 한다. 전환을 위해 실질적인 정책과, 더 큰 민주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쇄신파가 가장 골몰해야 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민주당 개혁과 대전환의 핵심 지점은 바로 민생이요, 민권이요, 민주다. 출산, 보육, 교육, 일자리, 주거, 의료, 노후에 이르는 생의 주기 정책에 대해 확실한 대안을 내놓아 서민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손에 잡히는 정책과 구체적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내 생활이 바뀌고 내 이웃이 바뀌고 우리 사회가 바뀔 희망의 시간표를 내놓아야 한다.

보수언론의 우아한 논쟁, 386 혹은 486이라는 인위적 시간표의 세대교체는 한나라당 방식의 세대교체론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쇄신요구를 무마하려는 점에서는 쌍둥이처럼 똑같다. 정치적 공작 혐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울러 원내정당, 명사정당의 테두리를 강화하면서 '용꿈'만을 꾸는 정치인, 민주당과 의회 바깥의 목소리를 담지 않으려는,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포기하고 오로지 ARS 여론조사만을 민심의 전부라고 믿고 살아온 야당 소패권주의 정치인들이 당을 장악하는 이상 민주당의 미래는 없다.

쇄신파의 주장은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지금 이 순간 국회기자실로 들어온다고 가정해보라. 비극적이게도 그 뛰어난 과학자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은 TV에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TV에 자주 얼굴을 비친 정치인은 단지 그 이유로 자신들의 정치적 EQ가 올라가고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가치가 세 배나 뛰었다고 확신하게 된다.

전체 정치판의 소수파에 대한 기계적인 지면배분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착각하는 당권파들은 보수언론의 상업주의 정신에 철저하게 편승하면서 당을 호령한다. 하지만 호령하는 순간 벌거벗은 임금님이 돼버린다. 그 자산에는 당원의 몫이 없기 때문이다. 시민의 주권이 철저히 배제돼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쇄신은 실질적 여소야대 국면을 만들기 위한 당의 구조, 당의 비전, 당의 활동을 제시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올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 출마하려는 후보자들과, 당을 바꾸겠다는 쇄신모임의 여러 발표문에도 이런 문제의식과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현재의 당 지도부와 쇄신파의 갈등이 당권싸움으로만 비춰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쇄신파의 주장은 업그레이드 돼야 한다. 이대로라면 민주당을 '역사상 가장 허약한 야당'으로 만든 책임은 묻혀버린다. 대표적으로 반성 없는 당내 486 명사들이 당권에 도전한다는 세대교체론은,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선거 패배의 잔상을 덮는 '알리바이'가 되고 있다. 바꾸려면 제대로 바꿔야 한다.

거칠게 쓴 이 글의 목적은 민주당을 새롭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논쟁을 시작하자는 데 있다. 진단과 해법, 비전에 이르기까지 의원이든 아니든, 정치인이든 아니든 선수도 되고 관객도 되는 생산적인 싸움을 하자는 데 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전 국회의원이며, 법무법인 한강의 대표변호사입니다.



태그:#민주당 쇄신파, #최재천, #지방선거 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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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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