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0년이 된다. 당시 태어났을 아이들은 이제 환갑이 됐을 터. 60년이 흐른 지금, 아이들에게 한국전쟁은 단지 교과서에서 배우는 역사적인 사건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의 아이들은 한국전쟁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을까? 때때로 관련 설문 조사를 보면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상당수 아이들이 한국전쟁이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 심지어 어떤 일이었는지 조차 모른다는 설문 결과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좀 더 다르게 살펴봐야 한다. 아이들은 한국전쟁만 모르는 것이 아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이에 대해 아이들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무수히 많은 역사들을 일일이 다 알 수 없다고 억울해 한다. 사실 이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일을 기억하거나 기념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직접적 체험이나 특별한 의미부여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한국전쟁을 의미 있게 알려주려면, '한국전쟁은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란 점을 나눌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은 당시 한반도를 폐허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깊은 상처와 후유증을 남긴 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전쟁은 전쟁을 잠시 멈춘 휴전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래세대인 아이들이 한국전쟁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는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통해 오히려 아이들에게 증오와 적개심만을 키우는 교육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전쟁을 교육하는 이유는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됨을, 그리고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껏 평화감수성을 키우기보다는 미움과 적대를 가르치는 교육을 행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영화나 노래, 미술로 한국전쟁을 알려주자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한국전쟁을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까? 이는 대단히 중요하면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전쟁을 자신과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이거나 TV뉴스나 영화 또는 인터넷 게임 등에서나 볼 수 있는 일로 알고 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할 때는 무미건조한 교과서식 설명이 아니라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적절한 소재를 찾는 것에서 시작하면 좋겠다.
영상매체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한국전쟁과 관련된 영화 활용 수업을 해줄 것을 추천한다. 그 중 영화 <웰컴투동막골>을 추천한다. 이 영화는 어느 정도 판타지를 가미해 우리가 어떤 남북화해를 통해 분단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상상력을 일깨워준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엄청난 호응을 얻으며 크게 흥행했다. 이는 비극으로 점철된 한국전쟁을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서로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갖고 싸우던 인민군과 국군, 그리고 미군이 동막골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하나가 된다. 영화는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 미국 사람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까지 동막골이라는 꿈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 같은 꿈의 세계에 마침내 모두가 동참하는 날, 그 꿈은 현실이 될 수 있다.
분단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코미디로 풀어내면서도 인간애만이 구원이라는 치열한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은 이 영화는 이데올로기 교육이 아닌 평화교육을 통해 한국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게 도와준다.
더불어 전쟁 중에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 꿈같은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도 좋겠다. 지식채널e의 <크리스마스 휴전>편을 살펴볼 것을 추천한다. 이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전장 한 복판에서 기적의 캐럴이 울려 퍼지고 비록 하루지만 전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기적의 <크리스마스 휴전>은 단 하루 뿐이었다. 휴전 소식을 접한 독일과 영국의 사령관들은 당장 병사들에게 전투를 계속 할 것을 명령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군사재판에 회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전쟁은 계속되었고 이후 44개월 동안 계속된 전쟁에서 900만 명 이상이 죽었고 2000만 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이런 사실을 아이들과 함께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그 과정에서 전쟁이 갖는 참혹함과 또 작품에 나온 어느 한 병사가 외친 '우리가 왜 서로 총을 쏴야 한단 말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겠다.
이 밖에도 노래나 미술, 그리고 문학 작품을 통해 한국전쟁을 아이들과 나눌 수 있다. 노래는 사람들의 정서를 잘 담아낸다. 특히 대중가요 중에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내용이 많다. 한국전쟁 관련해서도 수많은 노래들이 있다. 얼마 전까지 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해맑게 부르던 노래를 떠올려 보자.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로 시작하는 '전우여 잘 자라' 같은 노래는 아이들이 즐겨 부르기에는 부적합하다. 아이들이 고무줄을 하면서 시체를 넘는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좀 더 생각해 볼 지점이 많다. 한국전쟁 당시 상황을 담아낸 노래이지만 이 노래가 전쟁 이후 아이들 사이에서 수십 년 동안 거리낌 없이 불려진 상황은 씁쓸하다.
최근에는 분단의 상처를 담은 노래들과 통일을 바라는 노래들도 많이 나왔다. 특히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같은 곡은 이산가족의 아픔을 잘 드러낸 곡이고, '라구요'는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아버지를 위해 자식이 노래를 만들어 유명해졌다. 그리고 우화 같은 이야기를 담은 김민기의 '작은 연못'은 아이들과 더불어 생각할 것이 많은 좋은 노래다.
'작은 연못'은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러준다. 사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한반도는 폐허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또 다시 그런 전쟁이 일어난다면 폐허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한반도가 사라지고 지구 전체가 위험해질지 모른다.
독일 홀로코스트 교육 3대 원칙, 눈길 간다
피카소 같은 예술가는 한국전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서의 학살>이란 그림을 그려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권정생 선생님 같은 분들이 쓰신 <몽실언니>란 문학작품을 통해서도 한국전쟁을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전쟁을 가르치는 일은 힘들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색한 방안을 우리에게 맞게 수용하고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면 또 다른 학습의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 이중에서 특히 눈여겨 볼 부분은 독일에서 시행하고 있는 홀로코스트 교육의 3대 원칙이다.
이 원칙은 만3세에서 10세까지의 어린이들에게 홀로코스트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제시한다. 이 원칙에서 가장 핵심은 '아우슈비츠 없는 아우슈비츠 교육'이다. 어린이들에게 아우슈비츠가 초래할지도 모르는 정서적 부담을 배제하면서 아우슈비츠를 교육하는 지혜다. 이는 바로 한국전쟁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에도 해당될 수 있다.
어린이와 함께하는 '아우슈비츠 교육'에는 아우슈비츠 같은 사건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평화, 관용, 비폭력, 선입견에 대한 이해, 다양성, 차이점의 존중 등과 같은 소중한 가치의 중요성을 일상의 구체적 사례를 들어 깨닫게 한다.
홀로코스트 경험과 무관한 사회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홀로코스트 자체가 아니라 홀로코스트가 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전쟁도 직접적으로 한국전쟁을 다룬 이야기뿐 아니라 평화의 소중함을 담은 다양한 사례 등을 통해 아이들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교육할 때 주의할 것은 한국전쟁을 평화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것이다. 미래 세대의 주역이 될 아이들에게 우리는 물론이려니와 세상의 모든 전쟁에 반대할 수 있는 교육을 한다면 세상은 좀 더 아름답고 평화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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