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꽃밭 매던 호미를 놓고 떼어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글씨는 가늘고 글줄은 많으나 사연은 간단합니다.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글은 짧을지라도 사연은 길터인데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바느질 그릇을 치워놓고 떼어 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나에게 잘 있느냐고만 묻고 언제 오신다는 말은 조금도 없습니다.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나의 일은 묻지 않더라도
언제 오신다는 말을 먼저 썼을 터인데
<당신의 편지>-'한용운'
 

 
나에게는 '내 마음의 보석상자'라고 말할 수 있는, 오래된 편지함이 몇 개 있다. 이 편지함에는 이름을 보아도 도무지 기억에 떠오르지 않는 얼굴의 편지도 있고, 한번도 얼굴 본적이 없는 사람의 편지도 있다.
 
세월이 물처럼 흐르는데도, 얼굴 본 적이 없는 사람의 편지를 차마 버릴 수 없어 간직해 온 편지들은  대개 보낸 사람의 정성이 깃든 편지이다. 낙엽을 곱게 말려 붙인 편지나 네잎 클로버 말려 붙여진 엽서들은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 않는 편지다. 
 
그 중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전라도 땅에 있는 S 시인과 문청 시절에 펜팔한 편지들도 있다. 그 편지 내용에는 이런 시구 같은 멋진 말이 적혀 있다.
 
 "우리는 영원히 그리워하기 위해 만나지 말자..."
 
당시 이 편지를 받고, 나는 고개를 가웃거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십 년도 넘게 흐른 시간 후에야 그 시인의 말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많은 편지들 속에는 베트남 전선에서 어느 군인 아저씨가 보내 준 베트남 거리 사진이 든 빛바랜 편지도 몇 통 있다.
 
나는 먼 옛날이 그리울 때 이 오래된 편지함을 열어 편지를 읽곤 한다. 그런 시간이면 내가 마치 일본 영화 <편지>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내게  오래된 편지를 읽는 것은 시간 여행이다. 오래된 편지는 나를 돌아올 수 없는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해준다.
 
많은 편지 중에는 보낸 이의 가슴 아픈 사연도 있고, 가난해서 학비가 없어 고민했을 때 친구에게 위로 받은 편지도 있다. 모든 편지 하나 하나 내게는 보석처럼 소중하다. 마치 엇그제 받은 편지 같은데 우표와 소인 날짜보면 10년-20년 세월이 훨씬 지나가 버린 편지... 
 

 
가만히 보니 최근 들어 받은 편지는 한통이 없다. 전자 메일이 생긴 후 나도 육필로 편지를 쓰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이다. 돌아가신 법정 스님은, 그리움이 보일 때 편지를 쓴다고 이야기했는데, 내게 이제 그리움이 바닥 난 것인지 모르겠다. 메일 편지는 편지 같지 않고 받아도 고작 한 두마디 답장을 쓰게 된다. 메일 편지는 손으로 쓴 편지처럼, 내 속 마음을 적어보낼 수 없는 편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래된 편지는, '시간의 재산' 같다. 대책 없이 멀리 흘러가버린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했다 되돌려 주니 말이다. 누군가 사람은 늙으면 추억으로 산다는 말 나이가 들어가면서 실감하는 것이다. 
 
더구나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편지는 이 세상 어떤 보석보다 더 귀한 보석이라는 생각이 드니, 철없던 시절 기쁜 나쁜 편지를 받아서 찢어버리거나 태워버린 것 너무 후회가 된다. 마치 화가 나서 절교를 선언하고 다시 안 보겠다고 다짐하고 돌아선 이별처럼 한 번 찢어버린 편지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추억이라는 생각드니, 지금부터라도 편지를 받기 위해 편지를 많이 써야겠다. 
 

 

예쁜 꽃잎 붙여서 보내 준

그대의 해묵은 편지 한장
책갈피에 꽂혀... 
그립다 그립다 말을 건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말을 받아 적어
그대에게 편지로 보낼 수 없습니다.
나의 그리움은 향을 다 날려버린 향수병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보낼 수 없는 편지>-송유미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유년시절부터 편지를 많이 썼던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집을 떠나서 일하는 직업을 가지셔서, 나는 아버지에게 편지 받기 위해 편지를 많이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일이 무척 바쁜 아버지에게서 오는 편지는, 고작 일년에 한 두 번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오랜만에 편지가 오면, 편지를 빨리 개봉하지 않고 겉봉을 쓰담아보곤, 높은 시렁 위에 얹어두셨다가, 저녁밥 지어 먹고 설거지하고 목욕재개 후, 잠자리 준비하고 누운 우리 남매들을 새삼스럽게 무릎 꿇게 하시고는, 어머니 등잔 심지 높이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곁에 마치 아버지 계신 듯 읽어주곤 하셨다.  
 
어린 나는 귀를 바싹 세워 아버지의 소식을 긴장해서 듣곤 했던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객지에서 생활하는 아버지의 편지는 혼자서 가정을 꾸려나가는데 어머니에게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그렇게 무슨 보배인양, 아버지 편지를 항상 품속에 지니고 계셨다가 자주 꺼내보면서 미소짓곤 하셨던 것이다….
 
누군가 진실이 깃든 편지 한 장은 성서와 같다는 말을 했듯이, 편지는 쓴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오늘은 무척 돌아가신 부모님들이 그립다. 내 어린 날 침을 묻혀 연필로 또박또박 "아버지 안녕하세요 ? 여기는 모두 모두 잘 있어요... "라고 썼듯이, 오늘은 저 먼 하늘나라 계신 부모님 앞으로 안부 편지를 써야겠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에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언제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즐거운 편지>-황동규


태그:#편지, #보낼 수 없는 편지, #그리움, #즐거운 편지, #그리운 편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