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에서 최저임금을 5180원(최종 5110원)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요구한 소식을 듣고, "그것도 적다"는 생각은 했지만, 1000원이라도 인상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최저임금은 4110원, 그런데 사실 식당에서 제대로 된 밥 한끼 사먹을라치면 그 이상의 돈이 든다. 그러니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나, 최저임금 정도만 받고 일하는 사람이 한 시간 힘들게 노동한 대가로도 밥 한끼 먹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가 아니라, "일한 자, 그래도 못 먹는다"인 것이다.
대학생들에게, 특히 부모님 도움을 받지 않는 대학생들에게, 도움을 받더라도 턱없이 부족하기만한 대학생들에게 최저임금 4110원은 너무 적다. 수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엔 그 생활이 너무 벅차, 결국 휴학을 하고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 시장에 뛰어들게 된다. 대학생들도 이 정도인데, 최저임금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다른 분들은 오죽할까.
나 역시 결국 후자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나름 알바 두 개를 하는데도 생활비 감당하기가 벅차다. 그러니 다음 학기 학비를 버는 건 꿈의 일. 사실 자취생이라 드는 돈이 더 많아서 그런 것도 있을 테지만.
이런 내 현실이 그리고 주변의 대학생들이 겪는 문제가 심각하단 생각이 들었다. 높은 등록금과 감당 안 되는 생활비를 '혼자'서 감당하는 건 무리이다. 나라에서 대학 교육을 지원을 해준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지역에서 해주면 좀 낫지 않을까, 아니면 최저임금이 올라 아르바이트로도 학비, 생활비, 용돈을 해결할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런데 이러한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영계에서는 최저임금 10원 인상안을 내놓았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건 '최저임금'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내 일'이기 때문이었다. 동결도, 10원 인상도 지금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금처럼 허덕이며 살았듯 더 허덕이며 살아보라는 고약한 심보에 불과해 보인다.
마침, 얼마 전에 청년유니온에서 대학생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서 교수님께 편지를 써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최저임금심의위원회 공익위원(이하 공익위원) 분들이 교수님이신데 제자입장에서 편지를 쓰면 좀 더 호소력이 있지 않겠냐는 거다. 글재주가 없는 내 입장에선, 다른 사람이 쓰는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글을 잘 쓰는 것보다 당신들의 제자가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현실을 보여드리면 되겠다는 생각에 편지를 썼다(편지 전문은 하단에 기고).
많은 대학생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또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지식을 위한 공부보다는 취업을 위한 스펙 쌓는 공부를 하고, 또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대학생활을 하기보다는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하는 시간이 더 많다.
모순이지 않은가? 공부가 주가 되어야 하는데, 공부보다는 돈을 버는 게 '주'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대학생. 그런 20대들에 대한 조금의 연민이 있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안타까운 감정이 든다면, 최저임금을 올려줘야 할 것이다.
다음은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교수님들께 쓴 편지전문.
교수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지방의 한 국립(법인)대에 다니고 있는 학생입니다. 4학년이고, 현재는 휴학 중입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스펙을 쌓기 위해서 또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휴학을 한 상태가 아니라,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휴학을 한, 생계형 휴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도움과 소액의 장학금으로 몇 번의 등록금을 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안 형평상 사립대보다 싼 등록금임에도, 부담이 되어 2학기 정도 학자금 대출을 받았습니다.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로 해결했다 하더라도, 생활비는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 제 고향은 강화도 입니다. 부모님은 강화에 계시고, 저는 대학 진학을 위해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취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방을 얻을 순 없었고, 그나마 고시원 생활로 시작하였습니다. 몸 하나 누울 공간 밖에 안 되는 그 방값은 20만 원이 조금 안 되었지만, 학교 다니면서 필요한 용돈, 생활에 필요한 생활비가 생각보다 많이 들었습니다. 결국 부모님께 대부분 도움을 받았고, 조금씩은 아르바이트 하는 것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웠습니다. 사실 2학년이 될 때까지도 부모님께 용돈을 받는 것에 대해 별로 죄송하단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주변 친구들도 다 그렇게 대학을 다니는 것 같았고, 부모님도 별 말씀이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등록금을 낼 때면 조금 부담스러워 하시긴 하셨지만요. 하지만 안정적이지도, 일정하지도 않는 아버지의 수입과 그리고 조금도 다르지 않는 어머니의 수입은 제가 아무리 무심하다 하더라도 느낄 수 없는 게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이 버거워하시는 모습을 때때로 보게 되었고, 그럴 때면 저는 이렇게까지 해서 대학을 다녀야 하는 건지 하는 자책과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때론 부모님을 원망도 하면서요. 공부를 하는 데에 있어, 왜 부모님께 죄짓는 기분이 들어야 하며, 부모님도 왜 자식 뒷바라지로 고통을 받으셔야 하는지 사실 저는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진 않습니다. 그냥 자녀는 자녀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힘겹게 현재를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점차 아르바이트를 더 많이 하게 되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기에 수입엔 늘 한계가 있었고, 생활의 부담을 덜 수는 없었습니다. 교수님! 교수님이 강의를 하고 계시는 대학에도, 저와 같은 제자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등록금과 생활비 내주는 게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부모님들도 계실 테지만, 그렇지 않은 부모님들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자들과 그들의 부모가 받는 고통을 당장 덜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대학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록금과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제자들이 받는 시급이 올라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작지만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대학생들에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당장 저부터도 4110원의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사업장에서 일했었고, 그나마도 일을 정말 많이 해야 생활비를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택했던 건 편의점 야간 알바 입니다. 고된 아르바이트와 바쁜 학교생활로 몸도 마음도 병들어 갔습니다. 4110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특히 대학을 다니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그 돈은 더욱 무겁게 느껴집니다. 대체로 평일 오전오후는 수업으로 인해 알바를 할 수 없다고 하면,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평일 저녁과 주말이 됩니다. 하지만 평일 저녁 얼마나 일해야 생활비를 채울 수 있을까요? 주말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일해야 등록금을 벌 수 있을까요? 저는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을 간 것이지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대학을 간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부모님 역시 자녀들의 더 나은 미래와 행복을 위해 대학을 보낸 거지, 일을 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하는, 그리고 아르바이트로 고통을 받게 하기위해 보낸 것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또한 자녀의 대학 뒷바라지로 자신들의 삶은 또 잠시 포기해야 되는 걸 생각하진 않으셨을 텐데 말입니다. 지난 생일도 저는 편의점 야간 알바를 했습니다. 알바를 하고 집에 가니 너무 지쳐서 바로 잠들었고, 결국 다시 출근하는 시간이 되어서야 깨면서 그날 저는 제 생일인지도 잊은 채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명절에 어머니를 만났을 때, 그냥 어리광 섞인 말투로 딸 생일날 전화 한통 하지 않아 서운했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의 대답에 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순간 죄스러움과 안타까움에 눈물을 쏟을 뻔했습니다. 차라리 어머니께서 제 생일인 걸 깜빡했다고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때 아빠도 엄마도 돈이 하나도 없었는데, 혹여 네가 용돈 달라고 할까봐 전화를 할 수가 없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만약 부모님께 도움을 받지 않고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면, 부모님도 저도 전화 한 통 하는 것에 부담을 갖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대학생인 저는 빚쟁이가 된 기분입니다. 사회로부터, 부모로부터,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그 빚을 저는 혼자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저 혼자 극복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빚쟁이는 저 혼자만이 아니라 많은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루하루 알바로 허덕이는 삶이 아닌, 부모님께 부담이 되지 않도록 일한 노동의 대가가 오르는 것이 그 빚을,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 내년 최저임금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고려하고 계신 줄로 압니다. 부디 이런 어려움에 처해 있는 교수님의 제자들과 더 많은 대학생, 그리고 젊은이들이 받는 부담과 고통을 헤아려, 조금이라도 덜어 주실 것이라 믿으며 글을 마칩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인천대학교 박보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