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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내리사랑

 

저는 둘째딸 주리가 나와는 전혀 다른 세대를 사는 만큼, 그 사고와 문화적 경험도 저와는 판이함으로 그 단면들을 모티프원 블로그의 '프랑스에서의 6개월' 코너에 직접 올려보도록 종용했고 '프랑스인 프레드와의 여의도 공원 월드컵응원'이라는 제목으로 첫 글을 포스팅했습니다.

 

그 글에 'wal0407'이라는 분이 덧글을 남기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고1 첫 여름방학을 맞는 딸에게 무엇을 해줄까 이리저리 검색을 하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따님 글과 사진을 보고 저도 모르게 빠져들다 동생에게 쓴 편지글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아이들 모두 참 예쁘게 잘 키우셨네요. 더 바랄게 없으시겠어요. 저도 왠지 참 흐뭇한 마음이 듭니다. 문의 드릴게 있는데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리겠습니다.'

 

이 글의 내용으로 보아 이 선생님은 고1의 첫 여름방학을 맞은 딸에게 좀 더 보람 있을 수 있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분에게서 따님을 위해 시간을 쓰는 부모의 내리사랑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치사랑에 대한 나중의 기대와는 전혀 무관하게 자녀들이 독립된 객체로서 자신들의 몫을 잘 해 낼 수 있을 때까지 고복顧復하는 일은 모든 부모들의 본능이고 의무입니다.

 

할머니·할아버지의 품과 들에 방목하다

 

부모에 따라 자녀에게 행하는 양육과 훈육의 방법이 모두 다릅니다.

 

저는 두 딸과 한 아들을 교육함에 있어서 가능하면 자율에 기대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저나 처가 아이들을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쓸 만큼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 방법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습니다.

 

도회지에서의 생존에 급급했던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낳는 족족 고향의 부모님께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세 아이들은 모두 1-2년씩은 할 수 없이 할머니·할아버지의 품에서 산과 들을 놀이터삼아 유아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의 형편이 좀 나아진 후, 아이들이 초등학교 취학을 하고도 한 학기이상을 제 고향의 초등학교 분교로 보내 시골 정서를 체득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로 지금, 할머니·할아버지에 대한 효심도 저희 부부보다 깊고, 자연적인 요소에도 거부감이 들 합니다.

 

중고등학교시절에도 저희 부부가 바라는 직업군에 속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과외대신에 가능하면 자신들의 관심사에 끌리는 성향을 억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첫째는 '연기', 둘째는 '언어와 국제관계', 셋째는 '동물과 스포츠'등 각기 다른 방향으로 관심이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미화시켜 '방목'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제가 방목이라는 교육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 아이들의 교육에 노력을 몰두하기에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이 많았으므로 그 시간을 아이들만을 위해 희생하고 싶지 않았고, 또한 과외비를 부담할 만큼 넉넉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방목'될 수밖에 없었던 진실은 사실 '부모의 이기심과 능력부족'의 결과였던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이런 교육방법에 부모로서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방목'이라는 자율의 효과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의 가축은 먹이를 주인으로부터 받아먹을 수 있기 때문에 끼니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대신 몇 평의 공간에서 자유를 구속당해야 하고, 방목되는 가축은 초지에서 스스로 먹이를 구해야 하지만 초원의 자유를 구가할 수 있습니다.

 

명품 와인을 만드는 것은 비탈의 포도다

 

비탈진 척박한 곳에 자란 포도가 수십 미터 깊이의 땅으로 뿌리를 뻗어 대지의 정기를 흡수하고 명품 포도주로 탄생할 수 있듯이, 혹은 모래밭에 자라도록 운명 지어진 아프리카 나미비아 사막의 카멜손트리가 혼신으로 물을 찾아 땅 밑으로 수십 미터 뿌리를 뻗어 어떤 가뭄과 모래바람에도 흔들림 없는 나무가 되듯, 적당히 메마른 환경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명품으로 탄생할 수 있는 자생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지금의 장마가 시작되기 전 헤이리도 무척 가물었습니다. 모티프원의 정원에도 잔디가 타고, 옆집에도 몇몇 화초는 땅에 몸을 뉘였고 결국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때에도 정원의 모든 화초들이 싱싱한 모습이었던 '아트스페이스 강'의 강제순 화백을 뵈었습니다. 그리고 정원을 화제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선생님 정원의 화초들은 이 가뭄에도 모두 원기가 왕성합니다. 이렇듯 정원에 물을 주려면 수돗물 값도 만만치 않겠습니다."

 

강선생님의 말씀은 의외였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화초의 종류에 따라서 가려서 물을 줍니다. 이 정도 가뭄에 견딜 만한 화훼에는 며칠 걸러 물을 줍니다. 그러니까, 각각의 화초마다 부족한 물로도 견딜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는 것이지요."

 

저는 그 대답을 듣고 강 선생님이야말로 지혜로운 정원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6월 25일, 야초스님과 원주와 영월, 울진의 천축산까지 1박 2일 동안 함께 만행을 했습니다. 그 길에 8년째 아프리카 수단의 보마지역에서 봉사를 하고 계시는 장윤호 권사님댁을 방문해서 그 분께서 사역하고 계신 지역이 얼마나 척박한 곳인지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분은 50도를 오르내리는 그곳에서 샘물을 마을로 끌어오는 파이프 공사를 하고 그곳의 학생들을 공부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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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우리는 귀경길에 그 숭고한 봉사에 감격한 내용을 되새기다가 자녀교육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졌습니다.

 

야초 스님이 말했습니다.

 

"제가 만약 자녀를 가진다면 뻐꾸기처럼 키우겠습니다. 아들이든 딸이든 어릴 적에 겨드랑 밑에 야野자 한 자를 문신한 다음 양육기관이나 다른 집에 입양을 시킬 것입니다. 뻐꾸기는 가짜 어미가 알을 품어 부화하고 그 가짜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먹고 자라지만 결국은 멧새가 아니라 뻐꾸기로 자랍니다. 내 아들 딸들이 크면 본능에 따라 분명, 자신의 신체에 표시된 그 상징기호를 실마리로 낳은 부모를 찾을 테고 저는 나중에 효도만 받으면 됩니다."

 

야초스님은 이즘 자식에 대한 과보호와 과도한 교육열에 대한 비판과 자율성을 키우는 교육에 대한 대안을 도모해야한다는 것을 이렇게 얘기한 것입니다.

 

저는 올 여름 모티프원의 처마에서 알을 부화하고 지극정성으로 새끼를 키우던 멧비둘기부부를 잊을 수 없습니다. 육추育雛를 마치고 이소 후에는 매정하게 부모의 정을 끊습니다. 스스로 독립된 개체로 살 수 있도록 하는 어미새의 사랑 깊은 비정非情이지요. 과연 인간의 양육과 교육방식을 돌아보면 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과욕이 본능에 따른 동물들의 양육방식보다 옳은 것인가는 의문이 아직 풀리지 않습니다.

 

 

학교 가는 대신 자전거 타는 철학과 교수의 딸

 

대학입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제도권 교육이 학생들의 개성과 소질을 반영한 개별화된 교육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오래된 현실입니다. 획일화된 교육에 적응하는 것을 거부한 개성강한 학생들은 한국의 제도권교육을 벗어나는 경우를 이즘 흔하게 봅니다.

 

헤이리에서도 적지 않은 가정이 간디학교 같은 대안교육기관이나 홈스쿨링을 택했습니다. 가을이네의 가을이, 빈우당의 한솔이, 바우재의 교산이 등이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교칙에 순종적이지 않았던 터치아트 진영희사장님의 아들은 학교와 불편한 관계였습니다. 진선생님은 아들을 캐나다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마침내 원하던 초지를 누릴 수 있게 되었고 그곳에서 더 이상의 갈등은 없었습니다.

 

역사사랑방의 김영희 여사님의 아들도 교육적 목표에 대한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몇 년간 가출했고 스스로 연출가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좀 더 방목에 가까운 자유를 구가하는 이는 학교에 가는 대신 헤이리에서 자전거를 타는 코지하우스의 딸, 희주입니다.

 

-저 공부하기 싫은데요.

"그럼, 하지마."

 

-저 학교가기 싫은데요.

"그럼, 가지마."

 

고등학교 2학년 나이의 딸과 한국의 명문대학 철학과 교수 아버지의 이 대화를 저는 아테네의 광장과 골목에서 청년들에게 '행복에 관하여', '용기에 관하여' 그리고 '선善에 관하여'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던 소트라테스의 문답에 비견되는 대화로 여겼습니다.

 

여느 아버지보다도 딸을 사랑하는 분이, 그리고 우리나라 제도권 교육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은 분이 딸에게 행하는 이 산파법産婆法의 결과를 그 분은 확신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문창옥 교수님을 뵐 때마다 이 분은 분명 진정한 '행복의 비밀'을 알고 있는 분으로 여겨집니다.

 

공스튜디오의 박타우는 간혹 두 딸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께 호출당해 가곤 합니다.

 

"따님께 별도로 학과목 지도를 좀 시키는 것이 어떨까요?"

 

시험 때면 학급전체의 평균점수를 내려놓곤 하는 딸에게 은근히 과외라도 시켜주길 바라는 선생님의 암시입니다. 하지만 타우는 단호합니다.

 

"제 딸아이의 공부를 강요하지는 마세요. 저는 스스로 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릴 겁니다."

 

그런 태도 때문에 학생도 학부모도 별난 집으로 찍혀 선생님의 곱지 않은 시선을 느낍니다만 타우는 만화를 좋아하고 그림그리기에만 열중인 딸에게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학과공부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누나가 입시에 시달리는 모습을 본 중학생이 부모를 졸라 유학길에 오른 학생도 있습니다. 유창근은 고등학교 때에 홀로 미국으로 갔고, 올봄에 카네기멜론 대학을 졸업하고 세계적인 회계법인 언스트앤영Ernst & Young의 미국본사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학부모가 변해야 한다

 

저는 몇 년 전에 한국고등학교에서의 학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처의 친구의 딸과 제 업무파트너의 딸을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보내볼 것을 아버지들에게 권했습니다. 저의 조언을 따랐던 두 학생은 미국에서 고등학교교육에 잘 적응했고, 그들은 교환학생기간이 끝난 후에도 스스로의 선택으로 한국의 공교육으로 복귀하는 대신 그곳에서 미국의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방학 때 한국으로 온 그들은 아버지와 저를 방문해서 제게 진정으로 고마워했습니다.

 

"아버지를 설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 진정한 꿈을 향해 달릴 수 있게 되었어요."

 

이소라는 지금 뉴욕의 맨해튼에서 2년의 디자인 교육을 마치고 순수미술에 대한 또 다른 공부를 준비 중입니다.

 

글로벌의 시각으로 보면 한국의 입시교육과 대학의 진학만이 모든 젊음을 바쳐야할 유일한 돌파구가 아님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선생이 동일한 목표로 일로매진一路邁進하고 있는 그 명문대를 향한 피나는 노력이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각자가 다르게 가진 학생들의 숨겨진 능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개발할 수 있는, 그래서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도록 돕는 것에 쓰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목표를 향한 변화의 키를 쥐고 있는 측은 학부모입니다. 교육의 수용자인 학생 혼자 부모의 욕심과 기성의 교육제도에 대항하기에는 너무 희생이 큽니다. 학교에서 먼저 바뀌기에는 공교육의 몸집이 너무 비대하고 개혁의 자율성을 쟁취할 용기를 발휘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교육수용자도 교육자도 아니지만 그 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학부모입니다. 교육비를 부담하는 학부모가 피교육자인 자녀의 바람에 맞추어 변하면 학교도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학부모가 과연 사랑의 이름으로 자식들을 통해 자신의 명예를 획득하거나 세습하기위한 이기적 속셈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관련글 더보기

-독립적인 아이들로 기르다 | http://blog.naver.com/motif_1/30040509569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청년, 유창근 | http://blog.naver.com/motif_1/30016106096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교육#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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