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충남도지사 당선자가 도지사 관사를 사용하겠다고 밝히자 논란이 뜨겁다. 새 도지사가 취임할 때마다 충남지사 관사(대전 중구 대흥동) 사용여부는 언론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관심이 이는 이유에는 '변화'를 슬로건으로 내건 안 당선자의 개혁적 성향도 한 몫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를 20년 만에 주민들에게 반환하는 방법으로 특권의식의 상징과 결별했다. 노 전 대통령의 행적을 떠올리며 안 당선자의 관사 사용여부를 주시해온 도민들도 있었을 법하다.
충남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대표 이상선)는 최근 성명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후 청남대를 개방해 참여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국민들에게 상징적으로 알려 큰 신뢰를 받았다"며 안 당선자의 관사사용 포기를 종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안 당선자는 "관사가 낡은 권위주의와 특권을 상징하는 시대가 있었지만 업무연장 필요성이 있는 만큼 당분간 유지하려고 한다"며 관사 사용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자기네가 하면 로맨스'라는 식"이라며 관사와 결별할 것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한국전쟁 상흔 담고 있는 현대사 현장
안 당선자와 시민단체간 입장이 이처럼 상이한 것은 충남도지사 관사가 갖는 성격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론 2012년 말까지 홍성과 예산으로 도청을 이전해야 하는 현실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충남도지사 관사가 있는 관사촌은 전국에서 일제 강점기 관사촌이 남아있는 유일한 곳이다. 약 2400평 부지에 도지사 공관을 포함 행정부지사, 정무부지사, 실·국장 등이 거주하는 10동의 관사가 늘어서 있다. 이중 1000여 평은 정원으로 가꾸어져 있다. 1935∼40년대 고위 간부들을 위해 지은 관사촌은 설계는 일본풍으로, 건물양식은 서양식 아르데코풍(자연의 선을 중시한 장식미술의 한 형식)이다.
특히 도지사가 거주해온 지사 관사(대지 1024평, 건물면적 115평)는 한국전쟁의 상흔을 담고 있는 현대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곳은 6·25 당시 서울을 버리고 대전으로 피난 온 이승만 대통령의 임시거처였으며, UN군 참전을 공식 요청하고 주한미군 지위에 관한 불평등 조약(대전협정)을 조인한 곳이기도 하다.
건축학자들도 "충남도지사 공관 일대는 구도심이라는 좋은 공간성과 역사성 및 건축성을 두루 지니고 있다"며 "재개발 될 경우 소중한 공간을 상실하게 된다"며 보존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이같은 건축학사적 의미와 역사성으로 대전시는 2002년 도지사 공관을 대전시문화재자료 49호로 지정했고, 정무부지사 및 행정부지사 관사로 쓰이고 있는 인접한 공관 등 4곳은 2004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보존의 법적 장치가 마련된 셈이다.
반면 충남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측은 '일제잔재'와 '권위주의 상징'이라는 데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관사를 뒤늦게 문화재로 지정한데 대해서도 "1950년 피난 가던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이 건물에서 며칠을 묵은 것이 무슨 역사성이 있느냐"며 "시민단체의 철거요구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원형보존-시민 쉼터' 일치...'환원 시기' 놓고 이견
역대 도지사들마다 관사 활용방법은 달랐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관사의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심대평 지사가 거주하던 2000년 초에는 지사공관을 중심으로 공원을 조성, 시민에게 공개하는 방안과 일부 공관에 행정사료관을 설치하는 안이 검토됐다. 심 지사는 이후 충남도 역사를 담은 '도사(道史) 박물관 건립'으로 방향을 정했다.
하지만 뒤이은 충남도청이전 계획으로 공관 활용방안은 다시 유보됐다. 도청을 이전하는 마당에 대전에 도사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 때문이다. 이완구 충남지사 또한 도지사 관사에 거주하면서 '관사촌 매각'을 검토하다 임기를 보내야했다. 여러 채의 관사 건물이 한 묶음으로 문화재로 지정돼 매각이 여의치 않은 데다 다른 용도로 활용방안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전 지사는 취임직후 "대전시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매각을 고려하겠지만 충남도의 재정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어 최선의 답을 찾겠다"고 밝혔지만 끝내 그 답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전시는 지난 2007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충남도청을 활용한 국립박물관 조성 계획'을 발표한 만큼 충남도청 건물과 함께 관사촌을 '국립박물관 또는 국립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 당선자 측은 향후 활용방안과 관련 "그동안의 논의결과와 도민의견을 종합해 대전시, 정부 등과 협의해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2012년 도청이전, 새 관사 임대는 낭비" - "하루라도 빨리..."
따라서 논란은 다시 관사촌의 시민환원 시기로 모아진다. 충남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관사촌을 보존하더라도 하루라도 빨리 시민들에게 환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 당선자 측에서는 "다른 자치단체처럼 아파트나 단독주택을 임대해 관사로 사용할 수 있지만 2012년 말 도청이전을 앞두고 있어 이는 또 다른 낭비요인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로 지정된 관사촌 관리비용과 또 다른 관사 임대 및 관리비용이 이중으로 지출될 수 있다는 우려인 셈이다.
"당분간 유지하려고 한다, '권위주의 상징과 사치와 호화'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단속하고 줄어나가겠다"는 안 당선자의 입장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 지난 5월 말 현재 16개 광역자치단체장 중 자택을 사용하는 경우는 5곳(대구, 대전, 울산, 경남, 제주)으로 나머지 11곳은 아파트를 임대하거나 단독주택을 건립해 관사로 사용하고 있다. 부단체장의 경우 자택사용 6명, 관사사용 26 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충남지역 시민단체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보다 폐지하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 많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대전시민단체 "'사용 여부' 보다 '활용방안' 논의를.."
시민단체는 또 충남도가 홍성·예산 도청이전 부지에 31억여 원을 들여 관사촌을 건립하려 하는 데 대해서도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충남도는 이완구 전 충남지사 시절 도청 신도시 예정지에 1급·2급 관사 3동을 단독주택으로 신축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우선 내년에 해당 부지를 매입한다는 구상이다. 이에 대해 안 당선자 측은 "관련 계획을 꼼꼼히 살펴 검토해 보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대전지역 시민단체는 충남시민단체와는 다소 입장이 다르다.
그동안 충남도청 부지 활용방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온 대전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안 당선자와 충남시민단체 측이 큰 틀에 있어서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당장의 관사 사용여부보다는 충남도청 부지 및 지금의 관사촌의 활용방안을 놓고 대전충남 시민단체와 충남도가 머리를 맞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충남도는 1800여 만원을 들여 충남도지사 관사를 보수하고 안 당선자가 입주할 수 있도록 준비를 끝내 놓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