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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바라본 ‘만호뜰’. 국도를 경계로 우측은 맛좋은 쌀로 유명한 ‘십자들녘’입니다. 백제 오성인(五聖人)의 묘가 있는 ‘오성산’도 희미하게 보입니다.
집에서 바라본 ‘만호뜰’. 국도를 경계로 우측은 맛좋은 쌀로 유명한 ‘십자들녘’입니다. 백제 오성인(五聖人)의 묘가 있는 ‘오성산’도 희미하게 보입니다. ⓒ 조종안

 

제가 사는 집 대문을 나서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모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들녘이 펼쳐집니다. '만호뜰'이라고 하는데요. 해마다 1만 가구가 먹을 식량을 거둬들인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맛좋은 쌀 생산지로 소문난 '십자들녘'과 이웃하고 있지요. 

 

남북으로 길게 뻗은 우리나라는 북부, 중부, 남부로 나뉘는데요. 중부지역에 속하는 우리 마을 모내기는 5월 하순에서 6월 초순이면 대부분 끝납니다. 그런데 집 앞 논은 6월이 다 가도록 모내기는커녕 논갈이도 안 하고 내다 버린 자식처럼 방치하고 있더군요. 볼 때마다 안타까웠습니다.

 

 땀을 흘리며 묘판을 나르는 모쟁이 아저씨들. 발목에 덕지덕지 뭍은 개흙이 농사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땀을 흘리며 묘판을 나르는 모쟁이 아저씨들. 발목에 덕지덕지 뭍은 개흙이 농사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 조종안

   

논 주인이 바뀌어 모내기가 늦어졌다고 하는데요. 며칠 전 논갈이에 이어 다음날(29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굴착기와 이앙기 소리가 요란하더니 저녁때가 되어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귀가 따갑고, 밤까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서 나가보았더니, 아저씨 셋이 땀을 뻘뻘 흘리며 늦모를 심고 있었습니다. 

 

'늦모는 밤송이를 겨드랑이에 넣어가며 심는다'는 옛말이 있는데요. 트럭에 가득 싣고 온 묘판을 논둑으로 나르며 구슬땀을 흘리는 아저씨, 묘판을 이앙기에 올려주는 아저씨, 이앙기를 운전하는 아저씨들이 하나같이 움직였습니다.

 

 라이트를 켜고 늦모를 심는 모습. 아저씨의 이앙기 운전 솜씨가 놀라웠는데요. 밥을 눈감고 먹어도 수저가 입에 들어가는 이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이트를 켜고 늦모를 심는 모습. 아저씨의 이앙기 운전 솜씨가 놀라웠는데요. 밥을 눈감고 먹어도 수저가 입에 들어가는 이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조종안

'늦모는 손에 든 모와 논에 꽂은 모가 다르다', '늦모는 사흘이면 땅 냄새를 맡는다'는 말이 내려올 정도로 늦모는 빠르게 자란다고 하는데요. 아저씨들은 하루 차이에도 수확량이 다르다며 쉴 틈도 없이 움직였습니다. 그래도 9시가 넘으니까 옆 논은 다음 날 심기로 하고 작업을 끝내더군요.  

 

등동마을 이장(66세)님도 나와서 거들고 있었는데요. '늦모심기에는 지나가던 원님도 심어주고 간다'는 말이 떠오르며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장에게 "모를 늦게 심어도 가을에 수확을 제대로 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더니 씨익 웃으면서 "식구들이 먹을 '양석농사'니까 걱정헐 것 없어요!"라며 밤꽃이 지기 전에만 심으면 1년 식량은 건진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양석농사'라는 말이 궁금증을 더욱 자아내게 했는데요. 쌀농사에도 종류가 있는지 재차 물었습니다.

 

"통일벼가 나오기 전, 그러니까 우리가 젊었을 때만 혀도 논 한 평에서 나락을 세 근 농사 지믄 마을에서 '논둑 터졌다!'고들 혔어요. 풍년이 들어서 부자 됐다는 뜻이었죠. 그리고 두 근 나오믄 그런대로 '양석농사'지었다고 혔어요. 그 때 어른들은 '양식'을 '양석'이라고 혔응게."

 

논 한 평에서 세 근이면, 백 평에서 삼백 근을 소출하는 셈이 되는데요. 한 마지기(200평) 논에서 나락(100근) 여섯 가마를 수확하면 남들이 부러워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장님은 영농기법이 발달한 지금은 옛날과 달라서 평당 세 근 농사를 지으면 '망친 농사다!'고 한다면서 어이없어했습니다.  

   

옛날에는 논 한 필지(1,200평) 모내기하려면 모 나르는 모쟁이 두 명에, 모 줄 잡아주는 줄잡이 두 명, 모 심는 사람 여섯 명 해서 열 명이 온종일 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셋이 해도 넉넉잡고 두 시간이면 끝낸다고 하더군요.

 

변화를 반복하는 자연을 통해 모심는 시기의 시작과 끝을 정해놓은 것이 재미있고 호기심을 돋우었는데요. 늦었다고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도전정신과 식량의 열매를 맺히게 하는 하늘의 손길에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지금은 모내기를 마치면 삼겹살에 소주 한 잔으로 뒤풀이가 끝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모 심는 사람들이 데리고 오는 아이들까지 아침, 점심, 저녁에 새참까지 주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은 물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며 못 먹고, 못 입던 시절을 회상했습니다. 

 

이장님은 식구들 수저도 모자랄 정도로 살림이 어려웠던 시절에 모내기 하던 마을 풍경을 설명해주었는데요. 얘기를 듣고 있으니까 '십자들녁'에서 농사짓던 50여 년 전 어머니 심부름 다니며 봤던 옛날 농촌 풍경들이 슬라이드 필름처럼 한 장면씩 스쳐갔습니다.

 

어머니는 모내기나 김매기 등을 하는 날마다 논을 지켜주던 주막집으로 막걸리와 반찬을 바리바리 해서 삐비(삘기)를 뽑아먹으러 다니는 마을 꼬마들까지 데려다 밥을 먹였는데요. 뭐가 그리도 신이 나는지 "우리 엄니가 식사허러 오시래요!"라며 이집저집 마당으로 뛰어다녔거든요. 

 

이장님은 70년대까지만 해도 1년에 쌀 소비량이 1인당 140kg 정도 되었는데, 지금은 절반인 70kg도 못 된다면서, 밥을 사발에 담아 먹던 시절에 수저를 들고 모내기하는 집을 찾아다니며 허기를 달랬던 때를 생각하면 세상이 너무나 달라졌다며 뜻 모를 한숨을 내리쉬었습니다.

 

 이앙기에 실은 묘판을 점검하는 모습. 등동마을 이장님이 뭔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앙기에 실은 묘판을 점검하는 모습. 등동마을 이장님이 뭔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 조종안

적기에 심은 모들은 초복이 지나면서 한 마디 올라오고, 중복이 지나면 두 마디, 말복 지나면 세 마디가 올라오면서 꽃이 피기 시작, 9월에 나락이 영근다고 하는데요. 초가을 날씨가 따가워야 하는 이유도 나락이 잘 여물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를 너무 일찍 심거나 늦게 심으면 쌀 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벼가 병해충에 약하고, 수확량도 감소하기 때문에 적기에 심어야 한다고 합니다. 중부지역의 올해 모내기 적기는 작년보다 일주일 정도 늦었다고 합니다. 작년에 윤달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모를 한 뭉치씩 심는다고 해서 수확이 많은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한 모숨에 6-7개 정도가 적당하다고 하는데요. 벼도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어서 6-7개씩 심으면 스스로 새끼를 쳐서 새로운 줄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귀를 따갑게 했던 이앙기 소리가 그치니까 조용하던 개구리들이 합창을 시작했는데요. 이장님은 거리를 환하게 밝히고 있는 가로등을 가리키며 "밤이는 껌껌혀야 허는디···"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벼들도 밤에 잠을 푹 자야 낮에 나락을 잘 여물게 하는데, 주위가 환하면 성장에 지장을 주어 목이 정상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이장님 설명에 벼도 숨을 쉬는 식물이니까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내기#늦모#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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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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