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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개그맨 공채 나이 제한에 대한 동형이형의 일성 "개그맨이 진시황이야?"(패러디물)
 KBS의 개그맨 공채 나이 제한에 대한 동형이형의 일성 "개그맨이 진시황이야?"(패러디물)
ⓒ 박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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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누구보다 샤우팅을 사랑하는 동혁이 형이야! 내가 좀 짜증이 났는데, KBS 신인 개그맨 선발에 나이 제한을 두고 있었잖아. 내가 우리 나이로 올해 서른둘이야. 그럼 내 친구들은 응시 못해? 서른 넘으면 웃음 DNA가 죽는 거야?

근데 이런 일이 왜 있었는지 살펴보니 말이야, 그게 다 개그맨들의 위계 질서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는 거지. 희극인실이 군대는 아니잖아. 신체 건강한 남녀만 개그맨 될 수 있어? 개그맨들이 넘어지고 자빠지는 슬랩스틱 코미디만 해? 이거 아니잖아, 쿨하지 못하잖아. 그럼 개그맨 응시 모집할 때 '군필자 환영'이라는 문구라도 집어넣든가.

나이 제한을 두는 것도 웃겨. 개그맨이 무슨 공무원이야?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해? 공무원도 응시 제한을 철폐하는 이 마당에, 이건 아니잖아, 쿨하지 못하잖아. 그럼 개그맨들도 직급 두고 호봉제 둬서 평생직장으로 만들던가 해야 될 거 아냐. 

이거 아니잖아. 웃음에 관한 가장 흔한 속담이 뭐야. 웃는 집에 복이 든다, '소문만복래' 아니야. 근데 그 중요한 웃음을 젊은 사람만 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럼 개그맨들이 다 진시황이라도 돼야 하는 거야? 불로초라도 먹고 평생 20~30대를 유지해야 돼?

하나만 부탁할게. 개그맨들이 아이디어 짜느라 고생하는데, 그만큼 더 힘들고 예능계에서  대우 못 받는 거 잘 알아. 그럴수록 더더욱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응시 자격부터 기본적인 문호는 개방해 주면 좋잖아. 굉장히 쿨하잖아, 어때? 형이 누구야, 동혁이 형이야!"

KBS에 30세 나이 제한 철폐 권고한 인권위

아마도 <개그 콘서트> '동혁이 형'이라면 이렇게 통렬히 내부비판을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1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KBS가 신인 개그맨 지원 자격에 나이 기준을 둔 것에 대해 "해당사 사장에게 신인 개그맨 지원자격을 나이 기준으로 제한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지요.

인권위는 "연령차별금지법 제4조의 제1항 제1호에서는 모집·채용에 있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 또는 근로자가 되려는 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권고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KBS 측은 2010년 신인 코미디언 모집 공고를 내면서 지원 자격에 "대한민국 국적 소지자로 방송활동에 불가능한 사유가 없는 만 18세 이상 30세 이하의 남녀는 누구나 지원 가능합니다"라고 명시해 놓았었지요. 인권위에 따르면 진정인 A씨가 이 공고가 불합리한 차별이라 진정을 제기 했거든요.

이에 KBS 측은 연예인들 데뷔 나이가 어려지고, 신인들은 몇 년간 트레이닝이 필요하며, 또 프로그램에 맞는 신인을 뽑으면서 나이에 제한을 두는 것은 방송사 재량이라는 이유로  해명을 했다고 합니다. 반면 SBS나 MBC는 그러한 제한을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교가 되고 있지요. 

신인 때부터 혹독할 수밖에 없는 개그맨들의 경쟁사회

KBS <개그콘서트> '드라이클리닝'의 한 장면
 KBS <개그콘서트> '드라이클리닝'의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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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동혁이 형처럼 개그맨들을 격하게 몰아붙일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들 개개인은 연예계에서 여전히 강자이기보다 약자이니까요. 최근 KBS <승승장구>에 출연한 개그맨 박성호, 이수근, 김병만과 김석현 담당PD는 그러한 현실을 토로하기도 했지요. 

"녹화만 뜨고 관객들과의 추억만 남고 방송에 못나가는 코너가 엄청 많아요."(박성호)
"<개그 콘서트>에서 아무리 성공을 해도 한국사회는 개그맨을, 영화배우나 유재석, 강호동 같은 톱 MC, 그리고 톱 가수 같이 안 바라봐 주거든요. 이들 모두 대한민국 톱 개그맨이고 업종이 틀릴 뿐인데, 바라보는 시선이 낮아서 저도 굉장히 억울해요."(김석현 PD)

네, 그만큼 개그맨들은 톱스타급을 제외하고서는 노력에 비해 금전적,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죠. 이는 물론 모든 연예인들의 숙명일지도 모르지만, 그에 비해서도 개그맨들은 '딴따라'라는 연예인들에 대한 인식 중에서도 좀 더 낮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개그 콘서트> 혹은 SBS '웃찾사'나 지금은 폐지된 MBC '하땅사'와 같은 방송사마다 단일화된 공개코미디 프로그램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중파 개그프로그램이 그들의 주된 수입원이 될 행사나 광고, 예능프로그램 출연의 기회를 따낼 수 있도록 얼굴을 알려주기 때문이죠.

"개그맨은 쉬는 것이 은퇴라고 생각합니다. 연기자는 쉬면 충전이지만 개그맨은 방전입니다"(박성호)
"1주일에 적어도 4일을 나와야 하고 신인들은 계속 출근해야죠. 주 1회 녹화에 일주일을 투자하지 않으면 그게 다 정보고 경쟁에서 뒤 떨어질 수 있죠"(이수근)

이들의 말이 사뭇 비장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그것이 KBS의 경우 <개그 콘서트>에 목을 매야 하는 현실이고, 그러한 어려움이야말로 인기 개그맨들이 여타 버라이어티에 진출하기를 갈망하는 이유겠지요.

이러한 무한경쟁의 시스템이 바로 개그맨들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건 아닐까요. 물론 지금 활동하는 현역 개그맨들은 이전에 선배 희극인들부터 공고히 만들어져 온 위계질서의 희생양일 수 있을 테지만요.

모여 있는 개그맨들? 위계질서 있지요!

개그맨 박준형
 개그맨 박준형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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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월 오마이뉴스 '탁현민의 이매진'에 출연한 '갈갈이' 박준형은 연예계의 위계질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개그맨은 모여 있고, 가수들은 모여 있지 않기 때문이죠. 모여 있으면 위계질서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개그맨은 갈 공간이 없어요, 희극인실 말고. 희극인실에 모이면 나이순으로 서열이 정해지고요. 어차피 집단생활이니까요.

그리고 선배 개그맨은 후배 개그맨들이 크는 데 도움을 줘요. 자기 아이디어를 줘서 후배를 키우고, 후배가 개그맨이 돼서 대박이 나면 말을 할 수 있죠. 당연히 뭐라고 할 수 있죠. 왜 그 따위로 하냐고. 또 때리면 맞고."

후배들을 이끌고 있는 기획사 사장인 개그맨 박준형은 명쾌했습니다. 한데 모여 아이디어를 짜고, 또 그것이 후배들의 피와 살이 되는 공개코미디로 활동하면서 여타 연예인들과 달리 위계질서가 셀 수밖에 없다는 설명인 거죠. 

한국사회의 위계질서를 까발려 인기를 얻은 '분장실의 강선생님'의 안영미씨 또한 한 방송프로그램에 나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후배인 신봉선씨에게 군기를 잡으려고 한 적이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위계질서 속 엄격한 분위기는 남녀 구분이 없다는 방증인 셈이죠.

2005년 8월, 개그맨 김아무개씨가 후배를 폭행했다는 이유로 형사 입건 됐던 사건은 바로 그런 환경에서 곪아 터진 것뿐일 겁니다. 엄격함을 바탕으로 한 위계질서 사회는 언제나 폭력을 정당한 수단으로 묵인해 왔죠. 비극은 그것이 21세기, 그리고 화려해 보이는 연예계에서도 잔존해 왔다는 점일 겁니다.

위계질서, 권력 가진 방송사가 먼저 나서라

연말 방송사 예능 시상식을 보면 <개그 콘서트> 출연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상이 둘 있습니다. 크리스찬이 감사를 표하는 하나님과 수상자 대다수가 통과의례처럼 김석현 PD의 이름을 호명하죠.

희극인들의 위계질서를 하나의 먹이사슬로 비유한다면 그 정점에는 PD와 방송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소소하게 코너를 방영하는 편집권부터 기성은 물론 신인들의 캐스팅권을 쥔 것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죠. 아무리 능력 있고 재능 있는 개그맨들도 그들이 살리고 죽일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일 겁니다.

그래서 이번 인권위의 권고를 KBS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금 그러한 차별이 없도록 채용 조항을 삭제해야 마땅해 보이는데요. '배제야말로 차별의 시작'이라는 말로 정색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위계질서가 공고한 작금의 분위기는 재능과 실력을 뒤늦게 발견한 늦깎이 개그맨 지망생들을 자동적으로 배재한다는 점에서 방송사 입장에서도 손해일 수 있을 겁니다.

또 하나, KBS를 비롯한 공개 코미디 관계자들이 먼저 위계질서가 작동하는 시스템이 필요악이라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개그맨 사회가 특수한 분위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 몇 년 전까지도 잔존했던 폭력이나 억압적인 위계질서는 국민들에게 활력소가 되는 개그 프로그램들이 또 한번 외면 받을 수 있는 씨앗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늦깎이 신인이 현장에 투입되는 것은 그러한 위계질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작은 시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기득권을 포기하고 MBC로 이적한 박준형 씨의 개그계의 과거 얘기는 그래서 더더욱 곱씹어 생각할 여지를 주고 있습니다.

"선배들이 얘기하는 싸가지 없는 행동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면 후배들이 크기 어렵다는 거죠. 그렇게 독재체제가 이뤄지는 거고요. 한 코너 장이 마음이 들면 특정 역할을 (후배에게) 주고 코너 장은 계속 주인공을 하고 다른 사람은 할 수 없죠. 왜냐하면 자기를 위한 아이디어를 짜서 바치니까. 그래서 어느 정도의 선을 적당히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풀어 놔요. 그래서 저랑 같이 있으면 애들이 다 빠진다고 하기도 해요. 어느 정도 긴장을 가지면서 자유로울 필요는 정말 있는 거죠. 예전에는 XX 선배들이 녹화 들어가기 전에는 따귀를 때리고 그랬데요. 그럼 후배가 어떻게 웃겨요. 그런 게 있으니까 코미디의 암흑기가 오고 그랬죠."


태그:#인권위, #KBS, #개그콘서트, #개그맨, #동혁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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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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