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에도 비둘기가 산다. 아침이면 꾸룩꾸룩 울며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지난 2월 이곳 대전 삼성동으로 이사를 한 후 주변의 삭막함에 적잖이 실망했다. 대전역 주변이라서 깔끔한 도시 풍광을 기대했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재개발지역으로 묶이면서 전혀 손대지 못한 건물들이 을씨년스러웠고, 비어있는 건물들이 황량함을 더했다.
그래도 조금 마음에 위로가 된 것이 교회 앞 작은 화단과 텃밭, 그리고 아침마다 울어대는 비둘기소리였다. 삭막한 주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시골스러운 몇 가지 모습들이, 도시를 달가워하지 않는 내게 조금의 위안이 된 것이다.
갑갑할 때면 가끔 교회 옥상에 올라가 본다. 주변은 모두 인쇄공장들이다. 교회 바로 오른쪽 옆에 여관과 목욕탕이 있었지만 오래 전에 장사가 안 되어 문 닫아 버렸다. 여관 뒤 주택은 언제 주인이 떠났는지 다 허물어진 채, 개 두어 마리가 늘 매여 있다. 교회 왼쪽 편에도 역시 주인 떠난 빈집 하나와 늘 기력 없이 누워있는 할머니 한 분이 사는 허름한 집이 하나 있다. 오직 교회 뒤에 있는 인쇄공장에서만 낡은 인쇄기계가 밤낮없이 그렁그렁 돌아가고 있었다.
지난달 옥상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빈 여관집 이층 창턱에 비둘기 두 마리가 둥지를 마련했다. 창턱이래야 겨우 손바닥 넓이만한 공간에 비를 가려줄 천정도 없었다. 그런데 차마 앉아있기에도 비좁을 만한 곳에 하얀 알 두 개까지 낳아놓았으니 신기하기만 하다.
비둘기들은 연신 어딘가를 오가며 알을 품는데, 알이 놓인 장소가 장소인지라 늘 불안하기만 하였다. 여차하면 그 약한 알들이 2층 아래로 곤두박질 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틈만 나면 옥상에 올라가 비둘기 알이 잘 있는지를 살피곤 했다. 사는 집이 작으면 어떠랴! 그저 저곳에서도 새끼 잘 키우고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만 주었으면 하는 것이 내 소망이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방을 구하러 대구 시내를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집 주인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방을 주지 않았다. 아이가 셋이라서 안 되고, 주인 집 아이가 우리 아이와 또래라서 안 된단다. 서로 싸울까봐 그런다고 했다. 하루 종일 방을 구하러 다니다가 지친 몸으로 돌아오며, 하늘아래 몸 하나 편히 누일 수 있는 작은 방 하나라도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적어도 삼성동 비둘기는 부부가 서로 몸을 의지하고 알을 품을 수 있는 그들만의 작은 공간이라도 있으니 다행스럽다.
지난 주, 장마가 오락가락하면서 세찬 소나기가 밤새 창문을 두들겼지만 우리는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다가 행복한 잠에 빠져 들었다. 아침이 되자 비갠 하늘이 푸르게 내려와 앉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옥상에 올라갔다. 그리고 비둘기 둥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있어야 할 곳에 비둘기 알이 없다. 그렇다고 부화한 것도 아니었다. 비둘기 알은 처참하게 바닥에 내동댕이쳐 있었다. 아마 간밤에 몰아친 비바람으로 그리된 것 같았다.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삼성동 비둘기가 알을 지키려고 애쓸 때, 우리는 웃고 떠들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바로 가까운 창밖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울적한 마음에 길을 걷는데, 한 복지시설에서 쪽방 집에서 살 사람들을 구한다고 내건 안내문이 보인다. 아마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쪽방을 저렴한 임대료를 받고 제공하는 모양이었다. 부디 쪽방일지언정 마음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는 행복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에도 걱정 없이 잠을 청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더욱 좋겠다.
삼성동 비둘기는 그 후로 어디론가 떠나갔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허물어진 집을 버리고 떠난 이름 모를 어떤 이웃들처럼.